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택 편집인
이용택 편집인

꽤 오래전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엘리자베스 뉴턴이 한 실험이다. 실험 제목은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Tapper and Listener)’.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렸던 내용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한 사람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박자에 맞춰 탁자를 두드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음악을 맞히는 게임이다.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같이 누구나 아는 노래 120곡 정도를 들려줬다. 이에 맞춰 탁자를 두드리면 듣는 자는 이를 듣고 무슨 노래인 지를 맞히면 된다.

과연 정답이 얼마나 나왔을까. 두드리는 사람은 50% 정도 정답을 맞혔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제목을 맞힌 노래는 단 3곡뿐이었다. 정답률이 3%도 안 된다. 50%가량 맞혔을 것이라는 예상과 3%도 안 되는 정답률, 이 차이가 바로 최고경영자(CEO)와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라는 게 이 실험의 요지다.

CEO는 단순화한 전략 문구나 캐치프레이즈에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등을 담아 구성원들에게 전달하면 구성원은 쉽게 이를 이해할 것으로 판단하지만 실제로는 단지 탁자 두드리는 소리로만 들릴 수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가 발생하고 실행에 문제가 생긴다. 둘 사이의 간극은 더 벌어진다.

오래된 이 실험 얘기를 장황하게 소개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벌써 정권을 잡은 지 1년이 돼 가지만 국민 지지율이 좀체 오르지 않고 오히려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수 없이 펼친 정책 홍보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두드리는 자가 열심히 두드렸지만 듣는 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겉돌았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근로시간 개편안이다. 지난 3월 6일 발표 당시 취지는 그럴싸했다. 법정근무시간 40시간에 주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한 기존의 ‘주 52시간제’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유연화해 주 최대 29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한 ‘주 최대 69시간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일이 바쁠 땐 집중적으로 일하고 쉴 땐 몰아서 쉬자는 취지였다. 목표는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근로자 건강권 보호 강화, 휴가활성화를 통한 휴식권 보장, 유연한 근무방식 확산 등이다.

하지만 두드리는 자의 의도와 달리 듣는 자는 엉뚱하게 받아들였다. 지금도 휴가를 제대로 못 찾아 먹는 판에 근무시간만 늘리자는 정책으로 오해했다. 국민참여입법센터에 이 법안에 대해 올라온 공개의견 43건 중 찬성률은 10%에 불과했을 정도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이어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보완을 지시했지만 때가 늦었다. 이 개편안은 지금 용도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여전히 반발이 수그러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이 정부에 대한 부정 평가의 주류를 이루는 외교문제, 일본관계 및 강제동원 배상문제 등도 당초 의도와 달리 설득과 소통에 실패한 사례들이다.

열심히 두드리는 데도 잘못 알아들으면 그 정책은 잠시 멈추고 재검토하는 게 마땅하다. 그리고 설득하고 소통하는 게 먼저다. 기업 CEO가 조직원들에게 아무리 좋은 비전을 설명해도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능률은 커녕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다행인 것은 이 정부는 그래도 아직 4년이나 남아있다. 지지율이 낮다는 것은 오를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주식시장에서 주식투자자들이 원하는 그래프는 ‘전약후강 (前弱後強)’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해법은 다양하지만 다산 정약용의 저서 ‘흠흠신서(欽欽新書)’가 가슴에 와닿는다.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책 제목이 그렇다. 흠흠은 ‘삼가고 삼가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소통하고 소통하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개혁을 멈추지 않되 먼저 삼가고 삼가면서 소통하고 소통하라는 얘기다. 그러면  전약후강의 그래프가 그려질 수 있다.

yt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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