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식재료 리필 상점 ‘보틀앤스쿱’
비건 식료품 개별포장 아닌 벌크로 소분해서 판매
제로웨이스트 식료품점에서 배운 무포장 환경생활
용기 챙겨가 필요한 만큼 구매...포장재 및 음식물 쓰레기 저감

‘보틀앤스쿱’은 식재료 리필 상점이다. 유통업계에서 해결해야 할 큰 과제 중 하나인 ‘포장재’ 없는 장보기가 가능한 곳이다. (곽은영 기자, 2022.6.1)/그린포스트코리아
‘보틀앤스쿱’은 식재료 리필 상점이다. 유통업계에서 해결해야 할 큰 과제 중 하나인 ‘포장재’ 없는 장보기가 가능한 곳이다. (곽은영 기자, 2022.6.1)/그린포스트코리아

올해 1월 식품을 리필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그로서리숍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보틀앤스쿱’이라는 식재료 리필 상점으로 유통업계에서 해결해야 할 큰 과제 중 하나인 ‘포장재’ 없는 장보기가 가능한 곳이었다. 지난 1일 이대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보틀앤스쿱에 다녀왔다. 유통 시스템이 달라지면 무포장 환경생활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하고 있는 보틀앤스쿱은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 일요일엔 오후 3시에서 7시까지 운영하고 매주 월요일이 정기휴무일이다. 지하철 역으로 따지면 이대역에서 가깝다. 식료품뿐만 아니라 샴푸바, 설거지바, 천연수세미 등 제로웨이스트 생활용품도 구비하고 있다. 

◇ 비건 식료품 개별포장 아닌 벌크로 소분해서 판매

국내에 제로웨이스트 상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상점에서 주로 판매하고 있는 건 비누, 칫솔, 고체치약, 행주, 수세미 등 위생용품과 생활용품이다. 기성제품 대비 쓰레기가 덜 나오는 제품들이지만 구매 빈도를 따지면 자주 사는 것들은 아니다. 매일 먹는 식품과 관련해서는 차나 향신료 정도만 간단하게 구비돼 있는 정도다. 

그런 면에서 올해 초 문을 연 보틀앤스쿱은 단번에 제로웨이스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식료품 중심으로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식품점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가 본 보틀앤스쿱에 없는 것은 두 가지였다. 포장재와 동물성 식재료다. 무엇을 사든 성분 걱정이 없도록 비건 식재료만 선별해서 판매하는 데다 냉장·냉동 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제품을 개별 포장이 벌크로 소분 형태로 판매하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보틀앤스쿱은 문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지구환경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과 제로웨이스트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환영을 받고 있다. 알맹상점을 운영하는 고금숙 공동대표는 올해 초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플렉스를 즐기는 장소로 보틀앤스쿱을 언급하며 “쇼핑할 맛이 나는 곳”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상점에 머물다 보니 그가 말한 쇼핑할 맛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무엇을 어디에 얼마 만큼 담아갈 지 규모있는 생각과 소비가 가능했다는 점이 좋았다. 봉지째 장바구니에 넣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식품을 어디에 담아갈지 챙겨 온 포장재를 떠올리고, 얼마만큼 사 갈지 선택하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공산품으로 나오는 제품은 수동적으로 봉지 개념으로 사오기 때문에 양이 남아서 버린 적도 여러 번 된다. 포장재 문제 역시 시스템상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왔다. 이런 면에 비춰봤을 때 포장재를 챙겨가는 것은 다소 번거롭긴 했지만 집에 돌아와 발생하는 쓰레기가 전혀 없다는 면에서 만족도가 상당히 컸다. 

보틀앤스쿱 내부 전경. (곽은영 기자, 2022.6.1)/그린포스트코리아
보틀앤스쿱 내부 전경. (곽은영 기자, 2022.6.1)/그린포스트코리아

◇ 제로웨이스트 식료품점에서 배운 무포장 환경생활

기자는 상점에 가기 전 집에서 미리 장바구니와 다양한 용기류를 챙겼다. 세척 후 열탕 소독을 해둔 유리병과 밀폐용기, 재사용을 위해 모아뒀던 지퍼백과 일회용 배달용기로 사용됐던 플라스틱 용기 등을 에코백에 챙겼다. 사용 후 비어 있던 향신료 통도 몇 개 챙겼다. 기존 방문객들의 후기를 찾아 보니 선물세트 등에 들어있는 과일망 등을 따로 모아뒀다 유리병을 감싸는 데 이용할 수도 있었다. 

매장에 직접 가 보니 미처 용기류를 챙겨오지 못한 손님을 위해서 소독이 완료된 유리용기와 식품을 담을 수 있는 재생종이 등이 마련돼 있었다. 제로웨이스트 그로서리숍이라는 걸 모르고 지나가다 들른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입구를 지나자 양쪽 벽면으로 다양한 식품군이 담긴 리필 통들이 나열돼 있었다. 한 쪽 벽면에는 유기농 쌀과 현미, 기장, 퀴노아 등 곡식류와 파스타 및 국수류가, 다른 벽면에는 비건 초콜릿과 달고나 과자, 크래커, 두부과자 등 주전부리가 다양하게 담겨 있었다. 상자 위에는 식품을 덜어갈 수 있도록 집게 등이 마련돼 있었다. 

