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과 경제 두 가지 키워드 함께 다루기

올해로 기자 생활 22년차다. 요즘 말로 하면 점점 ‘고인물’이 되는 중이다.

그 동안 취재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취재하는데 예전에는 녹음기와 수첩을 가지고 다녔다. 많은 매체에서 ‘기자수첩’이라는 컬럼 이름을 여전히 유지하는 이유다.

얼마 전 예전에 사용하던 취재수첩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그러다 지난 2009년 유럽 출장 당시 사용하던 수첩을 발견했다. 그린포스트코리아에 입사하면서 따로 챙겨뒀던 수첩이다.

당시 출장을 다녀와 작성했던 기사 제목은 <자전거로 그린 선진국을 가다>였다. 본지 입사 후에도 관련 내용을 컬럼에 한번 소개한 바 있다.

환경 관련 취재였다. 태양열로 전기 만들어 사용하고 마을 도로에 자동차 운행을 금지한 독일 프라이부르그 보봉 생태마을에 다녀왔다. 이와 더불어 북유럽 최대 공업도시로 과거 환경 파괴를 겪었으나 이산화탄소 배출 줄이고 재활용을 늘려 도시 이미지를 바꾼 스웨덴 예테보리에도 다녀왔다. 당시 기자는 탄소배출 줄이기에 동참하겠다는 취지로 현지에서 공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서울에 아직 따릉이가 없던 시절이다.

지금은 태양광이나 신재생에너지, 탄소저감과 탄소중립 같은 단어가 익숙한 시대지만 그때는 13년 전이었다. 취재 떠나기 전 사전 자료조사를 하면서 마을 전체가 자동차 통행을 막고 태양열로 거의 대부분의 전기를 쓰는 ‘솔라시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기자에게는 매우 신선한 자극이었다. 

당시 10년 동안 솔라시티에 살았다던 40대 현지 주민은 기자가 집을 방문하자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아이들 역시 느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얘기로 들리지만 당시 기자는 '선진국 사람들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당시 기자는 생태마을이 아니라 현지 기업에서 더 많은 충격을 받았다. 생태 문제에 관심 많은 환경운동가, 산 속에 흙집 짓고 살면서 태양에너지로 난방하며 사는 사람들,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려 애쓰고 자연 생태계에 깊은 관심을 갖는 사람들 사례는 한국에서도 이미 취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을 방문하고 나서는 매우 놀랐다.

◇ "환경 고려는 기업 윤리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당시 기자는 밀레와 일렉트로룩스 본사를 방문해 취재했다. 유럽 대표 주방가전 기업과 생활가전 기업이었다. 밀레는 산업폐기물 배출량을 줄이고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75%를 난방용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등 적극적인 ‘그린 비즈니스’ 정책을 시행 중이었다. 일렉트로룩스는 친환경 소재와 재활용 재료를 활용해 만드는 녹색 제품(Green Product) 개발에 열중하고 있었다. 물론 요즘 많은 기업들이 관심 가지고 실천도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때는 13년 전이다.

당시 일렉트로룩스 본사 환경감독관 브루토씨는 “기후변화 등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힘을 보탠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결국 기업과 국가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가전제품 겉면에 전력 소모량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됐는지 소비자들이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관계자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매출이나 홍보전략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친환경과 기후위기를 얘기하는 것이 신선했고, ‘환경감독관’이라는 임직원이 있는 것도 신선했다.

이튿날 밀레 본사를 방문해 환경 사무관 베게트씨와 만났다. 당시 기자가 환경 분야에 투입하는 예산과 투자비 규모가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환경 정책과 제품 개발을 별개의 건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말하면서 “예산을 책정하는데 ‘환경 분야에 얼마’라는 식으로 딱 잘라 구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사무관은 밀레가 15년 전부터 그룹 본사에 환경 전문 담당 직원을 채용했다고 말하면서 “환경을 고려하는 것은 기업의 윤리가 아니라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도 말했다.

◇ 환경과 비즈니스...하나의 얘기로 다루자

13년이 지났다. 지난 2020년 2월, 기자가 저 사례를 그린포스트코리아에 다시 소개하고도 또 2년이 지났다. 서울은 물론이고 여러 도시에 독일과 스웨덴처럼 공유자전거가 생겼고 정부와 기업들은 앞다퉈 탄소중립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환경경영’ ‘친환경제품’이라는 말도 많이 들린다. 주요 기업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ESG를 실천하겠다고 말한다. ESG 세가지 기둥 중 가장 앞에 나오는 게 바로 ‘환경’이다.

13년 전 해당 기업 환경 담당관들이 얘기한 가치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잘 실천되고 있을까? 기업과 국가가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정말로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지, 환경 정책이 기업 활동과 별개로 이뤄지는 ‘플러스 알파’식 숙제가 아니라 지구의 기업인으로서 당연히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09년 유럽 출장 주제는 ‘그린 비즈니스’였다. 환경을 보호하는 일반인 얘기보다는 환경 이슈를 다루고 산업적인 시선으로 연결시키는 기업과 그것을 이끄는 정부 정책 얘기가 주된 화두였다. 그린과 비즈니스라는 두 단어의 조합이 매우 낯설었지만 유럽에서는 그게 낯선 조합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도 그린과 비즈니스가 하나의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말로만 연결하는 게 아니라 실제 행동에도 나서야 한다.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다. 널뛰는 날씨가 인류의 건강은 물론이고 생존까지 위협한다. 흔들리는 지속가능 시스템이 경제에 영향을 미쳐 ‘기후불황’이 닥친다는 경고도 들린다. 본지는 2월 이후부터 연중기획 <기후불황 막는 0.99℃> 보도를 시작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최대한 억제해 기후불황을 막자는 취지다. 환경과 비즈니스는 이제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얘기로 다뤄야 한다. 본지 편집국은 앞으로 그렇게 할 계획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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