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섭 한국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
최주섭 한국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

유엔환경총회는 2022년 2월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해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소비, 처리까지 전 주기를 규제하는 국제협약을 2024년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국제협약 마련을 위한 정부간협상위원회(INC)는 금년 6월 파리에서 2차 회의를 마쳤다. 내년 하반기 부산에서 열리는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 회의에서 협약은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환경부는 금년 1월 2023년도 자원순환시책을 발표했다. 플라스틱 생산·소비·재활용 전 과정의 순환경제 전환을 목표로 하되, 세부 시책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 감축, 폐플라스틱 선별 자동화, 폐플라스틱 열분해 재활용 촉진, 물질·화학적 원료 재활용 촉진이 포함됐다. 

대기업들은 국내외적인 폐기물 관련 정책 방향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석유화학기업 등은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공장을 세우겠다고 서둘러 발표했다. LG화학은 충남 당진에 폐플라스틱 열분해공장(연산 2만 톤)을 착공해 2024년에 가동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울산제2공장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설비(연산 11만 톤)를, GS칼텍스는 여수에 연산 5만 톤 규모의 열분해유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SK지오센트릭은 울산에 폐플라스틱 재활용종합단지(연간 폐플라스틱 25만 톤) 건설을 목표로 10월 초에 착공식을 가졌다.

기업들이 서둘러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나선 건, 전세계적인 환경규제 강화가 그 배경이다. 유럽연합은 PET 재질 음료병을 만들 때 재생PET 사용율을 2025년부터 25%, 2030년부터 30% 이상을 의무화했다. 또 2021년부터 포장재 플라스틱 폐기물에 1㎏당 0.8유로를 부과하는 ‘플라스틱세’도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PET병 재생원료 사용 비율을 2023년도 5%에서 2030년까지 30%로 확대하는 계획을 세웠다. 중소규모로 운영하는 폐플라스틱 열분해 재활용사업체들은 정부의 열분해 재활용 촉진 시책에 힘을 얻어 경쟁적으로 비연속식 열분해공장 15개를 세웠다. 지자체 6개소도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공공 열분해재활용 시설을 준비하고 있다. 시멘트 제조업체들은 제조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유연탄의 수입 대신 국내 발생 폐플라스틱 등 가연성폐기물을 대체연로로 사용하는 시설을 연간 250만 톤으로 늘렸다. 

이에 따라 국내 폐플라스틱 수요시장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올해 4월 폐플라스틱 고형연료(SRF)재활용업, 열분해재활용업 및 가연성폐기물 소각처리업 등을 회원으로 하는 단체들이 모여 시멘트업계의 폐플라스틱 사용 확대를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재활용 원료로 사용하는 폐플라스틱 반입량이 줄고, 가연성폐기물을 소각 처리하는 업체들까지 일감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9월 석유화학협회는 시멘트 생산업체들이 폐플라스틱 소각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석유화학 업계가 현재 건설 중인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열분해유 공장이 완공되면 최소 연 400만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시멘트업계는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폐플라스틱 등 가연성폐기물로 화석연료인 석탄을 대체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결국 국내 폐플라스틱 발생량 연간 1000만 톤을 놓고 사업 영역과 물량 확보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찾기 위해 현실을 직시해보자. 폐플라스틱은 선별 정도에 따라 재활용 방법이 달라진다. 가정이나 사업장에서 분리배출한 생활계 폐플라스틱은 인력 선별과 기계 선별 방법으로 제일 깨끗한 상급은 재생원료를 만드는 물질 재활용으로, 복합재질 또는 이물질이 일부 들어있는 중급은 열분해 및 화학적 재활용으로, 선별 잔재물인 하급은 시멘트 소성로의 연료로 사용하고, 재활용이 불가능한 나머지는 소각 처리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종류별로 선별된 폐플라스틱의 품질 구분은 경제성이 고려된다. 폐플라스틱의 분리배출, 분리수거·운반, 선별을 제대로 하려면 수고와 비용 부담의 문제가 따른다. 평균적으로 지자체 선별장에서 폐플라스틱 반입량의 25%만이 유가 재활용품으로 골라지고 있다. 선별 공정에 필요한 인력 확보 비용와 기계설비의 한계로 유가 재활용품의 선별량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75%는 톤당 처리비 13만원 내외로 폐기물 중간처리업체에 위탁처리하고 있다. 중간처리업체는 선별비용과 수익을 비교하여 경제성이 있는 것만 일부 골라내고 잔재물은 시멘트 제조업체(위탁처리비 톤당 5만원 내외) 또는 소각업체(위탁처리비 톤당 25만원 내외)에 넘기는 것이 현실이다. 

