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TV뉴스]유재광 기자 = 독일어로 'Das Auto', 영어로 하면'The Car' 쯤 된다. 자동차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 The를 붙여 자동차의 '대명사' 격으로 자신들을 지칭한다. 독일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 로고다. 단 두 단어에서 자동차 회사로서 자부심과 긍지가 묻어난다.

독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규격과 정확, 반듯함, 한마디로 ‘원칙’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들 아닌가. 그래서 오죽하면 '독일 병정' 같다는 말이 나왔을까. 그만큼 시계 침처럼 융통은 없지만 원칙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 아닌가. 

그 독일에서, 그것도 '정확'과 '규격'의 상징인 자동차 회사가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 폭스바겐 얘기다. 배기가스와 연비는 반비례 관계다. 같은 조건이면 배기가스 배출을 줄일수록 연비와 출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환경과 연비. 자동차 회사의 영원한 숙제다.

폭스바겐은 이 영원한 숙제를 쉽게 풀었다. 환경당국이 배출가스를 검사할 때와 판매 뒤 실제 주행 할 땐 다르게 작동하도록 관련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손쉽게' 연비와 배기가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폭스바겐은 그렇게 조작한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다른 것은 몰라도 '거짓'에 대해선 가혹하리만치 엄격하게 징벌하는 나라 아닌가. 

닉슨이 하야한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도 '도청' 자체가 아니라 '도청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는 닉슨의 거짓말이 직접적 계기가 돼 세계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린 나라 아닌가. 그런 나라에 자동차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해 수출했다. 폭스바겐, 독일 자동차 회사가. 

폭스바겐은 자동차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 이런 조작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을까. 도대체 폭스바겐은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무모'해 보이는 의사결정을 내린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컵에 물이 '반' 있다. 똑같이 반 남은 물 컵을 보고 어떤 이는 '반 밖에' 안남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어떤 이는 '반 이나'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자는 컵에 비어있는 곳을 보고 있고, 후자는 채워져 있는 곳을 보고 있다. 일상생활에선 대부분 '마음먹기 달렸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비유로 흔히 쓰인다.

이 반 남은 물 컵을 이번 폭스바겐 사태로 가져와 보자. 물 컵의 반을 채우고 있는 물을 '이익'(benefit) 으로, 비어있는 반을 '손실'이나 '벌칙(penalty)'로 가정해 보자. 어떤 이는 같은 반 남은 물 컵에서 '이익'을 볼 테고, 다른 어떤 이는 '벌칙'을 볼 것이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려면 이익과 손실, 그것들이 가져올 결과와 가능성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할 것이다. CEO같은 의사 결정권자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판단과 결정을 하라고, 그리고 판단과 결정에 대한 대한 책임을 지라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의사 결정권들자은 '조작'이라는 컵에 담긴 이익과 손실 가운데 이익만 보았다. 조작에 따른 비용절감, 깨끗한 디젤이라는 환상, 동급최강의 연비라는 신화, 이를 바탕으로 한 매출액 신장 등등. 조작의 ‘이익’만 보았다. 적발됐을 시 입게 될 손실과 벌칙은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 

이 과정에 조작된 소프트웨어를 납품한 보쉬가 8년전 이미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폭스바겐 내부 기술자들도 문제제기를 했지만 폭스바겐의 의사 결정권자들이 이를 묵살했다는 주장도 들린다.

회사 안팎의 지적과 경고에 눈과 귀를 닫아버린 폭스바겐 의사결정권자. 결과론적이지만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대목이다. 도대체 왜, 어떻게 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위험이나 손실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으로 ‘Prospect Theory’(조망이론, 전망이론, 기대이론) 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것이다.

A. 50% 확률로 1000원을 얻을 수도, 하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B. 99% 확률로 500원을 얻을 수 있다.

대부분 B를 택한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A. 50% 확률로 1000원을 잃을 수도, 하나도 잃지 않을 수도 있다.
B. 99% 확률로 500원을 잃을 수 있다.

대개의 경우 A를 선택한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은 이득이 예상될 경우 될수록 위험을 회피하려 하고, 손실이나 피해가 예상될 경우 기꺼이 위험을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가진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선 '모 아니면 도' 식의 '모험'을 택한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의 경우 이 조망이론과 결이 꼭 들어맞진 않지만 이른바 '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 상황에서 기꺼이 '모험'을 감수했다는 점에서 이 조망이론을 적용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의 설명이다. 

