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일 수가 없어요"..왜 하산하지 못했나?

[환경TV뉴스]유재광 기자 = "앞이 하나도 안보여요.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움직일 수가 없어요." 

16일 오후 6시쯤, 경남 거창소방서에 다급한 목소리로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덕유산 겨울등반에 올랐다가 조난당한 등산객들이 긴급 구조 요청을 한 것이다.

조난자들의 입산 경로와 헬기장 입간판 표시가 있다는 조난자와의 전화 통화를 바탕으로 조난자들의 위치를 파악한 거창소방서는 즉각 구조대원을 덕유산으로 올려보냈다.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3명의 구조대원은 물론, 긴급 비상전화를 돌려 비번이어서 집에서 쉬고 있던 직원들까지 모두 29명의 소방대원들이 긴급 출동했다.

당시 덕유산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로 정상 부근엔 60센티미터의 눈이 쌓여 있는 등 수십 센티미터의 눈이 쌓인데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등산로 구분은 고사하고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구조대원들은 평소 구조활동을 벌이며 눈에 익은 지형지물을 바탕으로 눈길을 헤치며 4시간 반 가량을 산길을 뚫고 올라가 오후 10시 45분쯤 조난자들을 찾아냈다.

조난자들은 모두 부산의 한 산악회 회원들로 27명이 덕유산 지봉 해발 1,300미터 지점 헬기장에 모여 있었다. 

당시 조난자들이 모여있던 덕유산 헬기장은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불어 가만히 서있으면 구조대원들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거기다 내린 눈이 바람에 날리며 길이 모두 사라져 눈으로 하산로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해 조난자들이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구조대 관계자의 말이다.

구조대 관계자는 발견 당시 일부 조난자들은 이미 탈진과 저체온증 등의 증세와 함께 극심한 불안감을 보이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에 구조대는 즉각 조난자 하산 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해가 진데다 눈발이 계속 날리고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구조대는 조난자 하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조난자는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식이 혼미한 상태여서 구조대가 눈쌓인 험한 산길을 몇시간을 업고 내려가거나, 매고 올라간 들것으로 임시 썰매를 만들어 조난자를 태워 끌고 내려오기도 했다.

제공: 경남 거창소방서

 


5시간에서 8시간 가까이 칼바람 부는 덕유산과의 악전고투 끝에 17일 오전 3시 반쯤부터 6시 반 정도까지 27명 조난자 모두 구조대원들의 도움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악몽' 같던 덕유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 저체온증에 시달리던 김 모(56.여)씨가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고 상당수가 저체온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한겨울 덕유산의 매서운 추위와 눈바람이 무섭긴 했지만 이번 덕유산 조난 사고는 인재(人災)였다는 것이 소방서 관계자의 말이다.

이들 산악회원들은 16일 오전 11시쯤 거창군 고제면 신풍령휴게소에서 횡경재와 송계사를 거치는 코스로 등산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코스는 입산에서 하산까지 6시간 정도 걸리는 데다 덕유산 등반루트 가운데서도 험하기로 악명 높아 평소에도 오전 11시 이후엔 일몰 등을 고려해 산행이 금지된 코스라는 것이 소방서 관계자의 설명이다.

더구나 이들이 산행에 나선 16일은 덕유산 일대에 폭설이 내려 오전 9시부터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상태였다.

이때문에 덕유산 국립공원사무소측은 당일 오전 9시 30분부터 덕유산 전 구간의 탐방로에 대해 '입산 통제' 조치를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이들 산악회원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산행에 나서 위험을 자초한 것으로 밝혀졌다.

거기다 이들은  명색이 '산악회원'이면서 아이젠과 헤드램프 등 기본적인 '겨울 산행' 장비조차 챙기지 않고 산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 방한복은 물론 토시나 모자처럼 바람이나 체온 저하를 막을 수 있는 간단한 소품조차 챙기지 않은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것이 소방서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냥 별다른 준비나 장비 없이 '눈 구경 가자' 식으로 폭설이 내리는 덕유산 산행에 나선 것이다.

소방서 관계자는 "이렇게 단체로 무모한 산행에 나선 사람들을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라는 말로 황당함 섞인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이종은 거창소방서 구조구급계장은 "상황이 안좋다고 판단되면 중간에 내려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며 "산행에 나설 때는 일기예보를 꼭 확인하고 폭설 등이 내리면 고립돼 사고를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바로 하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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