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서울 강남에 있는 피부과에 갔었다. 평소보다 상당히 한가하다. 간호사가 말한다. “어제부터 갑자기 환자가 뚝 끊겼어요. 정기적으로 오던 환자 중에서도 안 오시는 분이 많아요. 여기는 피부과인데...”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다. 젊은 남녀가 들어오더니 동시에 마스크를 찾는다. 가장 성능이 좋은 걸로 달란다. 순간, “어, 나도 하고 다녀야 되는 거 아닌가?”

오늘 아침에 출근하는데 큰 애가 말한다. “아빠 어디어디 병원은 절대 가시면 안돼요! 어디어디 병원은 격리병동이 있다니까 근처 지날 때는 삥 돌아가세요.”

국민들이 느끼는 공포의 수준이다. 정부당국은 SNS 등을 통해 급속하게 전파되는 ‘소식’들을 그저 ‘괴담’ 수준이라고 너무 동요할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그 괴담이 전철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들에게는 아주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공포감으로 다가오는데 어쩌랴.

출근길 라디오에서 CBS 김진오 기자가 일갈한다. 과연 국가는, 과연 정부는 무엇이냐고. 국민의 생명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 정부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이냐고 묻고 또 묻는다. 누가 우리 국민들에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할 것인가.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국회와 기싸움을 하느라 여념이 있을까?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의 여파로 집안싸움에 몰두중?

새정치민주연합은? 총선전략 짠다고 경기도 어디엔가 모여서 이틀째 워크숍?

총리실은? 황교안 총리후보자 청문회 준비해야지?

아! 결국 김진오 기자의 핏대 선 지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국가, 정부라는 이름에 최소한 부합하려면, 당장 박근혜 대통령의 집무실이 오송의 질병관리본부여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에서 24시간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받으며 메르스 확산을 막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전 내각을 질병관리본부에 모아놓고 부처별로, 또 전 내각이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골몰해야 한다. 모든부처가 메르스와 관계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당분간 다른 업무에 우선해 확산방지책을 짜내야 한다.

지금 이것보다 더 급하고 위중한 일이 있는가? 국민의 목숨이 달린 일에 매달리는 것이 진정 정부일 터.

이미 보건복지부의 초라한 역량은 바닥을 드러냈으므로 부처별로 업무를 분장하여 하나하나 점검하고 챙겨야 한다. 부처의 업무성격 등에 맞게, A부처는 감염확산 경로 파악, B부처는 격리병동 확대건립 방안, C부처는 경제 파장 최소화 대책 마련 식이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도 당분간 열 일 제쳐두고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정치인들은 보건복지부의 대응이 늦었다고 호통 칠 자격이 없다. 처음부터 국회의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면 보건복지부의 대응이 그렇게 안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중국 양쯔강에서 458명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자 시진핑 국가주석은 리커창 총리와 함께 전용기를 타고 현장으로 날아가서 구조를 진두지휘했다. 그야말로 팔을 걷어붙였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적인 재난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단순히 한 지도자의 역량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의 명운이 갈리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국가지도자를 직접 손으로 뽑고 끝까지 믿어주며 따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

박 대통령이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앞으로 열흘 뒤 출국이다.

그런데 지금, TV 뉴스특보는 ‘확산, 학교휴업, 경제타격’ 등등의 단어들을 어제 보다 훨씬 더 많이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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