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목숨 살린 여소방관 등 시민대표 11명 타종 동참

[환경TV뉴스]김택수 기자 = 조선시대 한양 시내에 시각을 알리던 '보신각(普信閣)' 종. 보신각의 '보신(普信)'은 '믿음을 널리 퍼뜨린다'는 뜻이다. 이 보신각을 40년간 지켜왔던 '종지기' 부부가 있다.

40년간 종을 지키고 관리하며 숱한 제야의 종 행사를 지원하고 지켜보기만 하다 세상을 떠난 종지기의 아내가  올해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 시민대표 가운데 한 명으로 타종을 한다. 

수십년 세월, 타종 행사를 옆에서 지켜보며 지원하기만 했지  '언감생심' 남편이 꿈에서나 바랬을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 남편을 대신해 종을 울리는 것이다.

보신각. 서울시 종로구 종로 2가 위치.

 


서울시가 올해도 어김없이 오는 31일 자정,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울린다.

시는 올해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 서울시장 등 고정적으로 참가하는 인사 5명과 시민대표 11명 등 16명이 제야의 종을 울린다고 28일 밝혔다.

고정인사는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의장, 서울시교육감, 서울경찰청장, 종로구청장 등 5명이다. 11명의 시민대표는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추천받은 70여 명 가운데 서울시가 사회 각 분야에서 시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인물들로 선정했다.

선정된 11명의 시민대표를 살펴보면 ▲메르스 1번 환자를 진료하다 메르스에 감염됐으나 이를 극복하고 완쾌, 진료를 재개해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준 강동 365열린의원 정경용 원장(남, 52세) ▲심폐 소생술로 11명의 귀중한 목숨을 살린 동작소방서 김지나 소방장(여, 38세).

▲13년 간 소외된 아동을 위해 헌신한 올해 서울시 복지상 수상자 성태숙 씨(여, 48세) ▲조선족 출신으로 결혼이주여성의 노동인권 및 다문화가족의 권리 증진을 위해 활동한 서울시 외국인 명예부시장 이해응 씨(여, 39세) 등이다.

▲독도에서 경비대로 근무중인 김옥환 의경 (남, 24세) ▲ 올해 서울시 장기모범납세자로 선정된 노미영 씨(여, 61세) ▲친절한 시내버스 운전기사 유충근(남, 53세) 씨 등 평범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시민들도 타종 인사로 뽑혔다.

이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이는 올해 84살의 정부남 할머니다. 

2014년 제야의 종 타종 모습.출처=서울시

 

정 할머니의 남편 고 조진호씨는 지난 70년대부터 2006년까지 보신각 종을 보호하고 관리했던 현대판 '종지기'였다.

조 씨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보신각종을 관리하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 씨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보신각종을 관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40살 무렵부터 2006년 80살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보신각종을 관리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988년 조씨가 보신각을 관리하는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는데 그 전에 보신각을 어떻게 관리해 왔고 어떤 경로로 채용됐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관련 2006년 조씨로부터 보신각 관리 업무를 인수인계받은 서울시 신철민 주무관은 "고 조진호 선생님은 나의 스승이다"며 조 씨와 보신각종에 얽힌 사연과 인연을 소개했다.

신 주무관은 2006년 당시 서울시 보신각 상설 타종사업을 기획하며 조 씨와 인연을 맺었다.

신 주무관은 "타종을 도우려면 스스로도 종을 칠 줄 알아야 한다며, 스승으로부터 타종법을 배워야 했다"며 "6개월간 가혹하리만치 매일 강행군이 지속됐고, 2006년 12월23일 세상을 떠나시기 전후로 나에게 종지기를 맡아달라 부탁하셨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루도, 한시도 쉬지않고 솔과  수건으로 부지런히 청동 종의 먼지를 닦아내던 것이 신 주무관이 기억하는 조씨의 모습이다.

신 주무관에 따르면 조 씨의 가계는 2006년 사망한 조 씨를 포함해 4대가 보신각종을 지켜온 '종지기' 가문이다. 조 씨에게 보신각종은 '종님'이라고 높여 부를만큼 귀한 존재였다는 것이 신 주무관의 말이다.

조 씨 가문과 보신각종의 인연에 대해 신 주무관은 "영친왕의 근위대 출신인 故조진호 씨 아버지는 포탄이 떨어지는 6.25사변 당시에도 종을 지키셨고, 조진호씨 어머니는 보신각에 난 불을 끄다 심한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서울시는 "제4대 보신각 종지기였던 남편과 함께 40년 동안 보신각종을 지켜온 점을 높게 평가해 정 할머니를 2015년 제야의 종 타종 인사로 선정했다"며 그동안의 노고와 헌신에 고마워했다.

보신각종은 질곡진 역사만큼 다사다난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조선시대 한양에 종을 처음 건 것은 1398년(태조 7)으로, 경기 광주에서 주조한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걸었다. 

1413년(태종 13)에 종루를 통운교로 옮기고 1458년(세조 4)에는 새로 대종(大鐘)을 주조하여 달았으나 임진왜란 때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됐다. 

그후 1619년(광해군 11)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을 걸었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임진왜란 전의 2층 종루가 아니고 1층 종각이었으며 여기에 건 종은 명례동 고개에 있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그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1895년(고종 32)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현액(懸額)이 걸린 이후 종도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됐다. 6·25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 중건하였다가 1980년 다시 2층 종루로 복원했다.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지만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야간통금이 해제되기 전인 1982년까지 보신각종은 아침과 저녁으로 종을 울려 서울 사대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렸다. 

최근에는 3.1절과 광복절, 12월 31일 제야의 행사 등에 타종 행사를 진행하고 이를 위해 만전의 준비를 다하는것이 종지기의 사명이라는 것이 신 주무관의 설명이다 

신 주무관은 그러면서 세월이 좋아졌지만 종지기가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일이 더 늘어 보신각 주변 청소와 종 관리는 물론 외국인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견학 안내, 심지어 심야에 종각 주변에서 취객과 불량배를 막아내는 일도 종지기의 일이 됐다.

신 주무관은 "올해 제야의 종 타종인사 16명이 좌우에서 종을 치면, 가운데에서 이를 설명하면서 인도하는 것이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시작하는 12월 31일 종지기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신 주무관은 그러면서 "소원이 있다면 자신의 다음 종지기는 돌아가신 조진호님의 손자가 종지기의 명맥을 잇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고등학생인 故 조진호 할아버지의 손자는 틈틈이 손 주무관에게 종을 닦고 관리하는 법 등을 배우며 예비 종지기의 길을 걷고 있다.

불교에선 33개의 하늘 33(天)이 있다고 한다. 제야의 종을 33번 울리는 것은 이 33개의 하늘을 다 열어젖혀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하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다는 의미가 있다. 

매년 12월 31일 자정이면 수만, 수십만의 인파가 보신각 주변에 모여 보신각종 소리와 함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다. 

그 하루, 그 한순간을 위해 묵묵히 종 곁에서 364일을 보낸 종지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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