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 미국 식재료가 한 곳에 모였다
24시간 돌아가는 냉장고의 전기와 탄소
무엇이 담겼고 얼마나 보관됐는지가 중요한 문제
냉장고의 장점을 충분히 또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냉장고를 줄이자는 권고는 '사이즈'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취향과 상황이 다른데 무조건 작은 제품을 사라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냉장고 속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버려지는 음식을 줄여야 한다. 그 지점에서 냉장고가 감당해야 할 환경적인 역할이 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냉장고를 줄이자는 권고는 '사이즈'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취향과 상황이 다른데 무조건 작은 제품을 사라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냉장고 속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버려지는 음식을 줄여야 한다. 그 지점에서 냉장고가 감당해야 할 환경적인 역할이 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냉장고는 인류의 식탁과 건강을 책임진다. 식재료를 신선하게 또 오래 보관할 수 있어서다. 한편에서는 냉장고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있다. 물론 냉장고 자체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먹거리의 대량생산과 유통시스템이 인류를 풍요롭게 해주었지만 그 이면에 숨은 환경 영향도 있다는 뜻이다. 냉장고 속에 담긴 식재료와 지구 환경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 아시아와 유럽, 미국 식재료가 한 곳에 모였다

환경적인 먹거리를 얘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로컬푸드’다. 제품의 운송 등에 소요되는 탄소배출 등을 고려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자는 취지다.

최근 기자는 ‘우리밀’로 만들었다는 먹거리 제품을 하나 샀다. 국내산 밀가루를 사용했다는 제품이다. 이 제품은 국산 정제소금과 동결건조된 국내산 파도 사용했다. 그러면 이건 ‘로컬푸드’일까? 그렇게 이해하기 쉽지만 까다롭게 따지고 들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제품에는 러시아와 헝가리, 세르비아 등에서 들여온 옥수수가 사용됐다. 필리핀산 가다랑어포, 인도산 탈지대두, 인도네시아산 가쓰오부시 후레이크와 중국산 가쓰오부시다시 추출물이 사용됐다. 말레이시아산 팜유도 사용했고, 제품 속 건조맛살 어묵은 미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산 재료가 사용됐다. 감자전분은 독일산이다. 기자의 냉장고 속에 전 세계 식재료가 함께 들어있는 셈이다.

외국재료를 사용한 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저 재료를 모두 국내에서 구하려면 가격과 효율성 문제도 있고 심지어 구하기 어려운 재료도 생긴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식재료를 손쉽게 구매해 보관할 수 있는 세상이다. 냉장 또는 냉동 유통체계와 가정마다 보급된 냉장고 덕분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의 환경 영향도 한번 짚어보자는 얘기다. 냉장고 또는 냉장·냉동 유통시스템과 환경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심효윤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기획팀장은 자신의 저서 <냉장고 인류>(글항아리)를 통해 “전 지구를 무대로 대량생산하고 효율적으로 가공하고 빠르게 유통시키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하는 세계 식량 체계가 갖춰졌지만, 음식이 상품화되면서 역효과도 발생했다”라고 주장했다.

심효윤 팀장은 저서를 통해 “공장식 축사의 대량 분뇨와 함께 암모니아가 배출되어 미세먼지를 유발하는데 한편에서는 미세먼지에 좋다며 삼겹살을 찾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지적하면서 복잡한 생산 구조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와 식품안전사고, 식품 생산자로부터 단절된 정보 등에 관한 문제 등을 지적했다.

◇ 24시간 돌아가는 냉장고의 전기와 탄소

냉장고는 고마운 제품이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인류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고 삶의 질도 높아졌다. 식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하면서 채소와 과일, 그리고 고기를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됐고 영양섭취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건강도 개선됐다. 인류가 괴혈병 등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이유가 냉장고의 영향이라는 시선도 있다.

먹거리와 밀접한 연관 때문일까. 한편에서는 냉장고를 둘러싼 환경 이슈도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24시간 작동하면서 사용하는 전력과 그에 따른 탄소배출량 문제가 있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은 대개 불이나 열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데 쓴다. 이 제품들은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한다. 반면 냉장고는 지속적인 전력 공급을 통해 음식이나 식재료를 차가운 상태로 ‘유지’한다. 낮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

신선하게 유지하려면 아주 많은 전기가 필요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냉장고는 에어컨 등과 달리 방 전체가 아니라 제품 속 공간만 냉각하므로 전기소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다만 하루 종일 가동해야 하므로 일반 가정에서 내는 전기세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24시간 내내 전기를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도 배출한다.

