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의 경공이 중병에 걸리자 서쪽의 진나라에 고완이라는 명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급히 사람을 보내 불러오게 했다.

이 명의가 도착하기 전에 경공이 꿈 속에서 자기 몸에 든 병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된다. “고완이란 의사가 온다는데 그는 명의야, 그가 오면 우리가 죽을 지도 모르니 어디든 숨어야 해”, “어디에 숨을까. 염통 밑(고:膏), 명치 위(황: 肓)에 숨으면 아무리 명의라도 찾지 못할 터이니 그 곳에 숨자”.

그 후 고완이 도착해 경공을 진맥한 뒤 “병이 이미 고황에 들어 치료할 수가 없다”고 선언했다. 끝내 경공은 회생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춘추좌시전에 나오는 ‘병이 고황에 들었다’, 즉 고칠 수 없는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의 유래다.

새해 들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실생활에서 체감가능한 지방발전 시대를 열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잇따르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신년사를 통해 “지역의 주체인 주민들의 자율과 창의성을 동력 삼아 개발제한구역과 같은 과도한 규제는 풀겠다”고 말했다.

이에 맞춰 국토부는 3일 ‘2023년 업무 계획 보고’에서 지자체의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기존 30만㎡ 이하에서 100만㎡ 이하로 확대하기로 하는 등 그린벨트 해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나 방산·원전 산업 등 전략 사업을 지역에서 추진할 경우 그린벨트 해제 총량에서 제외해 지방의 자율성도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낙후되고 불균형한 지방을 발전시키는 게 시급한 과제라 하더라도 섣불리 그린벨트를 푸는 것은 병을 고친답시고 오히려 ‘고황’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과거 정권에서도 수시로 그린벨트 해제의 유혹에 빠져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다. 2009년 초 이명박 전 대통령 때도 그랬다. 취임 1년째인 2009년 2월 이 대통령은 당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에 비닐하우스만 가득 차 있다”며 이 비닐하우스에 신도시 건설을 지시했다. 이후 3개월 뒤인 5월 국토부는 서울 강남 세곡, 서초 우면, 고양 원흥, 하남 미사 등 4개 지구 805만6,000㎡를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지정했다. 수도권 집값과 전셋값이 들썩이자 ‘공급 확대책’으로 내놓은 해법이었다.

더구나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주변시세의 절반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다는 장점은 무주택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홍보하기에도 좋았다.

세월이 흘러 그 비닐하우스 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집값 안정에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는지 잘 알지 못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자곡동과 우면동 그린벨트 해제가 결정된 2009년 강남구와 서초구 아파트값은 전년 대비 각각 6.15%, 5.65% 올랐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홍보된 보금자리주택에 입주하려는 대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세난도 부추겼다. 2012년 말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2009년 1월 대비 36.87%나 급등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넓은 지역에 비닐하우스들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아파트 숲이 돼 버렸다.

그동안 지자체장들은 정부에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겨 달라고 꾸준히 건의해왔다. 그린벨트 해제 총량도 얼마 남지 않아 대형 개발 사업 추진과 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의 통 큰 결단도 촉구했다. 낙후된 지방경제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다만 지방발전이라는 명분에 밀려 미래세대를 위해 어떻게 든 지켜줘야 할 땅이 계속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공목적이라는 취지로 끊임없이 훼손돼 현재는 최초 도입 때보다 면적이 70%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보전 필요지역은 철저히 관리하겠다지만 과거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개발 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발전하게 돼 있다. 개발 유혹이 심해도 최대한 개발을 늦추는 게 오히려 더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더구나 녹색경제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권 때처럼 이 정부 1년차에 본격화하고 있는 그린벨트 해제정책이 혹시나 임기내 성과를 내고 픈 조급함에 추진되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린벨트는 한번 풀면 되돌릴 수 없어 가장 마지막 정책 수단이 돼야 마땅하다. 자칫 잘못하면 고황에 들게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yt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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