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붙인 부끄러운 이름 ‘못난이 농산물’
잘못 알고 있던 상식을 깨는 농산물들의 사연
‘못생겼다’는 고정관념으로 발생하는 환경오염

정기구독을 통해서 시장에서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부르는 제품을 직접 받아보고 든 첫 번째 생각은 전혀 못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기가 크거나 작다고 느껴지는 것은 있었지만 그것이 못생겼다는 말과 치환될 정도는 아니었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정기구독을 통해서 시장에서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부르는 제품을 직접 받아보고 든 첫 번째 생각은 전혀 못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기가 크거나 작다고 느껴지는 것은 있었지만 그것이 못생겼다는 말과 치환될 정도는 아니었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기자는 지난해 8월 ‘못난이 농산물’과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상품화 규격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채소와 과일을 모아 온라인으로 정기배송하는 채널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11월부터 그 중 한 곳에서 정기구독을 시작해 3개월째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받아보고 있다. 

정기구독을 통해서 시장에서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부르는 제품을 직접 받아보고 든 첫 번째 생각은 전혀 못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기가 크거나 작다고 느껴지는 것은 있었지만 그것이 못생겼다는 말과 치환될 정도는 아니었다. 

두 번째는 기대했던 것보다 맛과 풍미가 더 좋다는 것이다. 맛 좋은 무농약 제품을 시장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서 못생겼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자연의 기준에 따라서 키워지는 것이 마땅한 농산물에 왜 ‘못났다’는 말이 붙게 된 것일까. 

◇ 사람이 붙인 부끄러운 이름 ‘못난이 농산물’

먼저 못난이 농산물이라는 용어부터 짚어보자. 못난이 농산물은 흠집이 있거나 크기가 너무 크거나 작거나 모양이 뒤틀린 채소나 과일 등에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시장에서도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는 이름이다. 인간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투영된 ‘못난이 농산물’이란 말을 곱씹다 보면 괜히 씁쓸한 맛이 감도는 듯하다. 그린포스트 편집국 내에서도 못난이 농산물이란 말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없을까라는 논의가 나왔을 정도다. 

소비자들도 그 명칭에 불편함을 느끼는지 기자가 이용하고 있는 사이트의 상품후기를 읽어보면 “못생긴 채소가 아니고 작아서 귀엽다”, “못생긴 건 잘 모르겠고 신선하다”, “내 눈엔 모두 사랑스럽고 예쁘다” 등 이름과 관련한 반문이 자주 눈에 띈다. SNS에서도 “뭐가 못났다는 건가”, “주도적이고 멋있게 생겼다”는 등 못생겼다는 말 대신 ‘귀엽다’, ‘주도적이다’, ‘멋있다’고 해당 농산물을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자는 ‘주도적인 농산물’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햇빛을 받고 차가운 비를 맞으며 자연이 정한 기준에 따라서 크는 농산물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정해진 규격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가지가 모양이 조금 뒤틀렸다고 해서 가지의 특성을 잃는 것도 아니고, 키위가 조금 작게 자랐다고 해서 새콤달콤한 맛을 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런 모양새가 환영받지 못한다. 유통업체에서 정한 납품 및 검품 기준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정성껏 재배된 채소와 과일이 판매 기회도 얻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지거나 헐값에 처분되고 있는 건 대형 유통업체에서 정해놓은 규격화 때문이다. 기업들은 정상의 기준을 정해놓고 모양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이유에 대해서 ‘소비자가 원해서’, ‘그래야 팔리니까’,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관리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등의 대답을 내놓곤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많은 소비자가 이러한 농산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고 온·오프라인에서 새로운 판매로를 만들어주는 업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 기준에서는 판매되지 못하는 규격이지만 사실 맛과 풍미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농산물이 그냥 버려지는 현실을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는 곳도 있다. 

◇ 잘못 알고 있던 상식을 깨는 농산물들의 사연

각각의 채소들마다 가진 사연이 다양하다. 사진 속 양파와 감자는 크기가 작다는 특징이 있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각각의 채소들마다 가진 사연이 다양하다. 사진 속 양파와 감자는 크기가 작다는 특징이 있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현재 기자가 이용하고 있는 농산물 사이트에서는 시중 친환경 농산물을 최대 30%까지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출고 2~3일 전에 수확한 채소와 함께 추천 레시피와 채소의 사연을 담은 레시피 페이퍼를 함께 배송한다. 덕분에 농산물, 생산지, 무농약 인증, 사연, 보관방법 및 기간 등 채소에 대한 정보와 함께 해당 채소로 만들 수 있는 요리 레시피를 읽는 재미가 꽤 크다.  

