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인사가 본격 시작됐다. 신한금융지주 조용병 회장이 용퇴하고,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새로운 사령탑에 오르면서 ‘물갈이’ 시즌이 도래한 것이다. 다만 CEO 인사에 ‘관치’가 작용한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 자리에 ‘관료 출신’ 외부 인사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앉게 되면서 관치 입김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다른 금융지주 CEO 인사에서도 관료 출신 인사가 중용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노조는 ‘관치 금융 철폐’, ‘모피아 낙하산 인사 반대’ 입장을 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농협금융 임추위)는 차기 회장 후보자로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만장일치로 추천했다. 이석준 후보자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되며, 임기는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해 향후 2년간 농협금융을 이끌 예정이다.

이 후보자는 예산과 금융 분야를 두루 거친 경제 전문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 후보자는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동아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제26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뒤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기획재정부 제2차관,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캠프에서 활동한 바 있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손병환 농협금융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농협금융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농협중앙회의 의중에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권에서는 농협중앙회가 정권 교체 이후 정부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관료 출신 외부 인사를 낙점했다고 보고 있다.

◇ 우리금융·BNK금융지주 차기 사령탑도 ‘관치’ 그림자

금융권에서는 다른 금융지주 차기 회장 인사에도 농협금융과 같은 사례가 나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앞서 지난 8일 신한금융지주는 3연임이 유력했던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대신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조용병 회장의 후보 자진 사퇴와 진옥동 행장의 후보 선임을 두고 정부와의 교감설 등 각종 추측이 쏟아졌다.

이어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도 관료 출신 외부 인사가 앉을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금융당국으로부터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책임에 대해 ‘문책경고’ 중징계를 받아, 연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여기에 지난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손태승 회장을 겨냥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발언하면서 ‘외압’ 의혹이 일었다.

현재 금융권 안팎에선 손 회장의 후임으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과 전직 관료 출신들이 거론되고 있다. 임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장을, 박근혜 정부 시절엔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여기에 BNK금융지주도 차기 회장직에 관료 출신이 거론되고 있다. BNK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오는 13일 차기 회장 1차 후보군을 확정할 예정이다. 현재 차기 회장 후보군에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등 관료 출신 외부 인사가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책 은행이 아닌 일반 은행에도 관(官) 입김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며 “이 같은 인사는 새로 들어선 정부와 소통을 강화할 수 있어도, 전반적인 금융산업 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금융노조 “낙하산 인사, 금융의 미래 망치는 행위”

이를 두고 금융권 소속 노동조합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오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금융권 모피아 낙하산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현장에는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금융노조 집행부와 금융노조 39개 지부대표자,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도 참석했다.

금융노조는 “윤석열 대통령은 낙하산 인사를 개선하고자 인수위 시절 ▲공무원 중 젊고 유능한 인재 최우선 선발 ▲낙하산 및 청탁 인사 금지 등을 주문했었다”며 “대통령의 철학과 다르게 금융권 낙하산이 연이어 거론된다”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BNK금융지주의 경우 이사회 규정까지 바꿔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 임명을 준비하고 있고 기업은행은 직전 금융감독원장의 행장 임명이 유력하다는 설이 있다. 법에 의한 공정이 아니라 법을 이용한 불공정이다”며 “금융노조는 BNK금융의 기준 변경과 기업은행과 관계된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10만 조합원 단결대오로 낙하산 저지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윤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넘쳐나고 있다. 전문성 결여, 생뚱 맞은 이력, 정치력 고려, 가족 측근 의혹, 대선 보은 인사 등 문제를 지적 받으며 국민의 큰 우려를 사고 있다”며 “함량 미달·낙하산 인사는 임명된 사람만 좋을 뿐, 조직의 미래를 망치는 행위이다”고 지적했다.

son90@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