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말했다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세월호 유족들은 가슴이 '덜컹'한다. 봄이 와도 봄이 아닌 사람들. 옛적 한나라 왕소군과 세월호 유족들. 누구의 봄이 더 아플까. 

19일은 24절기 상 눈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른다는 우수(雨水)다. 우수는 입춘 바로 다음 절기로 바야흐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우수 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우수가 지나면 아무리 단단했던 얼음도 스스로 녹아 없어짐을 말한다.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을 틔우고 민초들은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계절이 가고 옴은 자연의 이치. 하지만 봄이 온다고 다 봄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가 않구나. 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당시 김종필 전 총리가 아직 봄이 온 게 아니라며 춘래불사춘을 인용해 유명해졌지만 춘래불사춘 다섯 글자는 원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한 원제 때 왕소군과 관련된 고사다. 

왕소군의 본명은 '왕 장'으로 소군(昭君)은 그녀가 받은 후궁의 작위를 이른다. 18살에 황제의 후궁으로 입궁한 소군은 5년이 지나도록 황제의 성은을 입지 못한다. 

당시 궁에는 수백, 수천의 후궁이 있어 왕이 일일이 후궁 얼굴을 알 수가 없어 궁정화가에게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초상화를 보고 왕이 잠자리에 함께 들 후궁을 간택했다고 한다. 

왕과의 동침은 곧 출세와 신분 상승, 권력으로 가는 길이었기에 대부분의 후궁들이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고 "예쁘게 그려달라"는 청탁을 넣었지만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고 모연수는 왕소군을 추녀로 그렸다.

그렇게 하릴없이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북방의 강자로 부상한 흉노의 선우(왕)가 화친과 맹약의 증표로 한 왕실의 여자를 자신에게 시집보내라고 요구한다. 이에 머나먼 타국 땅 북방의 불모지 흉노 왕에게 시집갈 한 왕실의 여자로 왕소군이 정해진다.

왕소군이 흉노로 떠나던 날, 그날 처음 왕소군을 처음 본 한 원제는 소군의 미모와 단아함에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 졌고 소군은 흉노로 떠나고 황제는 소군을 추녀로 그린 궁중화가 모연수를 참형에 처한다. 

장안을 떠나 고비 사막을 넘어 막북의 흉노 땅까지 장장 1년의 여정. 소군은 그 쓰라리고 서글픈 심정을 금(琴)에 담아 연주하였는데 그 구슬픈 소리와 처연한 아름다움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날개짓하는 것을 잊어 떨어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절세미인을 뜻하는 '낙안(落雁)'이라는 성어가 생겨난 고사다.

흉노 왕에게 시집간지 3년만에 왕은 죽는다. 당시 흉노의 풍습은 남편이 죽으면 큰 아들에게 다시 시집을 가도록 하고 있었다. 이에 소군은 한 조정에 이를 면제해 줄 것을 요청하나 한 조정은 "흉노의 습속에 따르라" 한다.

이에 왕소군은 흉노의 풍습에 따라 죽은 남편의 전 왕후가 낳은 큰아들에게 재가한다. 2대에 걸쳐 흉노 왕을 섬기게 된 한나라 여인이 된 것이다.   

한나라 황제의 후궁이 됐으나 머나먼 막북 흉노 땅에서 2대에 걸쳐 오랑캐 왕의 왕후로 살아야 했던 왕소군. 그녀는 흉노에서 죽어 흉노 땅에 묻힌다. 겨울이 되어 흉노 땅의 풀이 모두 시들어도 왕소군의 무덤 풀만은 늘 푸르러 소군의 무덤을 '청총(靑塚)'이라 했다고 한다.

왕소군의 일화는 시선 이백과 시성 두보 등 후대의 시인묵객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 넣었고,  당 시인 동방규는 '왕소군의 한' 이라는 뜻의 '소군원(昭君怨)' 이라는 시를 남긴다. 

소군원(昭君怨) 소군의 원망

漢道初全盛(한도초전성) 한나라의 법도가 처음엔 융성하여
朝廷足武臣(조정족무신) 조정엔 무신들 가득했다네
何須薄命妾(하수박명첩) 어찌 하필 박명한 아녀자인가
辛苦事和親(신고사화친) 괴롭고 쓰라려라, 화친의 일이여

掩淚辭丹鳳(엄루사단봉) 눈물을 삼키고 궁궐과 작별하고
銜悲向白龍(함비향백룡) 슬픔을 머금고 흉노 땅으로 향하네
單于浪驚喜(선우량경희) 선우는 거만히 놀라 기뻐하는데
無復舊時容(무부기시용) 다시는 옛 모습 찿을 길 없어라

萬里邊城遠(만리변성원) 만 리 밖 변방에서 성은 멀기만 하고
千山行路難(천산행로난) 천산 행로는 험하기만 하여라
擧頭惟見日(거두유견일) 머리 들어 해만 바라볼 뿐 
何處是長安(하처시장안) 그 어느 곳이 장안이던가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스르르 옷에 걸친 허리띠 느슨해 지는 것은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그 몸 가늘게 가꾸고자 함 아니라네

왕소군 초상 (출처=중국 CCTV 홈페이지)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소군 뿐일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을 바다에 수장시킨 세월호 가족들에게 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신산업 성장을 막는 규제를 정부 입맞에 맞게 골라서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라 꼭 살려내야 할 규제는 살려두겠다는 취지"라며 한 발언이다.

이와 관련 세월호 유족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아직 세월호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과연 "물에 빠뜨려 놓고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하는 식의 발언이 과연 적절한 가를 두고 적지 않는 논란이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고 많은 비유 중 이런 비유를 하는 심리구조는 어떤 것인가" 하고 어이없어 했고, 

목수정 작가는 "'일단 다 물에 빠뜨려 놓고, 살릴 것만 살린다.' 그거 당신이 2년 전에 한 짓이잖아"라는 직설적인 비판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그 외 많은 일반 네티즌들도 "그래서 애들은 다 죽이고 선장과 선원만 살린 것이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물에 빠뜨려' '살려 두고' 라는 말을 쓴 것인지 정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손톱 만큼도 없다"는 식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

박 대통령 본인은 물론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그런 의도로 해당 발언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박 대통령의 발언이 배려가 부족했음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배려의 근본은 측은지심과 역지사지다. 역지사지라 함은 남과 나의 입장과 생각을 바꿔 보는 데서 출발한다. 

영어로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라는 표현도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다. 직역하면 '다른 사람 신발을 신어 봐라' 이고, 의역을 하자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봐라 정도가 된다. 이처럼 동서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그사람의 입장이 되보는 것이다. 

내 가족이, 내 자식들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발언 하나 하나가 천금의 무게를 지닌 대통령이 "물에 빠뜨려 놓고 살려내도록..." 하는 발언을 어떤 이유에서든 했다. 아쉬움을 넘어서 안타까움이 남는 이유다. 

그나저나 세월호 진상규명조사 특별위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꽃도 풀도 없어서 봄이 와도 봄같지 않았을 소군과 꽃도 풀도 지천으로 피게 될 땅에서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을 '어떤' 사람들. 누구의 봄이 더 아플까. 짐작만 할 뿐이다.

yu@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