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미국처럼 화학물질 관리 전담조직 만들어야"

출처=Pixabay

 

전국을 계란 공포증으로 몰고간 '살충제계란', 발암물질이 검출된 '생리대'. 아직 가습기살균제 참사도 마무리되지 않은 가운데, 우리 생활에서 쉽게 접해왔던 식품·제품에서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생활화학제품이나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습기살균제 이외에도 모든 화학물질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제품이 유해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피해를 받을 수 있어서다.
 
이에 정부는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살생물제법)'을 제정하고, 하위법령을 준비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살생물제법에 많은 예외사항을 존재, 법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출처=청와대]

 

살생물제법으로 제2의 가습기살균제 방지?…"곳곳에 구멍"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대표 등 15명을 초청, 공개사과했다. 이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국정과제 중 하나인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살생물제법)' 추진계획을 법제처로부터 보고받았다. 이는 2019년 1월 시행되는 살생물제법을 통해 생활화학제품과 살충제, 살균제 등을 관리,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살생물제법에는 수많은 제외 품목들이 존재, 헛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살생물제를 사용한 '살충제계란'과 총휘발성유기화합물질이 검출된 '생리대'는 살생물제법이 제정될지라도 법의 규제조차 받지 않는다. 
 
살생물제법 제 4조를 살펴보면 △농약관리법의 농약, 천연식물보호제, 원제, 농약활용기자재 △식품위생법의 식품첨가물 △약사법의 의약품 및 의약외품 △화장품법의 화장품과 그 원료 △먹는물관리법의 수처리제 등 10여 종의 생활화학제품군이 살생물제법의 '제외' 항목으로 지정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살충제 계란의 경우, 이미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동물용 살충제를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살생물제법에서 제외되고 농식품부에서 별도로 관리한다"며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는 생리대도 식약처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역시 제외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살생물제법은 살생물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기존에 환경부 담당하는 생활화학물질을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라며 "법에서 제외된 품목들은 해당 주무부처가 보다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살생물제법에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정부가 국정정책으로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게다'고 살생물제법을 만들었지만, 법을 통해 관리할 수 있는 것은 가습기살균제, 모기 살충제 등 일부 살생물제와 환경부가 관리하는 생활화학물질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살생물제법이 2019년 1월 시행돼도 '살충제계란 사태'와 '릴리안 생리대' 문제는 또다시 발생할 수 있으며, 지금 규제및 관리 수준과도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팀장은 "살생물제법은 살생물제과 화학제품 등을 모두 포괄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부처별로 관리하는 사각지대가 많다"며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제에 대한 범위마저 아직 명확하지 않아, 법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을 따로 관리해선 안되고 통합 관리를 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환경부가 화학물질 및 제품 모두를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살생물제 관리 대대적 정비 필요…"EU·미국처럼 전담조직 만들어야"
 
[출처=경기연구원]

 

살생물제는 인체유해성이나 노출 가능성 측면에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살생물제 관리는 살충제·농약은 농식품부가, 살균제·살충제는 복지부·식약처, 소독제는 환경부, 방오제는 해양수산부, 습기제거제는 산업부 등 6개 부처에 흩어져있다. 이특히 살생물제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농약 등 일부 품목은 기존 부처가 그대로 담당한다.
 
반면 유럽연합(EU)의 살생물제규제법(BPR)은 살생물제를 소독제 등 4개 부문 22개 제품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모든 제품에 대해 시장출시 전 사용 범위 등에 대한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살생물제를 농업용과 비농업용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관리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살생물제를 여러 부처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관리 기준도 통일되지 않아 안전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살생물제 뿐만 아니라 생활화학제품도 여러부처에서 관리하는 만큼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전문적 관리와 사고 예방, 대책 등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화학물질만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 또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학물질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전담조직에서 일반 화학물질은 물론 생살물제와 생활화학제품 내 유해화학물질 등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EU는 2007년 신화학물질관리제도를 시행, '화학물질관리청(ECHA)'을 신설해 모든 화학물질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미국 역시 모든 화학물질 관리를 연방환경보호청(EPA)에서 수행 중이다. 
 
방종식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살생물제법을 새롭게 제정하는 만큼 정부에 전담조직도 있어야 한다"며 "현재 화학물질안전원이 있지만, 조직을 더욱 확대해 국내 모든 화학물질관리 뿐만 아니라 생활화학사고 예방·대처 등을 단일부처가 전담하는 시스템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hypark@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