기자가 사용하는 냉장고를 예로 들어보자. 2018년 4월 기준 1등급을 받은 국내 한 가전사의 320L 냉장고다. 월간소비전력량은 (제조사 소개 기준) 16.1kWh다. 전기세가 연간 3만 1,000원 정도 들고 이산화탄소는 시간당 9그램 배출한다는 게 제조사 설명이다.

냉장고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4시간 내내 사용하는 전기 등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그 안에 보관된 식재료의 순환구조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 문제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냉장고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4시간 내내 사용하는 전기 등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그 안에 보관된 식재료의 순환구조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 문제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무엇이 담겼고 얼마나 보관됐는지도 중요한 환경 문제

냉장고에 뭐가 들었고, 얼마나 거기 있었는지도 환경과 중요한 문제다. 우선 한 가지 따져보자. 냉장고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한다. 그러면 냉장고가 인류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였을까?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요즘 인류는 오히려 과거의 인류보다 음식을 더 많이 남기기 때문이다. 물론 냉장고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냉장고에 보관되던 음식이나 식재료가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통계 먼저 보자.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보건진흥원이 지난 2020년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매뉴얼 ‘환경 그린라이트’를 발간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하루 1만 3,465톤이다. 국민 1인당 음식물 쓰레기를 280그램 배출한다는 의미다. 280그램은 고기 1인분을 훌쩍 넘는 무게다.

음식물 쓰레기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밥을 남기지 마라’는 조언을 떠올린다. 하지만 밥그릇을 모두 비우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음식물 쓰레기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서다. 전체 음식물 쓰레기 중에서 먹고 남은 음식물은 30% 내외다. 그보다 더 많은 음식이나 식재료가 유통·조리과정(57%)에서 버려진다. 보관만 하다가 결국 폐기되거나(9%), 하나도 먹지 않은 상태(4%)로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

유통과 조리과정에서 버려지는 식재료를 모두 없애고 만들어 놓고 안 먹는 음식이나 쓰지 않는 식재료를 차단하면 음식물쓰레기의 약 70%가 줄어든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상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먹고 남은 음식보다 다른 과정에서 버려지는 음식 또는 식재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어느 과정에서 뭘 줄여야 할까. 필요한 만큼만 사고 효율적으로 사용해 남김없이 먹는 게 좋다.

◇ 냉장고의 장점을 충분히 또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앞서 언급한 <냉장고 인류>저자 심효윤 팀장은 과거 중앙일보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냉장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우리는 식품을 ‘구매’하는 간단한 행위로 문제가 해결되는 편리성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서 문제란 좁게 말하면 당장 오늘의 반찬거리를 고민하는 일부터 크게는 동물복지와 관련하는 생명윤리, 환경과 오염까지 확대될 수 있다”

철학자 강신주는 2013년 경향신문 칼럼에서 “자본주의적 삶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냉장고를 없애라”고 조언하면서 “한 번에 없앨 자신이 없다면, 냉장고의 용량이라도 줄여라. 가족 건강 문제, 생태 문제, 이웃 공동체 문제, 재래시장 문제가 그만큼 해결될 테니까 말이다.”라고 썼다.

강신주는 해당 칼럼을 통해 음식을 필요한 만큼만 조리하고 남으면 곧바로 이웃과 나누던 과거의 삶을 지금과 비교했다. 그러면서 오래 먹으려고 식재료를 온갖 플라스틱 통에 담아 보관한 냉장고의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과거 기자와 만났던 환경업계 한 관계자도 기자와 냉장고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관계자는 “필요한 만큼의 먹거리를 그날그날 얻던 아메리컨 인디언보다 대용량 냉장고를 사용하는 요즘 인류가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냉장고를 쓰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다. 냉장고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고 한편으로는 그 장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버려지는 음식도 줄이는 것이 2022년의 새로운 숙제라는 얘기다. 

환경의 사전적(표준국어대사전) 의미는 ‘생물에게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또는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로 나의 환경이라는 의미겠지요.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는 자신의 저서 <면역에 관하여>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의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꼭 그 구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등에서 출간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 도서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의 환경인가요?

주변의 모든 것과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환경이라면, 인류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 역시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24시간 우리 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며 환경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생활 속 제품들을 소개합니다.

33번째는 기자의 냉장고 속에 담겼던 우리밀 제품입니다. 식재료를 오랫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주는 냉장고의 환경 영향에 대한 얘기입니다. [편집자 주]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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