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융당국 조기 진화 나서
뱅크런 확산 우려는 여전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 낮지만 미 증시 당분간 약세”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미국 정부 개입에 일단락됐다. 다만 미국의 중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 Bankrun) 확산 우려는 남아있는 상태다.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당분간 미국 시장과 기술기업 등 성장주의 상대적인 약세가 전망된다.

미국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SVB 사태가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다만 뱅크런 확산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사진=Unsplash)/그린포스트코리아
미국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SVB 사태가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다만 뱅크런 확산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사진=Unsplash)/그린포스트코리아

12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는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와 공동성명을 내고, 예금자 보호 한도와 관계없이 SVB 은행에 예치된 모든 예금을 보호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이 연준과 FDIC의 권고를 조 바이든 대통령과 협의해 빠르게 상황 진화에 나선 것이다. 예금주들의 자금 인출은 13일 월요일부터 가능해진다.

SVB는 헬스케어, 생명과학 스타트업이 주 고객이던 투자은행이다. 풍부한 유동성 환경에서 미국 내 자산규모 16위 은행으로 성장했다. 긴축이 시작되면서 스타트업들의 돈줄이 마르자 예금 인출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었다. SVB는 보유한 지급준비금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손실을 보며 채권을 매각했고,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 확충 계획을 발표했지만 불안한 예금주들의 인출이 일시에 몰리면서 9일 결국 뱅크런이 발생했다.

금융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미국 금융당국은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10일 오전 SVB를 폐쇄하고 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 SVB는 뱅크런이 발생한 지 36시간 만에 초고속으로 파산했다. 

예금자 보호와 함께 은행들에 대한 지원책도 나왔다. 연준은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기금(BTFP: Bank Term Funding Program)을 조성한다. 미국 국채,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담보로 내놓은 금융기관에 1년간 자금을 대출한다는 방침이다. 담보 가치는 시장가가 아닌 액면가로 평가할 계획이다.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하락한 만큼 대출 시 이를 보전해주려는 의도다.

SVB 파산 이틀 만에 폐쇄된 시그니처뱅크의 예금도 전액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뱅크런 확산을 우려한 금융당국의 선제적인 조치로 풀이된다. 시그니처뱅크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암호화폐 친화 은행이다.

다만 뱅크런 확산 우려는 완전히 진화되진 못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제 2의 SVB’가 될 곳들을 추려내고 있다. 은행의 전통 수익 구조인 대출보다 증권 투자 비율이 높거나 스타트업 위주의 예금 비중이 높은 곳들이 거론된다. 팩 웨스트 뱅코프, 찰스 슈왑 등이 관련 기업으로 꼽힌다.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 낮아…성장주 약세는 불가피

전문가들은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있다. 다만 미국 증시와 성장주들의 상대적 약세가 예상된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의 경우 손실에 대한 규모와 실체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스템 리스크로 해석될 가능성은 적다”고 설명했다.

또 SVB가 전통 은행들과 달리 특수한 구조를 보이고 있어 은행업종 전반의 위험으로 보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SVB의 소매 예금(retail deposit) 비중은 6%에 불과했고, 총 예금(수신) 계정 1730억달러 중 스타트업 고객 비중이 39%, VC/PE 등 관련 펀드 고객 비중이 13% 규모 등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 은행이 손익 관련 자산의 20% 규모(산업 중간값)를 증권 자산으로 보유한 것과 달리 60.4%를 채권으로 구성하는 등 비일반적인 포트폴리오를 보유했다.

이 연구원은 “다만 유사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중소형 은행들에 대한 검증 과정은 불가피하다”며 “관건은 뱅크런의 확산 가능성”이라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미국 중소형 은행에 대한 검증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미국과 성장주의 상대적인 부진 가능성을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3월 FOMC에서 연준의 빅스텝 우려가 완화된 것 보다는 신성장 기업에 대한 현금 소진 우려가 높아졌다”며 “약세 전환된 달러화도 이러한 현상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이 뱅크런을 촉발했다는 인식이 확산할 것을 우려해 연준이 공격적인 긴축에 나설 가능성은 다소 반감됐지만, 기술기업들의 재무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부각된 상황이라는 의미다. 이 연구원은 이어 “단기 급등한 고밸류에이션 기업보다는 소외된 대표 기업이 유리하다”며 “국내 증시에서 현 시점은 반도체, 완성차 기업이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jdh@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