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정확성이 생명이다. 자연과학은 특히 그렇다. 백만분의 일, 천만분의 일이라도 오차가 있거나, 수식에 오류가 생기면 그 결과물은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과학적 산물로서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래서 과학을 다루는 과학자나 연구기관은 연구나 일반 업무에서나 특별한 정확성을 갖춰야 한다. 하물며 그 기관이 정부 기관이라면 말할 나위가 없다. 치밀함, 합리성, 체계로 꼭꼭 채워져 임의성과 주관적 판단⋅결정, 비합리성 등이 단 한 치도 끼어들 여지가 없어야 한다. 국가 기관에는 늘 최고 수준의 신뢰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의 연구직 공무원 경력경쟁 채용시험의 재시험 파문을 보면 과연 환경과학원이 과학을 탐구하고 그 결과물을 도출하는 국립연구기관이 맞는지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주 기본적인 임용채용 규정조차 지키지 않는 기관이 어떻게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는 환경과학 기술을 선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다.

▲ 국립환경과학원

 

국립환경과학원으로서야 되도록 숨기고 싶었겠지만, 환경TV의 특종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이 파문은 들여다볼수록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경위는 이렇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3월초에 정식 채용공고를 통해 연구직 공무원(경력) 채용에 들어갔다. 환경과학원은 330명의 응시자 가운데 지난달 20일 1차 서류전형 합격자(46명)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환경과학원은 이들 서류전형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4월3일에 면접시험을 치른다고 공고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면접계획은 취소됐다. 대신 환경과학원은 4월9일자 공고를 통해 “공무원임용시험령에 규정된 시험위원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부득이 재시험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서류전형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환경TV의 취재결과, 환경과학원은 서류전형 심사위원 구성요건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공무원임용시험령에는 시험위원의 절반 이상을 다른 행정기관 소속의 공무원이나 민간인으로 채우도록 하고 있는데도, 환경과학원은 전체 시험위원 27명 가운데 단 4명만을 외부위원으로 구성했다. 최소 14명을 외부에서 채워야 함에도 이는 싹 무시하고 멋대로 시험위원을 구성한 것이다.

결국 채용점검위원회로부터 전형과정에 큰 하자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고, 처음부터 다시 시험을 치르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재시험에 들어가는 예산낭비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고, 이 시험을 준비하는 수많은 응시생들이 겪는 경제적⋅정신적 피해 또한 가볍지 않다.

특히 문제는 전형결과에 대한 불신이다. 이미 1차 전형에서 치명적이 하자가 있었던 터라 재시험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국립환경과학원측은 하자를 모두 치유했으므로 공정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겠지만, 응시생들이 갖고 있는 심정적인 불신은 이미 시험 전체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을 터이다.

결국 임용규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탓에 국가예산을 이중으로 써서 낭비하고, 시험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웠으며, 나아가 기관의 신뢰도를 크게 실추한 것이다. 민간의 중소기업에서조차 나름의 규정과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인재를 채용하고 있는데, 정규직 공무원을 뽑는 시험이 이랬으니, 환경과학원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환경과학원은 국가위상에 걸맞는 세계 일류 환경연구기관을 지향하고 있다. 10년 내에 세계 6위권의 국가환경연구기관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박석순 원장(왼쪽 사진) 아래 5개 부, 2개 연구소 등에 모두 869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특히 일부 부서의 직원들은 백령도 등에서 오로지 사명감 하나로 우리나라 환경과학의 발전과 실용환경연구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오늘도 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채용시험의 하자는 기관의 신뢰도에 먹칠을 하고, 결국 이들 전체 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된다.

이번 재시험 파문에서는 환경부도 결코 책임이 가볍지 않다. 산하 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을 그만큼 소홀히 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물론 산하 기관의 독자성은 충분히 확보돼야 마땅하지만, 이처럼 산하기관의 직원 채용과정에 문제점이 드러난다는 것은 환경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환경공단 비리가 불거지면서 환경부 관련 기관에 대한 시각이 예사롭지 않은 마당이다. 그냥 하자를 치유하고 재시험 치르며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환경부 및 산하 기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여 공신력을 높일 수 있도록 보다 깊이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201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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