[에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재난 영화의 예고편”
[에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재난 영화의 예고편”
  • 서창완 기자
  • 승인 2018.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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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식료품점 ‘더 피커’ 송경호 대표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제로웨이스트 그로서란트 '더 피커'의 송경호 대표.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제로웨이스트 그로서란트 '더 피커'의 송경호 대표.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환경부는 지난 10일 ‘재활용 폐기물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전국을 휩쓴 지 한 달여 만이었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감축하고, 재활용률을 두 배 늘리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대란이 터진 뒤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 제공되던 우산 비닐도 사라졌다. 텀블러, 장바구니 사용을 생활화하자는 이야기들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런 움직임이 반가운 이들이 있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제로웨이스트’는 생활 속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것은 재활용하자는 운동이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식료품점 ‘더 피커’ 송경호 대표도 그중 하나다.

최근 <그린포스트코리아>와 만난 송 대표는 쓰레기 문제가 종말론적이거나 거창한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쓰레기 대란이 반가운 이유로 사람들이 재활용 문제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점을 꼽았다.

“좋은 일이라서 반갑다는 건 물론 아닙니다. 결국 대책이 늦어서 이런 사태가 난 거잖아요.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재난 영화의 예고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요? 무분별한 자원 사용에 브레이크를 걸게 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귀에 들리고 눈에 보여야 사람들이 비로소 쓰레기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되죠.”

'더 피커'에서는 직접 장바구니나 용기를 가져와 식료품을 구입해야 한다.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더 피커'에서는 직접 장바구니나 용기를 가져와 식료품을 구입해야 한다.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송 대표가 2년 넘게 운영 중인 ‘더 피커’는 식료품점(Grocery)과 레스토랑(Restaurant)이 결합된 그로서란트(grocerant) 매장이다. 식재료를 구입할 수도 있고, 해당 식재료로 직접 조리해 만든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더 피커’에는 비닐·플라스틱이 없다. 매장을 방문한 손님들은 고구마와 양파를 비닐에 넣는 대신 직접 가져온 장바구니와 보관용기에 담는다. 진열된 식료품 역시 별도 포장이 없다. 오트밀은 유리병, 토마토는 헝겊이 놓인 나무 바구니 등에 담겨 있다. 소비자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송 대표는 제로웨이스트 자체가 불편함을 넘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인정한다.

”삶 자체가 부산물을 남기는 일이잖아요. 완벽한 제로웨이스트는 힘듭니다. 초인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끔 있을 뿐이죠. 그래도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쉽지만 큰 부분부터 조금씩 실천해 보자는 뜻이에요. 쉽게 쓰고 버려지면서 큰 부피와 양을 차지하는 비닐이나 플라스틱 먼저 줄여보자는 거죠.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더 피커'에서는 다양한 친환경 제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더 피커'에서는 다양한 친환경 제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업 초기에는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포장 없는 구매 방식을 생소해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귀찮고 어렵다며 역정을 내는 사람들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는 장바구니나 물건을 담을 용기를 들고 쇼핑하는 주민들이 많이 생겼다. 송 대표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턱’을 넘어와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송 대표 말처럼 ‘턱’을 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날 점심 매장에 온 손님 대부분은 ‘제로 웨이스트’를 처음 접하고 호기심을 보였다. 판매 중인 친환경 제품들을 둘러보던 김지현(33)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여기 와서 제로 웨이스트를 처음 알게 됐다“면서 ”아무래도 편하다 보니 비닐과 플라스틱 컵 등을 자꾸 쓰게 되는데 스스로 인식을 개선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온 김다혜(27)씨도 ‘더 피커’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를 접했다. 그는 “회사 근처라 몇 번 오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며 “제로웨이스트까지는 아니지만, 평소에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등 쓰레기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피커’ 레스토랑은 완전 채식을 의미하는 비건 식단을 제공한다. 비건 식단에도 제로 웨이스트 철학은 녹아 있다. 송 대표는 사업 구상 단계에서 포장 없는 식료품점이니 냉장고는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냉장고가 없으니 고기는 취급하기 어려웠다. 채소만 판다고 해도 재고 폐기물 문제가 남았다. 재고 폐기물을 최소화하려는 고민은 자연스럽게 비건 식단을 파는 레스토랑으로 이어졌다.

'더 피커'에서 판매하는 비건 식단.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더 피커'에서 판매하는 비건 식단.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완전 채식은 아니지만, 폭력적인 육식을 지양하면서 채식을 지향하는 식단을 하고 있었어요.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는 ‘고기 없는 월요일’ 같은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고객들에게도 마음에 안 맞는데 죄책감에 채식하는 게 아니라 ‘하루만 참아 보자’ 같은 마음만으로도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더 피커’에도 포장은 있다. 테이크아웃 손님들이 있어서다. 어쩔 수 없는 포장에도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겼다. 음료를 담을 때는 플라스틱 컵 대신 옥수수 추출물로 만든 생분해성 용기를 사용한다. 음식용 포장용기 역시 대나무로 만들어져 자연에 흡수된다. 매장에는 다양한 친환경 물품 등도 진열돼 있다. 대나무로 만든 빨대와 칫솔, 야자나무잎으로 만든 친환경 용기, 스테인리스 빨대 등은 구매도 가능하다.

포장 문제는 온라인으로 영역을 넓힐 때도 골치였다. 택배에는 테이프와 박스, 포장용 뽁뽁이(에어캡) 등 수많은 부산물이 존재한다. 송 대표는 골목 폐지 줍는 사람들을 통해 깨끗한 폐박스를 구입하거나, 따로 기부를 받는다. 뽁뽁이 대용으로는 벌집구조로 된 완충용 종이 포장재를 사용한다. 유리병 등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물품을 담을 때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완충재를 넣는다. 물에 넣으면 쉽게 녹는 재질이다.

테이크아웃 손님에게 제공되는 포장재들은 생분해성 제품들이다.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테이크아웃 손님에게 제공되는 용기들은 생분해성 제품들이다. (서창완 기자) 2018.5.16/그린포스트코리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해 온 그에게 환경부가 내놓은 재활용 대책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물어봤다. 송 대표는 움직임 자체는 반갑지만, 좀 더 빨리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환경 문제는 진영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큰 기획을 제시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남겼다.

“일단 재활용 정책을 시작한 걸 환영합니다. 그것만으로도 희망적입니다. 하지만 지금 나온 환경부 안은 너무 포괄적인 것 같아요. 용기, 텀블러 등을 가져오는 등 소비자만 불편을 부담하는 형태로는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쓰지 말자, 수치적으로 줄여나가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자·공급자·소비자의 3박자가 잘 맞도록 방향이 설정돼야 해요. 어떤 공장에서는 폐기물인 게 다른 곳에서는 재료가 되잖아요. 공급자와 생산자 차원에서 그런 연결 고리가 이어지고 순환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에서 분해되는데 비닐 20년, 플라스틱은 450년이 걸린다. 무심코 버린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의 흔적을 2400년쯤의 후손들이 발견할 수도 있는 셈이다.

송 대표가 말한 재난 영화의 개봉을 막고 싶다면 조금쯤 불편해 보는 건 어떨까.

“환경 문제는 다음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저희 세대가 직면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목전에 닥친 문제를 외면하면 ‘재활용 쓰레기 대란’으로 겪은 불편함은 더 큰 피해로 되돌아올 겁니다.”

seotive@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