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프랑스의 대표 지성 장 폴 사르트르는 1950년대 말 프랑스령인 알제리의 독립문제로 대척점에 서 있었다. 강경 우파 드골은 천연가스가 무궁무진하고 기름이 나오는 땅 알제리를 포기하기 싫었다. 반면 사르트르는 알제리 독립에 찬성했다.

사르트르는 단순히 독립만 외친 게 아니었다. 더 극렬한 행동에 나섰다. 스스로 알제리 반군을 도울 자금을 모아 반군에 전달했다. 이 자금은 반군이 무기를 구매하는데 쓰일 돈이었으니 프랑스로 보면 엄청난 반역이었다.

당연히 프랑스 내에서 “사르트르를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드골 측근들도 단죄를 요청했다. 여기서 역사에 남은 드골의 명언이 만들어진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프랑스를 관통하는 정신인 ‘톨레랑스(tolerance)’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쉽게 ‘관용’이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에는 ‘인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자기와 다른 신앙이나 사상, 행동방식을 가진 사람을 용인하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톨레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의 혼돈과 갈등을 치유하며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을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 심었다.

새해 들어서 대한민국을 휘감은 갈등구조가 더욱 심화하는 모양새다. 특히 나라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은 아예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서로 죽이겠다고 난리다. 여야간 정쟁은 물론이고 여당 내 당권경쟁마저 진흙탕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정치혐오만 부추기고 있다. ‘제2의 진박 감별사’니 ‘반윤의 우두머리’니 입에 담기 힘든 단어들이 난무한다. 갈수록 더 원색적인 단어찾기 경쟁을 보는 듯하다.

안 그래도 민심은 둘로 쪼개져 있고 경제는 바닥권을 헤매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대 후반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0%대 성장을 예상하는 비관론도 있다. 지금의 이 갈등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글로벌 지식시장에서 잘 나가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인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요소인 노동·자본·기술에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등관리가 경제성장의 숨은 요소라는 얘기다. 실제로 많은 연구보고서들도 갈등을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경제성장의 성과를 볼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우리의 갈등구조는 악화하고 관리능력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있다. 지난 2021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0개국(2016년 기준)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종합해 ‘갈등지수’를 산출한 결과, 한국의 갈등지수는 3위를 기록했다. 멕시코, 이스라엘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2008년에는 4위였는데 더 나빠졌다. 반면 정부의 갈등관리 능력을 나타내는 ‘갈등관리지수’는 꼴찌수준인 27위에 불과하다. 이러니 가뜩이나 좋지 않은 성장세를 갈등이 갉아먹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세상은 단 하나의 가치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해관계도 다 다르다. 여든 야든, 노든 사든 “다 대한민국이야”란 자세로 소통하고 갈등을 줄여가는 게 절실하다. 이것이 우리에게 닥친 저성장시대를 헤쳐 나가는 해법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말로만 성장을 외칠 게 아니라 이런 갈등이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이를 풀어내는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yt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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