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만 환경보건기술연구원 원장

백영만 환경보건기술연구원 원장

 

[환경TV뉴스] 1997년 IMF 사태로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높은 성장성과 고학력 인프라를 갖춘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대우, 한보, 삼미, 해태 등의 그룹들이 해체되고, 외국기업에 인수된 바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경제성장을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내세우고 환경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시기라 외국 기업들의 체계적이고 선진화된 환경리스크 관리시스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로 인해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감수한 바 있다.

외국기업들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기업이나 부지를 인수할 때 경제적 가치나 회계, 법률적 측면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 특히 토양환경 상태를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왔는데 이는 미국이 1980년 후커 케미컬(Hooker Chemical)에 의한 러브캐널(Love Canal) 사건을 계기로 일명 수퍼펀드법(CERCLA)을 제정해 토양오염 원인자의 배상책임 의무를 강력하게 부과했고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EU 선진국들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2001년 토양환경보전법을 개정해 토양환경평가 제도를 도입했으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토양환경평가 시장은 발전된 것이 없다.

예컨대 지난 8월 현재 토양환경평가기관이 44개나 되지만, 토양환경평가 활용 실적은 매년 10여건에 불과해 미국의 연평균 25만∼30만건과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격차가 있는 이유는 정부의 홍보가 미흡해 당사자들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신고가 누락된 것인지 아니면 토양환경평가기관으로 지정을 받지 않은 무자격 기관들로 인해 실적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인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환경부의 적극적인 홍보 및 제도적 뒷받침이 한계에 봉착해 있고 부동산 거래나 기업 M&A의 당사자인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토양환경평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듯하다. 

이는 정부 및 공공기관들이 2013년부터 반환 미군기지나 군사시설, 공공부지에 대한 토양환경평가를 시행하고 있으나, 그 실적이 미미하고 토지매매 표준계약서의 개정을 통한 수용가액 산정에 토양환경평가 결과 반영, 한국감정평가협회와 전문교육을 통한 토양오염 정화비용의 부동산 가치산정, 은행이나 자산관리공사 등 금융여신 그룹들과 토양오염 자발적 협약 체결을 통한 환경리스크 사전 예방 등의 다양한 홍보와 정책 개선 노력들이 아직까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기업과 금융여신 그룹 등 민간의 인식 전환이 더욱 강조되는데 먼저 매도인은 토양이 오염되지 않도록 사전예방 차원에서 환경관리를 철저히 하고 땅 속의 오염 여부를 자발적인 토양환경평가를 통해 확인한 뒤 지속 관리 또는 정화 조치를 취함으로써 추후 내 땅의 값어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반면 매수인 입장에서는 계약 전 토양오염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추후 발생 가능한 분쟁과 소송, 그리고 재정적 손실이나 사회적, 행정적 부담을 면제받기 위한 적극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002년 서울시 구로구 기아자동차 출하장 부지를 프라임개발이 인수한 후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건설하기 전 토양환경평가를 실시한 결과 토양오염이 발견돼 약 108억원의 정화비용이 소요되자 전 소유주인 세아베스틸(구 기아특수강)과 계약 당사자인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34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았으나, 나머지 74억원은 프라임 개발이 부담한 사례가 있다. 

만약 계약 전 토양환경평가를 실시했더라면 프라임산업은 정화비용을 한 푼도 부담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부지 인수 전 토양환경평가를 수행하지 않은데 따른 부담이 매우 크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토양오염을 사전 예방하고 각종 분쟁과 소송으로 인한 사회적 낭비를 없애며 선의의 무과실 책임자를 양산하지 않으려면 침체되어 있는 토양환경평가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환경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정책 개선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매매 당사자인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내 땅의 소중한 가치를 유지하고 높여가기 위해서는 토양환경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백영만 원장 약력>
-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 환경공학과 박사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현(現) 환경보건기술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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