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leader)는 단순히 무리의 맨 위를 차지하는 권력자가 아니다. 그 어원은 ‘여행하다’는 의미의 단어(lead)에서 나왔다.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은 “여행을 할 때는 안내자가 필요한데 그 안내자의 역할이 바로 리더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인지 리더의 어원에는 ‘먼지를 뒤집어쓰는 사람’이란 뜻도 있다. 먼지 자욱한 현실을 직시하며 기꺼이 먼저 먼지를 뒤집어쓰고 미래를 향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리더라는 얘기다. ‘참다’, ‘고통을 받다’, ‘견디다’란 뜻을 가진 독일 고어에서 어원을 찾는 학자도 있다. 어떤 것이든 리더의 역할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명리학의 관점에서 물을 의미하는 계(癸)는 먹거리를 상징하고 묘(卯)는 지혜의 동물인 토끼를 말한다. 특히 올해는 번영을 의미하는 ‘검은 토끼의 해’다. 창의적인 지혜로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 번성하고 영화로울 것이라는 덕담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맞닥뜨린 계묘년 새해의 현실은 우울하다. 경기침체 사이렌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미 수많은 기업에선 감원 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수익이 수조원대에 달하는 은행권마저 인력 줄이기에 한창이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은행들은 이미 희망퇴직 절차를 시작했거나 이 달중 희망퇴직 공고를 내고 수천명의 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다. 일부 은행은 희망퇴직 연령을 40대까지 낮췄다. 수익이 늘어나 지급여력이 있을 때 최대한 몸집을 줄이자는 생각이겠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들로선 퇴직금이 많아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올해는 반도체 등 주력산업이 휘청대면서 1%대 저성장에 어느 때보다 매서운 고용한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런 인력감축은 공공기관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들 기관에도 휘몰아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공공기관 인원을 1만2,000명 줄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올해에만 1만1,081명의 정원을 구조조정한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 인력과 부채가 크게 늘어 방만경영 우려가 커진 데 따른 대책이겠지만 일자리를 잃는 직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앞날이 참담할 수밖에 없다.

회사를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어원은 ‘함께’라는 뜻의 ‘컴(com)’과 라틴어로 ‘빵’이라는 의미의 ‘팬(pan)’을 합성해 만든 말이다. 본래의 뜻은 ‘빵을 함께 먹는다’, 우리 말로 표현하면 ‘식구(食口)’다. 이를 해석하면 company는 같이 빵을 나눠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인 셈이다.

빵이라는 개념을 국가로 확장해도 마찬가지다. 군주나 경(卿)이라고 번역되는 영어 ‘로드(lord)’는 고대 언어 ‘로프-가디언(loaf-guardian·빵을 구해오는 사람)’에서 유래됐다. 로드의 아내는 ‘로프-니더(loaf-kneader·반죽하여 빵을 만드는 사람)’다. 나중에 이는 레이디(lady)의 어원이 된다. 빵을 구해오지 못하는 군주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쫓겨났다. 수많은 혁명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빵이 많고 적음에 따라 많은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다.

다들 불안해하는 계묘년 새해, 이 위기의 시대에 지금 절실한 게 바로 리더의 역할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기업들은 호시절이었고, 은행은 여전히 역대급 호황이다. 그런데도 경영환경이 불확실하다고 단순히 인력부터 손대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은 제대로 된 리더가 아니다. 어떻게든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고 인원감축은 최소화해야 한다. 빵을 구해 나눠야 하는 게 국가나 회사 같은 조직의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보면 인력 구조조정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마땅하다. 

2001년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위크의 ‘세계 최고 경영사상가’ 순위에서 1위에 뽑혔던 데이브 얼리치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위기라도 감원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면서 “그전에 먼저 할 일은 불필요한 업무와 비용을 줄이는 조직재정비와 수익성 높은 사업이나 상품개발에 집중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감원은 떠나는 사람뿐 아니라 남는 사람에게도 큰 고통이어서 회사에 득(得)이 될 지, 실(失)이 될 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감원 없이 위기를 극복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경기침체 위기의 새해를 맞은 이 정부와 기업 리더들이  리더의 본 뜻을 마음에  담아  먼저 먼지를 뒤집어쓰고 고통을 견딘다는 자세를 갖추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yt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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