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논어 '안연'편에 있는 문구로 제나라 경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답한 말이다.

제 경공은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형벌을 가혹하게 했다. 소실의 아들을 태자로 삼아 훗날 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래서 '군군신신부부자자' 라는 공자의 저 유명한 8자는 작게는 '친절한 금자씨' 톤으로 하면 '너나, 혹은 너부터 잘하세요' 라고 제 경공을 꼬집은 말이기도한 동시에, 공자의 이른바 '정명(正名)' 사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명언이기도 하다.

정명은 글자 그대로 하면 '바른 이름' 이라는 뜻으로 이름과 실질을 부합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임금이 임금이려면 임금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뜻으로 흔히 쓰이는 말로 '명실상부(名實相符)'가 있다. 역시 이름과 실제가 부합해야한다는 뜻이다.

멀리 수천년 전 중국으로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조선에서도 '이름'가지고 실존적 고뇌에 빠졌던 이가 있다. 바로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이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으니 오죽이나 답답했겠는가. 그러고보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도 있다.  부르고 싶은 걸 못 부르게 하면 어떡하든 부르고 싶어 답답해 죽는 것은 인지상정이자 본능인가 보다.

난데없이 장황하게 '이름'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누군가는 '병신년'이라는 말에 상처받고 있다"는 제목의 조선일보의 한 기사 때문이다.

출처: 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丙申年 패러디 농담 퍼져...온라인서 "하지말자" 캠페인' 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기사는 '잘가라 이년(年)아! 난 더 좋은 년(年) 만날 거다! 그래봤자 병신년(年)' 이라는 모바일 연하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관련 연하장을 포털에서 찾아보니 '별빛라떼'라는 네티즌이 본인이 만들었다며 퍼갈 경우 출처를 밝혀달라고 하고 있다. 

 

 

출처:별빛라떼 디자인하우스 http://blog.naver.com/rina01

 

조선일보 기사는 이 연하장 문구를 소개하며 <새해 첫날 아침 황모(여·32)씨가 직장 동료에게 스마트폰으로 받은 모바일 연하장 내용이다. 이 연하장을 받고서 황씨는 연휴 내내 기분이 찜찜했다고 한다. 황씨는 "농담으로 보냈겠지만 새해부터 비속어가 섞인 인사를 받으니 불쾌했다"며 "장애인을 경멸하는 단어인 '병신'과 여성을 비하하는 '년'을 농담 소재로 삼은 것도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조선일보 기자는 그러면서 ''병신년' 농담 안하기 캠페인'과 ''병신년'을 소재로 한 농담을 하지 말자는 노래' 등의 사례를 소개하며 "누군가는 '병신년(丙申年)'이라는 표현에 상처받고 있다"는 한 시각 장애인의 말을 인용해 장애인과 여성을 싸잡아 비하하는 '병신년(丙申年)'이라는 말은 아무리 패러디라도 쓰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취지로 기사를 쓰고 있다.

좋은 기사다.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지 말자는 데 토를 달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 '좋은 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별로'다.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식이다.

다음 조선일보 기사 댓글 캡처

 

 

"병신년을 병신년이라고 부르는데..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란 말인가??" 라며 전국민을 '홍길동화' 하는데 극력 반발하는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왜 니들 존경대상이 욕먹는 (것) 같아 기분 잡치냐?" 라며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아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듯한 글도 있고, 나아가 "아 장애인이셨구나. 아이고 그럼 지금까지 사회약자를 욕한거네. 어떻하지"라며 특정인이 '사회약자'인지 미처 모르고 욕한데 대한 '반성'의 댓글도 있다.

"조선일보 애쓴다"거나 "이 쓰레기 찌라시야"라는 비아냥과 욕설도 눈에 띈다.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지 말자는 좋은 취지의 기사에 달린 댓글치고는 험악하고 험악하다. 

네티즌들이 말하는 '병신년(丙申年)'이 특정한 어떤 누구를 지칭하는 중층적인 의미인지, 

아무리 '병신년(丙申年)'이라도 '병신년'이라고 하면 듣기에 따라 상처받을 수 있으니 가급적 '좋은 말 쓰자'는 조선일보 기사에 왜 이렇게 네티즌들이 '조롱'과 '비아냥'을 던지는 지는 '모르겠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올해가 <'병신년'은 '병신년'이지만, '병신년'이라도 '병신년'이라고 하지 말자>는 조선일보 기사에 '아비를 아비로 부르지 말라'는 것이냐며 부아가 난 '홍길동'이 되기 싫은 수많은 네티즌들이 어깃장을 놓은 것이라고 퉁칠 수 밖에.

공자가 '군군신신부부자자' 라는 말을 하기 2백년 전쯤 '관포지교' 고사로 유명한 관중은 자신의 저서 '관자'에 이런 말을 남겼다.

'군불군즉신불신 부불부즉자부자(君不君則臣不臣 父不父則子不子)'.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니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니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공자보다 훨씬 '직설적'이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친절한 금자씨'가 등장할 차례다. '너나 잘하세요'. 병신년(丙申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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