쓰레기 없이 식품을 소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저울을 이용해 챙겨간 용기 무게를 재고, 용기에 원하는 식품을 원하는 만큼 담아 내용물의 무게를 잰 후, 용기 무게는 빼서 가격표를 붙여 계산대로 가져가면 된다.

기자는 주전부리 몇 가지를 챙겨간 재사용 지퍼백에 담았다. 기존에 병아리콩과 다른 초코과자를 포장했던 포장재들이다. 튼튼한 지퍼백은 씻어서 얼마든지 재사용할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이후로 지퍼백을 버리지 않고 세척 후 말려서 모아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식품을 담는 용도로 재사용하니 뿌듯했다.

이밖에 작은 밀폐 용기에 허브를 담고 유리병에 밀크티 원액을 담았다. 비건 상품도 구매했다. 상점 한가운데 위치한 냉장 코너 속에는 견과류들과 비건 브랜드에서 출시한 비건치즈와 마요네즈 등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치즈와 마요네즈를 장바구니에 담고, 매장 안쪽에 있는 냉장고와 냉동고에서도 몇 가지 비건 제품과 대체육 제품을 담았다. 

보틀앤스쿱 측 설명에 따르면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건강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오는 만큼 어떤 사람은 “이래야 한다, 이게 맞다”고 반응하고 또 어떤 사람은 “솔직하게 콘셉트가 어렵고 불편하다. 빨리 담아서 판매해야 하는 거 아니냐. 솔직히 이렇게 해서 장사가 될 지 걱정도 된다”는 반응도 돌아온다. 

그러나 가정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가 식품 포장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포장재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의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알맹이만 쏙 빼고 거의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 등은 바로 그 편리함 때문에 지구환경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린피스는 2019년 ‘플라스틱 대한민국 일회용의 유혹’ 보고서를 통해 오늘날 플라스틱 소비량이 가장 많은 분야는 포장재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분야별 플라스틱 생산량 가운데 포장재 및 용기가 36%로 가장 많았다. 수요가 높은 플라스틱 포장재의 수명은 평균 6개월 이하다. 가장 많이 이용되지만 가장 빨리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보틀앤스쿱에서 직접 구매한 제품들. 주전부리 몇 가지를 챙겨간 재사용 지퍼백에 담고 허브를 작은 밀폐 용기에 담았다. 유리병에는 밀크티 원액을 담고 몇 가지 비건 상품도 구매했다. (곽은영 기자, 2022.6.1)/그린포스트코리아
보틀앤스쿱에서 직접 구매한 제품들. 주전부리 몇 가지를 챙겨간 재사용 지퍼백에 담고 허브를 작은 밀폐 용기에 담았다. 유리병에는 밀크티 원액을 담고 몇 가지 비건 상품도 구매했다. (곽은영 기자, 2022.6.1)/그린포스트코리아

◇ 용기 챙겨가 필요한 만큼 구매...포장재 및 음식물 쓰레기 저감

제로웨이스트 식품점 보틀앤스쿱 역시 이러한 문제에 주목해서 탄생했다. 정지혜 보틀앤스쿱 대표는 매장을 낸 이유에 대해서 “개인의 실천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유통의 한계를 뛰어넘고 인프라를 바꿔보고 싶었다”며 “유통업자로서 기존 유통업자에게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일반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편의점에서는 안전성과 유통상의 편의성 때문에 포장재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유통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생산자와 협조만 제대로 이뤄지면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시도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려웠던 것은 역시 생산자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정 대표는 “생산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라면서도 “그래도 그 중에는 환경문제에 공감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서 연구하는 분들이 있다”며 매장 내에 있는 밀크티 벌크 제품을 예로 들었다. 

보틀앤스쿱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리필형 밀크티 원액 벌크 제품은 5kg 제품이다. 정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밀크티 원액의 경우 벌크로는 처음 만든 것이다. 위생을 위한 연구와 시도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환경을 생각하는 생산업체와 유통업체의 마음이 일치하면서 친환경 소비자를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었다. 

사실 환경문제의 핵심에 있는 쓰레기 배출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먹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식(食)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이다. 하루를 잘 살아내고 생활 전반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만 하고 이 먹는다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쓰레기 배출과 연결된다. 

그런 면에서 용기를 가져가 필요한 만큼만 식재료를 구매하는 식재로 리필 상점에서의 경험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포장재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의 문제가 크다고 말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매일 필요한 식료품을 포장 없이 소분해서 살 수 있는 플랫폼을 더욱 확대할 필요성을 느꼈다. 

key@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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