정기구독 신청과정은 간단했다. 가구 형태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채소박스 크기와 배송주기를 선택하면 조건에 맞게 집 앞으로 농산물이 배송된다. 기자의 경우 1~2인 가구 박스에 배송주기는 2주에 1회를 선택했다. 집에 먹을 거리가 많거나 집을 한동안 비울 때는 2주나 4주간 배송일정을 미루기도 한다. 원할 때 구독을 중단할 수 있고 채질이나 선호도에 따라서 채소를 빼거나 더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렇게 배송된 농산물 박스를 열면 제품 대부분이 신문지나 생분해 비닐에 포장돼 있다. 가지나 주키니호박, 팽이버섯 등 일부 채소는 비닐로 포장돼 있을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신문지나 종이 포장재 이용률이 높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주기적으로 다양한 채소를 접할 수 있고 정확한 보관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나 마트에서는 항상 먹던 것만 사왔는데 계절과 상황에 따라서 농산물이 바뀌니 레시피를 새롭게 짜서 먹는 즐거움 컸다.

또 좋았던 점은 농산물 각자의 사연에 귀 기울임으로써 잘못 알고 있던 상식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과 표면의 하얀 흔적은 병충해 방지와 양분 공급을 위해 사용하는 탄산칼슘의 흔적으로 식용 칼슘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 감귤의 검은 딱지나 점은 장마철이나 꽃이 피는 시기에 유행하는 병해를 견뎌낸 흔적이라는 것이다. 

배송되는 채소들마다 가진 사연이 다양했다. 그린키위는 크기가 아담해서, 케일은 잎이 작거나 넑게 자라서, 당근은 모양이 개성있고 크기가 크거나 작아서, 가지는 모양이 휘어서라는 사연을 안고 있었다. 모두가 시장표준에 못 미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판로가 부족해서 버려질 위기에 처한 채소들도 많았다. 모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주도적인 채소들과 만난 이후로 기자의 식탁은 한층 더 풍요롭고 다채로워졌다. 

◇ 못 생겼다는 고정관념으로 발생하는 환경오염

시장에서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부르는 농산물과 가깝게 지내면서 느끼는 장점은 많았다. 특히 환경적인 장점을 빼놓을 수 없다. 

채소와 과일이 못난이 취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느는 것은 음식물쓰레기다. 전세계 농산물의 20~25%가량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폐기되고 있다. 어글리어스의 자료에 따르면 농가에서 수확되는 농산물의 3분의 1이 못난이 농산물로 분류되고 판로가 없어서 헐값에 처분되거나 폐기된다. 이러한 농산물 폐기가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농산물 재배에 들어간 물, 비료, 노동에너지의 낭비, 또 하나는 지구가열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입품이 아닌 국내 농산물을 소비하면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까지 따라온다. 유통거리가 길지 않아 생기는 환경적인 이익이 크다는 얘기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양으로 억울하게 남겨진 농산물을 구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한 생산방식을 고수하는 농법을 지지하는 ‘어글리어스’, ‘파머스페이스’가 운영하는 전용 도매관 ‘어떤못난이’, 농민에겐 제 값을 쳐주고 소비자에겐 가성비 있는 농산물을 소개하는 ‘프레시어글리’, 11번가가 런칭한 ‘어글리러블리’ 등 다양하다.

이들은 농산물의 겉모양이 아닌 신선함과 영양가, 맛과 향 등 각각의 품질을 기준으로 농산물을 재평가한다. 외관상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이 맛이나 당도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글리어스 관계자는 “채소는 자연에서 알맞게 자란 것이 가장 맛있다”고 전제하며 “시장규격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크기를 키우기도 하는데 이러면 오히려 당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하며 크기나 모양만으로 맛을 판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얼마나 알맞게 자랐을 때 수확을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채소를 크기로 판별하지 않고 적정시기에 수확됐는지, 적정한 방법으로 재배됐는지, 유통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ey@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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