쉽게 얘기하면 조작이 걸리면 ‘크게’ 잃을 것이 명약관화한 '위험 상황'에서  안걸릴 것, 즉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또는 믿고) 걸리거나 안걸리거나, 50% 확률에 기꺼이 '조작'이라는 도박을 했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의 이런 결정에 대해 곽 교수는 ‘은행 강도’의 심리와 의사결정에 비유했다. 은행을 성공적으로 털면 큰돈을 거머쥘 수도 있지만 체포됐을 경우 잃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은행강도는 현장에서든 사후에든 대부분 체포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은행 강도를 모의하는 사람은 자기가 잡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은행을 털어 얻을 수 있는 이익만 생각하지 일이 잘못됐을 경우 잃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이 꼭 그렇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함은 남는다. 폭스바겐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왜 은행강도가 강도를 도모하는 심리 상태와 같은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일까.

곽 교수는 이런 심리 상태를 '집착'으로 설명했다. "은행 강도가 일단 '돈'에 집착하게 되면 다른 상황이나 조건들은 전혀 보지 못하듯 무언가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게 되면 그것 밖에는 안보인다. 다른 것은 보이지도, 따져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폭스바겐의 의사결정권자들은 '무엇'에 그렇게 집착한 것일까. 폭스바겐 회사 내부적으로는 동료이자 경쟁자, 회사 외부적으로는 벤츠와 BMW 등 다른 경쟁자와 싸워 이기는 것, 즉 '성공'에 너무 집착한 결과 '조작'이라는 결정까지 내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와관련 뇌 과학자들은 이번 폭스바겐 사태를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도파민 중독’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진화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도 군집 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군집 생활에선 서열 구분이 필수다. 높은 서열로 올라가기 위한 투쟁은 필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서열 싸움에서 승리하거나 어떤 목표를 이뤄내면 뭔가 ‘짜릿한’ 성취감이 든다. 바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의 작용이다. 

일단 짜릿한 자극을 안겨주는 이 도파민에 중독되면 되돌아 갈 수는 없다. 같은 방법으로 끝없이 도파민 분비를 추구하게 된다. 바로 도파민 중독인 것이다. 이와 관련 페달을 밟으면 도파민이 분출되도록 뇌를 통제해 놓은 쥐는 먹지도, 자지도, 배란기의 암컷도 돌보지 않고 오직 도파민 페달만 밟다가 죽는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직자 등 사회에서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런 도파민 중독 성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도파민이 주는 짜릿함을 자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도파민 중독은 일에 도움을 주지만 문제는 그 정도다. 도파민 중독이 심해지게 되면 도파민을 분비하기 위해, 즉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즉 폭스바겐의 경우에도 성공에 대한 그릇된 집착과 도파민 중독이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이라는 어이없는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것이 뇌과학자들의 추론이다.

이런 조작의 대가와 이익은 ‘짜릿’했다. ‘클린 디젤’이라는 신화를 바탕으로 폭스바겐은 올해 상반기에 전세계 판매량 1위에 등극했다. 아마도 이런 의사 결정을 내린 사람, 혹은 추인한 사람은 조직내에서 타인들을 밟고 꼭대기로 꼭대기로 올라갔을 것이다. 경쟁자들을 제치고 서열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높이 올라간만큼 그 추락은 더 아플 것이다. 마르틴 빈테르코른 폭스바겐 최고경영자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신은 몰랐다"고 하지만 누구도 믿지 않는 눈치다. 이번 조작에 연루된 사람들은 독일 검찰의 수사를 받을 일만 남았다. 

폭스바겐 회사 자체도 전 세계적으로 최대 1100만대에 이르는 차량을 리콜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상 최대 리콜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쓰게 됐다. 수십조 원의 리콜 비용과 수십조 원에 달하는 벌금, 액수가 얼마나 될지 모를 줄소송이 폭스바겐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회사가 됐다는 것이 폭스바겐으로서는 두고두고 뼈아플 것이다. 성공에 대한 그릇된 집착이든 도파민 중독에서 비롯됐든 몇몇 소수 의사 결정권자의 잘못된 결정이 남긴 대가다.

이쯤에서 ‘합리적’ 의심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배기가스 조작. 폭스바겐만 그랬을까. 벤츠는? BMW는? 이미 유럽에선 환경 단체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차는? 

환경TV가 취재해 보니 현대차 관계자로부터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우린 그런 ‘기술’ 없어요.” 이 관계자 말마따나 ‘그런’ 기술이 없기를, 있어도 안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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