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라는 단어로 삶을 재단당하는 동물들

곽은영 기자

최근 병아리와 달걀을 ‘폐기’하면서까지 수년간 닭고기 가격과 출하량을 담합한 업체들이 재판에 넘겨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JTBC 등 국내 주요 언론들은 최근 닭고기 업체들 중 일부가 병아리·달걀을 '폐기'하고 가격을 담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업체들은 가격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2005년 1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약 12년간 60차례에 걸쳐 병아리와 달걀을 폐기하는 방식 등으로 생산량과 출하량을 인위적으로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종계 담합을 적발해 제재한 것을 시작으로 삼계·육계·토종닭에 대한 제조·판매 기업과 협회간 담합을 지속적으로 적발, 제재해왔다. 

닭이나 병아리뿐만이 아니다. 오리 신선육 제조·판매 업체들도 오리 가격과 생산량을 담합한 정황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공정위는 지난 2012년 4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총 17차례에 걸쳐 오리 신선육 가격과 생산량을 담합한 9개 제조·판매업자와 한국오리협회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소식들을 종합해 보면 시중에 유통되는 닭고기류와 오리 신선육이 모두 담합 대상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치킨값은 최근 외식 품목 중에서도 가장 높은 가격 상승률을 보여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39개 외식 품목 가격 상승률을 지난해 말과 비교해 보면, 치킨이 6.6%로 가장 많이 올랐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리기 위해서 업체들은 부모닭인 종계는 물론, 병아리와 종란을 ‘폐기’하거나 감축하는 행위를 통해 생산량 조절해왔다. 멀쩡한 닭을 죽여서 가격을 올려 받아왔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잠시 폐기라는 말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폐기의 사전적 뜻은 ‘못 쓰게 된 것을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을 닭이나 돼지 등 인류가 가축으로 분류한 동물들에게 자주 사용해 왔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 사례가 발생하면 출하한 닭과 닭고기를 ‘폐기’ 조치하고 농장 기준 반경 내에 있는 닭들이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 ‘폐기’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걸린 돼지나 우려되는 지역의 돼지들도 지체없이 살처분 ‘폐기’된다. 시장 가격을 올려받기 위해서도 닭과 오리를 ‘폐기‘한다. 

그동안 수많은 동물들이 폐기라는 단어로 삶을 간단하게 재단당했다. 병아리와 닭은 사실상 ‘폐기’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임에도 하나의 소유물로서 폐기될 수 있는 대상으로 다뤄져 왔다. 

이러한 관점과 인식은 공장식 축산업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국내 95% 이상의 농장동물들이 농장이 아닌, 공장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매년 약 12억 마리의 농장동물들이 식용으로 희생되고 있다. 

공장식 축산과 감금틀 사육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동물들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감금돼 신체훼손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돼 살아간다. 

국내 양계장에서 알을 낳는 암탉들은 A4용지 1장보다도 작은 철장 케이지에 갇혀 날개 한번 펴보지 못한채 살아간다. 닭은 생명체가 아닌 알낳는 기계이자 상품으로만 취급된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공장식 축산은 동물학대 공장이라고도 불린다. 

밀집사육이 안고 있는 문제는 윤리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과 환경적 측면도 크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축사의 비위생적인 환경은 동물들의 면역력과 건강을 해치고 이는 AI, 구제역, 살충제 계란,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가축전염병을 확산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무엇보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은 전세계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탄소 양보다 많다. 기후위기 대응 방법 중 하나로 채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되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공장식 축산이 이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더 싸게, 더 많은 고기를 먹으려는 사람의 욕심이 있다. 닭을 폐기한다는 말이 서슴지 않고 사용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연 생명을 이렇게 착취해도 되는 것인지, 닭을 폐기한다는 말이 주는 무게감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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