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실에서 총기를 절취하고 병기고에서 실탄과 수류탄을 들고 나오는 사이 김모 상병(19)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해군 조사본부는 5일 해병대 총기사건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서 "김 상병이 오전 10시와 10시20분 사이 상황실 총기보관함에서 K-2소총을 절취한 뒤 상황부사관과 상황병이 자리를 비운 사이 상황실의 간이 탄약고에서 실탄 75발과 공포탄 2발, 수류탄 1발 등을 절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해군조사본부 중앙수사대장 권영재 대령이 5일 오전 국방부에서 해병대 총기사건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총기와 실탄관리가 매우 허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총기보관함의 열쇠는 두 명이 상하 자물쇠 열쇠를 분리해서 보관했어야 하는데 한 명이 관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총기와 실탄이 있는 상황실을 비워둔 것도 모자라 그 사이 상황부사관은 실탄과 수류탄을 보관하던 병기고를 열어둔 상태라고 진술했다.

이처럼 허술한 관리에 대해 해군 수사대장 권영재 대령은 "원칙상 불가하다"며 "김 상병에 대한 조사 등 전반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정확한 사건 경위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단의 중간 조사결과에 따르면 상황실에서 총기를 가지고 나온 김 상병은 생활관으로 향하다 10시30분쯤 잠에서 깬 정 모 이병과 마주쳤다. 김 상병은 "권승혁 일병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정 이병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김 상병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났으며 몸을 비틀거렸고 상기된 얼굴이었다고 한다.

11시40분쯤 김 상병은 공중전화 부스 옆에서 상황병 이승렬 상병에게 2발의 총격을 가했다. 총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상황부사관 모 하사는 쓰러져 있는 이 상병을 발견하고 11시42분쯤 119에 신고했다.

김 상병은 이어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부소초장 이승훈 하사(25)를 총격한 뒤 2생활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김 상병은 자고 있던 권승혁 일병(20)과 박치현 상병(21)에게 각각 3발과 1발을 쐈다. 이 과정에서 권혁 이병(19)이 김 상병을 생활관 밖으로 밀어내고 총기를 움켜쥐었고 몸을 던진 내무반 막내의 용기가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 내무반에는 6명이 있었다.


▶ 국방부 브리핑에서 공개된 총기사고 현장

김 상병은 곧이어 창고로 가 수류탄을 터트렸다.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보인다. 폭발 소리를 들은 소초장은 사고 현장을 확인하던 중 창고로 달려가 김 상병을 검거하며 악몽같았던 상황이 마무리됐다.

시간은 11시56분쯤, 한 시간도 안되는 사이 네 명의 꽃다운 젊은 목숨이 쓰러졌다.


▶ 국방부 브리핑에서 공개된 총기사고 현장과 상황도

김모 상병은 소총을 단발로 조정해 조준 발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군 수사대장 권영재 대령은 "현장에 있던 총기는 단발로 조정되어 있었다"며 "사망자의 신체 부위를 검시한 결과 난사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 "현재까지 사고 원인은 사고자의 개인ㆍ심리적 문제에 비중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부대와 관계된 부분도 있는지 함께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 상병은 평소 행동에 문제점이 발견돼 내부적으로 관심사병으로 분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사건 당일 소초장과의 면담을 없었으며 2주 이상 전에 면담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일반 관심사병은 입대 전 인성검사에서 위험도가 높게 나오거나 부대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병사들이다. 김 상병은 입대전 정신과 진료나 정신병력은 없었으며 인성검사 테스트에서 관심소견이 식별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직전 김 상병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고 몸을 비틀거리며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는 부대원의 진술에 대해 "부대 내에서 술병을 발견했지만 그것이 김 상병이 마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문을 채취해 감식을 의뢰했다"고 전했다.

해병 수사반은 김 상병의 사물함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3페이지 분량의 메모와 유서 형식의 메모지를 각각 발견했다.

권대령은 "메모에는 자신을 비관한 표현이 있었으며, 유서 형식의 메모지는 사고자의 것인지, 그 내용이 진실인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메모장에는 '내가 싫다. 문제아다. 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사회성격이 군대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 같다. 선임들이 말하면 나쁜 표정 짓고 욕하는 내가 싫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군 당국의 중간 조사 결과발표에 대해 유가족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숨진 해병대원 유가족들은 이날 오전 시신이 안치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으로 기자들을 불러 "숨진 해병대원들을 명예롭게 해줘야 하는데, 군 당국이 최종 확인되지 않은 조사결과를 언론에 먼저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 군당국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유가족들은 격렬히 항의했다.

숨진 이승렬 상병의 아버지는 해병대 수사과장 이승재 중령의 중간 조사결과 설명을 듣던 중 "승렬이가 근무태만한 것처럼 돼 있다"고 항의하며 "김 상병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했다는데 승렬이를 가장 먼저 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유족들은 "가족들을 위한 내부 브리핑 자료라고 해놓고 아직 제대로 안 된 내용을 언론에 내보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의 반발에 따라 숨진 해병대원들에 대한 조문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장례절차 논의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재룡 기자 mindyou@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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