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 판매가 핵심인데…정부 vs. 업계 힘겨루기

 

 

[편집자주]휘발유값이 리터 당 2000원 대에서 내려올 조짐이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최근 EU의 이란 제재안 결의로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이 가시화되자 유가는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가 알뜰주유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안정화 정책을 내놨지만 역부족으로 비치는 이유다. 이에 본지는 세 편의 기획 기사를 통해 현 상황의 원인을 점검하고 대안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 한다.

①알뜰주유소, 체감 효과 약한 이유는
②정유4사 과점 깨면 기름값 내리나
③삼성토탈은 특혜 지적을 넘어설 수 있나
④대체연료 시장, 멀고 먼 활성화의 길

정부가 고착화 된 석유거래 관행이 휘발유·경유 등의 가격 경쟁을 저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 제5정유사로 삼성토탈을 시장에 진입시키고 혼합판매, 석유거래소 등을 통한 유통경쟁 활성화 방안을 내 놓은 지도 한 달이 지났다.

5월부터는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이 개정되면서 과점의 핵심인 정유4사의 '전량 구매계약' 관행도 불법이 됐다.

하지만 아직까진 경쟁 활성화를 통한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 기름값은 여전히 2000원 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업계는 이미 경쟁이 치열한 시장인데 더 이상의 경쟁 도입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지난 11일 예울마루 개관식에서 "독과점은 시장진입이 막혀 있을 때나 옳은 얘기"라며 "국내 정유시장은 과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 발언도 맥락은 여기에 있다.

정부의 입장은 틀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9년 자료부터 정유4사가 시장을 지배하는 현 상황을 과점 상황으로 못박고 있다.

◇정유사 폴 과점을 깨야 가격 인하가 시작된다
23일 전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3월 기준 전국 주유소 수는 1만2912개다. 이 중 80% 가량인 1만321개가 SK, GS,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브랜드를 표방한 소위 '메이저 4사 폴사인'을 형성하고 있다.

지경부 자료에 따르면 경질유(휘발유·경유) 기준 정유4사의 2011년도 시장지배력은 97.8%에 달한다. 말 그대로 과점 상황이다.

허동수 회장의 말처럼 석유및석유대체연료사업법(이하 석대법)에는 타 업체의 시장 진입이 전면 개방돼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자연적 과점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석대법 상에 규정된 석유 수출입업체들의 진입로가 다른 각도에서 사실상 막혀 있기 때문이다.

휘발유·경유 등 완제품을 수입해 들어와 국내 주유소에 공급하는 수출입업체들은 10년 전만해도 80개에 달했다. 타이거오일을 필두로 동특, 리드코프, 이지석유, 페트로코리아, 바울석유, 휴론, 오일코리아, 코엔펙, 삼연에너지 등 수출입업체들의 당시 국내 시장 점유율만도 10%에 육박했다.

그러나 이 중 지금 남아있는 업체는 이지석유, 페트로코리아 등 한 자리 수 업체뿐이다. 정유4사의 작업(?)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수출입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완제품의 수입관세는 높이고 원유 수입관세는 낮췄다"면서 "가격경쟁력이 거의 없어진 상황에서 국제 석유제품 가격까지 올라가 방법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002년에 개정된 원유 수입 관세는 3%, 완제품 수입 관세는 7%로 4% 차이가 났다. 이때만 해도 원유 가격과 완제품 가격에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해당 조치는 타격이 컸다.

이후 원유가격과 완제품 가격 차이가 커지면서 국제시장에서의 가격 경쟁 가능폭이 커졌다. 정유4사의 해외 수출 마진이 높아진 이유다. 그만큼 수입 물량에도 유동성이 생겼지만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 온 수출입업체의 시장점유율은 2.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유는 정유4사 폴에 물량을 공급할 수 없어서다. 그나마 물량 공급이 가능한 곳은 최근 생긴 알뜰주유소와 자가폴 주유소로 한정돼 있다. 정유4사에 비해 유통망 확충이 쉽지 않은 구조까지 더해지면 공급할 곳은 주변 지역으로 더욱 한정된다.

정부가 특정 회사 제품의 전량 구매 계약을 불법 행위로 규정하면서 이들을 포함, 경쟁자들의 활로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로선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게 수출입업체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수출입업체 관계자는 "정유4사는 자신들의 제품을 구별할 수 있는 첨가제를 넣어 판매하면서 때때로 주유소에 확인을 나온다"면서 "만약 다른 제품을 판매하거나 하는 경우를 보면 폴사인을 뗀다는 등 협박을 하는데 이 체제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현재까지 별 효과를 못 보고 있는 석유 현물시장 거래 문제도 원인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석유 현물시장 거래는 5월 22일 기준으로 지난 한 달간 23건의 거래가 있었다. 공휴일을 제외하면 현재로선 하루에 한 건 정도의 거래가 있는 수준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유4사 직원들이 눈에 불을 키고 거래 상황을 지켜볼텐데 어떤 간 큰 주유소 사장이 거래를 하겠는가"라고 답했다.

◇관건은 '혼합판매 허용', 제대로만 된다면...
정부는 8월부터 주유소에서 제품을 혼합해 판매할 때 어디 제품을 섞었는지 표시할 필요가 없도록 석대법 시행령을 개정 중에 있다. 한 마디로 주유소 사업자가 싼 제품을 구입해 어떤 비율로 섞어 판매하든지 별도로 소비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도록 한다는 얘기다.

예상대로만 된다면 삼성토탈을 비롯, 석유수출입 업체가 제품의 가격경쟁력만 있다면 싼 가격으로 물량을 공급하는 데 무리가 없다. 싼 물량을 찾아 거래소로 돌아오는 이들도 생길 것으로 석유거래소 담당자는 기대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유업계는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유류를 섞어 팔 경우 품질을 누가 보증할 수 있냐는 논리다. 즉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질 수 있기 때문에 혼합판매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우리 제품이 80% 들어가고 20%가 들어간 제품을 판매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어떻할 거냐"면서 "한 주유소에서 각각의 상표를 걸고 판매하는 건 괜찮지만 제품을 섞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지적이 정유업계의 꼼수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한 수출입업체 관계자는 "일례로 지역 SK주유소에 공급해야 하는 물량이 부족하면 GS 등 다른 정유업체 물량을 받아와서 대신 공급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미 정유4사들도 필요에 의해 혼합 판매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혼합판매 활성화는 석유거래소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찬수 한국거래소 석유시장팀장은 "지금은 정유사들의 참여가 저조한데, 석대법 개정안이 8월에 통과되면 조만간 수입용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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