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택 편집인
이용택 편집인

지성은 그리스인에 뒤지고 체력은 게르만인에 밀렸다. 그렇다고 경제력이 최고도 아니었다.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못했다. 그런 로마인이었건만 천 년 동안이나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찾았다. 귀족이 솔선수범에 전쟁에 나가 피를 흘리고 남을 위해 재산을 환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지성과 체력, 경제력 등의 열세를 뒤집을 정도로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게 시오노 나나미의 해석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이라는 노블레스(noblesse)와 ‘책임이 있다’는 뜻의 오블리주(oblige)를 합성해 만든 용어다. 귀족들이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는 노블레스 대접을 받으면서 오블리주를 방기하는 공직자들이 넘쳐난다.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특히 그렇다.

시민단체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200여가지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 급여와 지원금도 많다. 국회의원은 1억3,000만원(매월 약 1,160만원)의 급여를 받고 7명의 보좌관을 둔다. 보좌관의 연봉 총액은 5억2,000만원이다. 여기에 연간 특별활동비 564만원, 간식비 600만원, 해외시찰비 약 2,000만원, 차량지원비 1,740만원, 택시비 1,000만원, 야간특근비 770만원, 문자발송료 700만원, 명절휴가비 820만원 등 모두 합치면 국회의원 1인당 1년에 7억700만원이 든다. 급여도 많은데 명절휴가비까지 꼭꼭 챙기는 구조다.

국회의원들에게 피 같은 세금으로 이렇게 많은 돈을 주는 이유는 자명하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의정활동 기간에 가상화폐 투자를 하거나 부동산 투자를 해 돈을 불리는 데 혈안이 된 국회의원들을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꿈이라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된다. 오히려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이 말은 병들고 부패한 귀족이라는 얘기다. 나라를 쇠퇴하게 하는 사람들로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회의원 1인당 평균 재산총액은 올해 34억8,000만원으로 21대 국회가 출범한 3년 전보다 7억3,000만원이 늘어났다. 경기침체로 국민의 살림살이는 쪼그라든 상황에서 재산이 이렇게 늘어난 것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더 어이없는 것은 의정활동 기간에도 많은 국회의원이 부동산을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국회의원 60명이 부동산을 과다 보유하며 임대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의정활동 기간 부동산을 추가매입해 경실련의 ‘과다 부동산 보유기준’에 부합하는 국회의원이 2021년 3명, 지난해 4명, 올해 5명에 달했다. 상임위 회의 도중 가상화폐 투자를 한 국회의원뿐 아니라 이들 역시 국회의원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과도하게 부동산을 보유하거나 다주택을 보유하면 당연히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집값과 전세사기 문제를 해결하라는 국민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을까.

이제 제22대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여야 모두 총선을 겨냥해 민심잡기에 나선 가운데 기존 국회의원과 예비 후보자들도 공천을 받기 위한 물밑경쟁에 들어갔다. 지금부터라도 의정활동 기간에 가상화폐는 물론이고 부동산 투자를 한 기존 국회의원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단행해 문제가 있을 경우 반드시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국민의 모범이 돼야 할 노블레스들이 오블리주를 갖기는커녕 국민의 꿈을 도둑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코 200여 가지의 특권과 고액 급여를 받는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

yt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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