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가족 5명 중 4명이 숨진 부산 감만동 교통사고의 원인이 '급가속'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사고 당시 운전자는 경찰조사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전문가들도 이번 사고가 급발진과 유사한 급가속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부서도 이번 사고와 관련 싼타페의 제작결함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상황이다.

급가속은 주행중 갑자기 속력이 붙기 시작해 통제불능에 빠져 발생하는 사고로, 차량이 멈춰있다가 갑자기 튀어나가는 급발진과 유사하지만 명백히 다른 유형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급가속 사고가 이미 상당수 발생하고 있지만, 급가속 및 급발진 원인이라고 결론지어진 사건은 단 한차례도 없다는 점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산 감만동 사고가 2009년 미국 토요타 급가속 사고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2009년 토요타 사고에서도 당시 운전자가 주행중 브레이크 조작이 안된다고 외쳤다"며 "당시 토요타 측은 매트에 가속페달이 물려서 그랬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급가속이라고 인정, 여론의 질타를 받은바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번 부산 감만동 사고도 운전자가 브레이크 조작이 안된다고 말한 만큼, 급가속 때문에 발생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며 "운전사 과실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택시운전만 17년한 사람이 그런 실수를 할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2009년 토요타 사고는 미 고속도로 순찰대원이 일가족 네명을 태우고 렉서스 'ES350'을 주행하던 중 급가속이 의심되는 문제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가드레일을 넘어 추락해 전원 사망한 사고다. 토요타는 당시 세계 최대규모인 900만대 리콜을 발표하고, 미 법무부로부터 자동차업계 역사상 최고 벌금인 12억달러(한화 약 1조 3300억원)를 배상한바 있다.  

5일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달까지 '급발진 추정사고 접수 건수'는 336건이다. 이중 현대차의 급발진 접수가 151건으로 전체 사고건수 중 절반(45%) 가까이 차지했다. 특히 현대차 '쏘나타'는 52대가 급발진 추정사고로 접수, 전체 급발진 차량 7대중 1대(15.5%) 수준이었다. 또 이번 부산 감만동 사고 차종인 싼타페도 앞서 9차례 급발진한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싼타페'와 '쏘나타'가 국내서 가장 많이 팔린 스테디셀러인 이유도 있지만, 현대차의 고질적인 제작결함에 의한 문제로 급발진 건수가 다수 접수됐을 수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5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서울 독산동의 한 도로에서 싼타페 차량이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다 아반떼 차량을 들이받은 사고를 두고 급발진 여부에 대한 정밀 검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쏘나타 역시 급발진 의심 사고를 두고 이미 여러차례 논란이 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고는 2012년 대구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7중 연쇄 추돌사고다. 당시 2009년형 YF쏘나타는 도로 위에서 갑자기 가속이 되기 시작해, 신호대기로 정차해 있던 앞차를 들이 받았다. 이 사고로 10여명이 부상당하고 블랙박스 영상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선 운전자가 차량에 이상이 생겼다고 외치고 있으며, 조수석에 탑승한 여성의 "와 이라노~"라는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린다. 이 영상에선 운전자가 중앙선을 넘어 아슬아슬하게 여러 차량을 피하다가 결국 정차된 차를 들이받게되고, 운전자와 동승객의 신음소리가 나며 끝이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운전자가 차가 이상하다고 외치면서 가속페달을 계속 밟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운전자 실수일 가능성보다는 자동차 급발진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한 급발진 사고 당시 엔진에서 나는 굉음은 차량 결함일 가능성이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는 급발진·급가속의 원인으로 차량내 소프트웨어간의 결함으로 보고있다. 

이항구 위원은 "차량내에는 소프트웨어가 굉장히 많은데 소프트웨어간 충돌이 나는 순간 급가속·급발진 등 성능에 결함이 생길 수 있다"며 "완성차 업체에서 급발진 등 사고차량이 출시되기전 안전테스트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안전테스트는 하드웨어적인 것으로 소프트웨어 테스트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이어 "실제 독일차인 벤츠도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가 많이 들어가는 고급차의 소프트웨어 충돌 오류를 잡느라 경쟁사인 BMW에게 밀린적이 있을 정도"라며 "소프트웨어 충돌은 완성차 업계에서도 계속 신경쓰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대차 측에선 급발진·급가속 등 차량 결함에 대해선 전면 부인하며, 운전자 과실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자동차급발진연구회 등 학계에서 급발진·급가속 사고에 대해 여러가지 조사를 진행한 후 차량결함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지만 현대차에서는 이 조사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급가속 경우, 연식이 오래된 구형차나 일반 중형차에서 나올 수 있는 성능 이상으로 가속되는 경우가 많은데, 거의 슈퍼카 급의 가속이 나온 상황에서도 현대차에선 단순히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완성차 업계에선 급가속 등 사고를 악셀을 쎄게 밟아서 가속이 심하게 된 것이고, 차량에서 나오는 굉음도 이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 현재까지 1건도 차량불량으로 인한 급가속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는 급가속·급발진 문제가 많은 차량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몇대만 발생했다는 점을 근거로 운전자 과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업체가 공식적으로 급발진을 인정하는 순간 유사한 사고는 다 배상을 해줘야하고 과거 토요타 사태처럼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급발진, 급가속 등 차량결함 원인이라고 확정된 사고가 '0건'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완성차업계에 유리한 법조항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급가속 등의 사고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자동차 블랙박스의 일종인 EDR 기록 확인인데, 완성차업계에서는 이 자료를 공개를 하지 않고 있고, 공개 의무 법 조항도 없는 실정이다.  

EDR 장치에는 사고당시 차량 속력과,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유무,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의 압력, 엔진RPM 등이 기록돼 있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보통 사고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도로 지면위 타이어자국으로 브레이크 작동 유무를 판단하는데, 타이어 자국이 없을 경우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때 EDR 기록에 운전자가 브레이크가 밟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면, 타이어 자국이 없었던 이유가 급가속 등 차량 결함때문에 발생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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