폐플라스틱 물량 확보 전쟁을 사전에 막기 위한 대책을 찾아야 한다. 우선적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이 활성화되려면 선별된 폐플라스틱 총량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선별 인력 증원, 자동화 선별설비 설치가 필요하다. 이에는 관련 예산의 증액이 필요하다.

정부는 폐플라스틱 선별 자동화를 위해 공공선별시설의 국고보조를 늘려가고 있다. 쓰레기종량제봉투 내에 들어있는 폐플라스틱을 걸러내기 위해 봉투를 찢어내어 골라내는 전처리시설 설치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처리량의 70%를 담당하는 민간선별업체들이 선별량을 늘리고 자동화 선별 설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선별품의 수익성 보장과 안정적인 수요가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고객사에서 비용이 비싸도 재활용 플라스틱을 요구해와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에 돈을 받고 가져왔다면, 이제는 돈을 내고 가져와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서 플라스틱 시장의 교통정리 해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비닐 등 플라스틱 필름류를 이용해 성형제품을 만들거나 열분해하는 업체들은 양질의 원료 확보 경쟁으로 무상 인수에서 운반비에 알파를 보태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폐플라스틱 선별품의 가격 인상은 재생원료나 열분해유의 인상을 가져올 것이다.

국내 생산자책임제도를 통해 관리되는 플라스틱 양은 2020년 기준으로 EPR품목 출고수입량 110만3812톤, 자발적협약품목 사용량 120만4741톤, 폐기물부담금 품목 출고수입량 73만1594톤으로 합해 304만147톤이다. 폐플라스틱 발생량 1098만2883톤의 27.7%에 지나지 않는다. 폐플라스틱 선별 재활용사업의 수익성 보장은 생산자책임의 확대로 보전되어야 할 것이다. 국고 지원의 생활계 폐플라스틱 선별시설에 대해 폐플라스틱 선별 목표량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물질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과 열적 재활용이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하려면 선별된 폐플라스틱의 품질 등급화가 필요하다. 작년부터 대기업들은 전국 일원의 폐플라스틱 회수재활용업체들을 방문했다. 폐플라스틱 수급상황과 생산된 재생원료, 열분해유, 고형연료 등의 품질과 생산량을 살폈다. 대규모 재활용시설을 가동하려면 적정한 등급의 원료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기업들이 폐플라스틱 품질이나 공급 불확실성 탓에 폐플라스틱 재활용사업 투자계획 마련에 어려움을 호소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폐플라스틱 수급방안 조사연구사업 용역을 발주했다. 연구의 주요 목표는 폐플라스틱 배출원별 발생량이나 선별처리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용역 결과를 기대한다. 선별품의 품질 등급이 정해지면 EPR 선별 및 재활용지원금의 차등화로 상급 선별품은 물질재활용 용도로, 중급 선별품은 화학적 재활용으로 하급품은 열적 재활용으로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폐플라스틱 재활용 정책 중 물질 재활용 우선 정책을 관련 부처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 고형연료나 열분해유의 연료 이용은 일회용 재활용 방법이다.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 원료에 혼입하거나 성형제품의 생산은 신재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이는 방법이며 더구나 제품의 사용 후 반복적 재활용이 가능하다.

중소기업이 수십년간 이어온 물질 재활용기술 개발의 지원기반을 마련해 선별품 품질인증 지원 및 재생원료 및 제품의 품질 고급화를 촉진해야 한다. PET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정책은 PP, PE 등 재생원료로 확대되어야 한다. 또 물질 재활용제품의 수익성 확보와 판로의 보장이 필요하다. 재생원료 100%를 사용하는 성형제품의 경우 지자체와 공공기관과 MOU를 체결, 주문생산형으로 유도해 안정적인 수요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농어가가 소비하는 농축수산용 재활용제품의 경우 구입비의 지원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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