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내 환기설비 '무작동'…'초미세먼지' 측정해 보니 2,000㎍/㎥

'뿌옇고 갑갑하다'

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귀성길 '전쟁'의 통로 중 하나인 서울역사 정문 앞에 설치돼 있는 흡연 부스 'S Lounge'를 들어가면 떠오르는 단어다. 흡연자들이 비흡연자에 대한 간접흡연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버릇처럼 흡연 부스를 찾게 되지만, 내부 상황을 보면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서울역 정문쪽에 설치된 흡연 부스. 사진=신준섭 기자

 

지난 4일 서울역 흡연 부스에서 만난 천창필씨(61)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서울 잠실에 살면서 경북 김천시에 위치한 사무실을 오가는 천씨는 매주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열차를 자주 이용하는데, 흡연자이다보니 기차를 타기 전 전 한 대를 피우기 위한 목적이다.

천씨는 "겨울이면 추워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육안으로 봐도 들어오기가 싫을 정도로 뿌옇다"라며 "이날은 그 동안 들른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그나마 (공기가) 깨끗한 상태"라고 말했다.

일반 국민들이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뿌연 흡연 부스. 과연 이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어떤 공기를 접하고 있을까.


'초미세먼지' 모니터링 기기로 측정했더니..
2,000㎍/㎥ 이상 나오기도…초미세먼지 주의보 10배 이상 수준
환경TV뉴스는 서울역 흡연 부스 내 공기질 측정을 위해 TSI사에서 만든 초미세먼지 모니터링 장비인 'AM510 에어로졸 모니터'를 설치해 봤다. 해당 장비는 초미세먼지의 변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장비다.

약 1m 높이에 설치한 초미세먼지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

 

4일 오전 9시20분부터 9시40분까지 20분간 사람의 호흡기에 가까운 위치인 약 1m 이상 높이의 삼각대에 해당 장비를 설치하고 변화하는 값을 지켜봤다. 그 결과 엄청난 수치가 도출됐다. 적게는 693㎍/㎥부터 많게는 2,410㎍/㎥까지, 실시간으로 변하는 초미세먼지 수치를 볼 수 있었다.

대기환경보전법을 보면 대기 중 초미세먼지 수치가 2시간 이상 180㎍/㎥일 경우 '초미세먼지 주의보'를 발령한다. 이 경우 어린이나 노인, 폐질환자 등은 실외활동을 금지하라는 행동 요령을 전파한다. 일반인도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한다. 그 수준보다 최대 13배 이상 높다. 게다가 여긴 실내다.

당시 서울역 흡연 부스 내 창문은 모두 열린 상태로, 바람이 불면서 공기가 순환하는 상태였다. 담배를 피던 천씨도 '깨끗한 상태'라고 했던 시점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초미세먼지 상황이다. '안좋은 상태' 때는 얼마나 나올 지, 가늠조차 힘들다.

2,000㎍/㎥을 돌파한 초미세먼지 측정 상황.

 

기기 오류가 있지 않을까하는 판단에 장비를 들고 서울역사 내로 들어가 봤다. 오전 9시40분이 조금 넘은 시점이다. 그러자 수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서울역사 내 한 가운데서 10분 정도 지켜 본 결과 56㎍/㎥에서 64㎍/㎥정도의 수준이었다. 창문을 열어 둔 흡연 부스와 비교조차 힘들다.

이 초미세먼지 수치는 또 다시 높아졌다. 9시52분쯤 장비를 들고 서울역의 서부역 방향 입구에 설치된 또 다른 흡연 부스를 찾았을 때다. 두 자릿수였던 수치는 428㎍/㎥에서 시작해 2,070㎍/㎥까지를 오갔다. 역시 20분간 측정치를 지켜 본 결과다.

이 상황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흡연자들은 '버릇처럼' 흡연 부스 안팎을 서슴없이 들어왔다 나가는 모습이다.


서울역, 흡연 부스 내 환기시설 가동 안 해
"관리하던 업체 소유권 있어 열어 놓기만 한 상태"라 답변
흡연 부스를 찾아 보면 천정에 환기시설이 달려 있다. 고기집의 환기 시설처럼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장치다. 하지만 이 시설은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가동됐으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던 초미세먼지가 상시 높게 나오는 이유다.

가동하지 않은 채 '놀고' 있는 흡연 부스 내 환기시설.

 

시설을 설치해 놓고도 가동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관리주체인 서울역에 따르면 서울역의 2개 흡연 부스는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문만 열어 놓은' 상태다. 환기장치가 있는 건 알고 있으면서도 가동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해당 시설은 '프렌즈'라는 업체가 광고를 하겠다면서 설치해 관리하던 시설인데, 지난해 7월15일 업체가 일방적으로 운영을 못하겠다며 나갔다"며 "닫았던 것을 흡연자 및 비흡연자 민원이 있어서 지난해 12월 다시 개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방은 했지만 시설 소유권은 업체에 있다 보니 환기시설은 돌리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리하자면 민원으로 흡연 부스를 다시 열었으나 환기 시설 가동은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흡연자들이 초미세먼지를 듬뿍 들이키든 말든 '나몰라라'다.

흡연 부스 내 설치된 공기청정기. 역시 가동하지 않고 '놀고' 있다.

 

당장 가동을 해도 문제다. 코레일 측 설명을 토대로 한다면 지난해 7월 이후 환기 시설에 설치돼 있는 '필터'는 한 번도 갈지 않았다. 틀어도 제대로 공기 정화가 될 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지만 마뜩한 제재 수단도 없다. 현행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에는 초미세먼지 기준조차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실내공기 상의 초미세먼지 기준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옆나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흡연 부스를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우리나라의 현실과 대비된다.

 차성일 공기청정협회 국장은 "일본의 흡연 부스는 담배 연기를 빨아들여 아예 정화까지 해 배출한다"며 "2차 피해까지 예방한다"고 설명했다.

설 귀경길, '침묵의 살인자'라고까지 불리는 초미세먼지는 정부와 코레일 '모두의 방관' 아래 서울역 흡연 부스 안에서 흡연자들을 위협할 예정이다.

sman321@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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