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지역 공장 증·신설 등 투자 지속하는 국내 배터리 업계
소재 부분 강점 가진 중국과도 협력, 향후 FEOC 대응이 관건

미국과 중국의 무역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사진=클립아트)/그린포스트코리아
미국과 중국의 무역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사진=클립아트)/그린포스트코리아

미국과 중국의 무역 경쟁이 심화되면서 그 사이에 낀 국내 기업들의 눈치 싸움도 심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핵심 소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업계는 미국의 탈중국 압박에도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수혜를 챙기고,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투트랙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 반도체로 제대로 붙은 미국과 중국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세계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제동맹을 강화해 중국 패싱을 유도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러한 조치에 경제보복 등으로 반격에 나서면서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대표적인 갈등은 반도체 산업이다. 지난달 21일 중국 사이버정보국(CAC)은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제품에서 보안의 문제가 발견됐다”며 “자국 기업들의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칩과 과학법(이하 반도체법) 등으로 중국을 견제해온 미국에 대한 보복조치에 나선 것이다. 특히 지난달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대중 견제’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중국이 즉각적인 반격에 돌입했다는 평가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이러한 조치에 즉각 반발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는 분명히 경제적 강압에 대한 G7의 강력한 입장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라고 평하며 “중국의 조치에 따른 반도체 시장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G7 동맹 및 파트너들과 긴밀한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국 하원의 마이크 갤러거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동맹국인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판매를 늘리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졸지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버린 상황에 놓인 국내 반도체 업계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러한 미중 공방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입장과 실체가 불분명한 외부 논란에 휘말리기 보다 전략적 무대응이 바람직하다는 시각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 반도체 다음이 될 배터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다리기 시작

이처럼 미-중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만큼이나 주목받는 산업이 있다. 바로 배터리 산업이다. 탄소중립과 전동화에 발맞춰 배터리 산업은 제2의 반도체로 꼽힌다.

이에 미국은 IRA를 통해 미국 중심의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도모하고 있다. IRA의 주요 골자는 미국이나 북미, 미국과 FTA 협정을 체결한 국가 등에서 제조, 생산되는 친환경 제품 및 기술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배터리 산업의 경우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이 주어진다. 이를 통해 미국은 배터리 산업의 북미지역 투자를 유도하고, 배터리 산업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다양한 완성차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지속적인 북미지역 투자로 IRA 최대 수혜 기업으로 떠올랐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지역에 미시간 단독공장과 제너럴모터스(GM)과의 합작공장 ‘얼티엠셀스’ 1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얼티엠셀스 1,2 공장, 혼다와 합작공장 등도 건설 중이다.

또한 7조2000억원을 투자해 원통형 에너지저장장치(ESS),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단독공장 등 8개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러한 북미 지역 공장들이 완성될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내 생산력은 최대 260GWh에 달한다. 배터리 단일기업으로써 북미 지역 생산력 최대치다.

SK온과 삼성SDI도 미국 내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SK온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협력해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전기차 배터리 셀 합작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SK온은 미국 포드사와도 합작사를 운영, 블루오벌 SK 켄터키·테네시 공장도 건립하고 있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 GM 등과 협력해 미국 현지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은 2025년 1분기, GM과 합작공장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배터리기업은 미국의 의도대로 IRA의 세제혜택을 위해 북미지역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의 또다른 의도인 중국과의 거리두기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배터리 업계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4월 중국 리튬화합물 제조사 ‘야화’와 모로코에서 양극재 소재인 수산화리튬을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2022년부터 중국 난징에서 93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생산량을 145GWh로 확대할 예정이다.

SK온은 에코프로와 함께 지난 3월 중국 거린메이(GEM)과 합작법인 'GEM코리아뉴에너지머티리얼즈‘를 설립했다. GEM코리아뉴에너지머티리얼즈는 새만금국가산업단지에 1조2100억원을 투자해 내년 연산 5만톤 규모의 전구체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중국 텐진에서 소형 배터리, 중국 시안에서 중대형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SDI 역시 2021년 16억 위안(약 3000억원)을 투입해 생산라인을 교체, 신설하는 등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상하이에 배터리 R&D 연구소를 설립하며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외에도 LG화학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합작법인을 설립,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연산 10만톤 규모의 전구체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포스코퓨처엠은 화유코발트, CNGR 등과 코발트 공급 및 전구체 생산 등에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도 '탈중국' 아닌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한-중 배터리 업계. 사진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새만금국가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는 LG화학(사진=LG화학)/그린포스트코리아
미국의 압박에도 '탈중국' 아닌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한-중 배터리 업계. 사진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새만금국가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는 LG화학(사진=LG화학)/그린포스트코리아

◇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권 점하는 투 트랙 전략 

이처럼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의 압박에도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은 배터리 공급망에서 소재 부문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원료자원과 낮은 환경규제로 원료 채굴부터 정제·제련까지 가공하는 기업들이 중국에 몰려있다. 실제 중국은 지난해 기준 희토류 매장량이 전 세계 36.67%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간 16만8000톤의 희토류를 생산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중국은 배터리 핵심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배터리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을 조합해 만드는데 중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양극재 58%, 음극재 86%, 전해액 59%, 분리막 56%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국내 배터리 산업의 경우 수산화리튬, 니켈 등의 주요 광물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수산화리튬의 경우 중국산 비중이 87.9%에 달한다. 중국의 의존도를 한꺼번에 낮출 수 없는 상황인 국내 기업들은 화유코발트, 이화, GEM 등의 중국기업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IRA에 대비해 소재 공급망을 다양화하고 있지만 중국의 손도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중국이 전구체 등의 핵심 소재의 수출을 규제할 경우 핵심 소재 가격이 오르고 생산에 차질을 겪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과의 협력 관계 유지에는 변수가 존재한다. IRA는 국내 배터리 업체에게 핵심광물을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해도 FTA 체결국이 가공해 50% 이상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세액공제를 제공한다고 유예해준 바 있다. 이로써 국내 배터리업계는 중국으로부터 핵심 소재를 받아서 사용해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단 이는 2025년까지다. IRA는 세액공제 수혜를 위해서는 배터리 부품은 2024년, 핵심광물은 2025년 ‘외국 우려단체(FEOC)’에서 조달해선 안된다고 규정했다. FEOC 리스트와 규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흐름상 중국 기업이 대다수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FEOC 세부지침은 빠르면 이달 중으로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국내 배터리 산업계는 상황을 주시하며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LG화학은 지난 4월 콘퍼런스콜에서 “중국이 FEOC로 지정되고 합작사 지분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면 LG화학이 지분을 전량 인수하는 방법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 업계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는데, 최대 지분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FEOC 지정여부가 갈릴 것”이라며 “국내 기업이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다면 FEOC의 영향에서 안전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밝혔다.

hdlim@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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