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끝~~?'..'사람이 죽어도 모르쇠'로 일관

 

[환경TV뉴스] 신준섭 기자=새들이 지지귀는 게 정상이어야 할 계절, 봄에 적막한 기운이 감돈다. 마치 이 땅의 모든 새들이 없어진 듯한 느낌이다. 

하늘에서 대놓고 뿌리는 화학물질, 해충을 없애겠다고 뿌린 살충제가 해충을 잡기는커녕 들판의 새들을 절멸하게 만든 결과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행한 행위가 어떻게 되돌아오는 지를 경고한 레이첼 카슨의 고전 '침묵의 봄'에서 묘사된 '봄'이다

환경운동의 역사에서는 침묵의 봄이 출간된 1951년 이후를 제 2기 환경운동이 촉발된 시기로 보고 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가 과학자문위원회를 소집해 이 책이 경고한 내용을 검토한 것을 시작으로 해 지금의 미국 환경청(EPA)이 설립됐다. 

'책 한권'이 미국 환경청이라는 세계 유수의 환경 기관을 탄생시킨 것이다. 발간된지 벌써 50년이 넘었지만 침묵의 봄이 전세계에 던진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환경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마치 '나비효과'처럼 크게 다가 올 재앙의 징후를 미리 경고한다. 그 신호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언젠가 속수무책으로 환경의 역습에 당할 수밖에 없다. 신호가 경미할 때 잡아낼수록 환경의 역습에 당할 가능성도 줄고, 당하더라도 피해는 적어진다. 

이번 폭스바겐 사태도 환경 재앙의 이런 나비효과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번에 배출가스 저감장치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폭스바겐그룹의 징후를 잡아 낸 미국 환경청은 작은 신호를 잘 인지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이 소량이라도 대기로 퍼지면 결국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어떤 식으로든 이 오염물질이 자국 국민들의 폐로 들어가게 된다는 '연결 고리'를 놓치지 않았다. 환경청의 존재 이유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폭스바겐은 결국 전세계적으로 '거짓 기술'을 팔았다고 인정했다. 폭스바겐이 뒤늦게라도 조작 사실을 인정한 것과 달리, 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환경의 역습'에 대해 '시침 뚝' 떼는 기업들도 여전히 많다. 레이첼 카슨 식으로 얘기하면 '침묵의 봄'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19세기부터 100년 이상 전통을 이어 온 영국의 종합 생활용품 업체, 레킷벤키저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는 '옥시싹싹' 등의 브랜드로 잘 알려진 글로벌 기업이다.

지난 5월 영국 레킷벤키저 본사를 찾은 피해자 (자료화면)

 

레킷벤키저 발 경미한 환경의 경고는 한국에서 시작됐다. 아무런 이유 없이 폐에 손상을 입어 죽거나 평생동안 폐병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다. 2011년 4월 공론화 된 '가습기 살균제' 얘기다.

친환경을 강조했던 이 '가습기 살균제' 화학제품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530명의 피해자와 142명의 사망자를 유발했다. 이들 중 시장 점유율 1위였던 한국지사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을 이용한 이들은 403명, 4명 중 3명꼴이다.

피해가 이렇게 커진데 대해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의 박승빈 교수는 "가습기살균제가 가습기를 통해 기화하면서 입자가 미세먼지보다 작은 수준으로 줄었을 것"이라며 "그러다보니 폐까지 손쉽게 더 많은 입자들이 도달했을 거고, 독성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해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원래 독성이 강했든 사용 과정에 독성이 증폭됐든  어느 경우든 제조사인 레킷벤키저가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레킷벤키저의 태도는 책임지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이와 관련해선 우리 정부의 우유뷰단한 태도도 한몫했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2011년 말에야 판매 중지를 명령했지만, 폐손상을 유발한 물질의 사용을 사실상 전면금지한 것은 올해 6월에 이르러서였다. 2개의 물질, 이를 사용 금지하는데 걸린 시간이 4년이다. 레킷벤키저에서 사용하는 물질은 한두가지가 아닐진데, 가습기살균제만 문제가 있을까.

지난 6월 가습기살균제 문제로 한국을 찾은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의 토마스 가저트 박사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비롯, 레킷벤키저가 공개하지 않고 있는 다른 화학물질 정보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미 자사 제품 사용자 가운데 수백 명이 죽거나 폐손상 등의 피해를 호소하며 다가올 '환경의 역습'에 대해 경미한 것도 아닌 요란한 경고음을 내고 있지만 레킷벤키저의 자세는 자발적으로 리콜까지 하겠다는 폭스바겐과 사뭇 다르다.

한국 지사에서는 피해자들과 소송이란 형태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영국에서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본사를 방문했던 지난 5월에조차 사과없이 달랑 1장의 문서로 갈음했다. '한국 지사가 잘 대해 줄거니 그냥 가라'는 것이 피해자들이 영국에서 받은 대접이다.

당시 영국에 간 이들 중에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8살 강나래 어린이도 있었다. 레이첼 카슨이 경고한 '사라져버린 새'가 미래 세대인 우리 아이들이라는 형태로 현신했지만 레킷벤키저는 무시한 것이다. 

같은 환경의 경고에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놓은 유럽 기업들의 모습, 그 결과는 당장은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두 기업에게 선사될 거라고 감히 단언해 본다. '침묵의 봄'은 침묵의 봄을 유발한 당사자가 가장 극적으로, 가장 크게 '침묵'의 피해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sman321@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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