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변화의 시작, 이건희 회장 23년 리더십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생전 행보와 재계에 미친 폭넓은 영향에 다시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1987년 회장 취임식 당시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생전 행보와 재계에 미친 폭넓은 영향에 다시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1987년 회장 취임식 당시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생전 행보와 재계에 미친 폭넓은 영향에 다시 관심이 쏠린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 후 줄곧 도전과 혁신을 강조하면서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초석을 다졌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른 기업이다.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은 글로벌 스테디셀러고, Z플립 등으로 보여준 폼팩터 혁신은 세계 시장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가전 등에서도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해외 곳곳에 뻗어있다.

삼성 제품의 영향력이 과거부터 늘 1등이었던 건 아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후반 삼성 ‘마이마이’와 소니 ‘워크맨’의 브랜드파워는 넘기 힘든 수준의 큰 차이가 있었다. 요즘은 블랙프라이데이 등 해외 빅세일 기간에 삼성TV가 큰 인기지만 그 시절 우리나라 가전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차지하던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변화의 시작은 1987년, 이건희 회장이 취임하고 나서다. 이 회장은 1997년 출간한 에셍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통해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 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이 회장은 회고록에 “19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썼다.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는게 그의 회상이다.

이 회장은 1993년 2월 임원들과 해외시장 순방에 나섰다가 미국 한 매장에서 팔리지 않은 채 구석에 놓여있던 삼성 TV를 보고 충격을 받아 순방을 중단했다. 이후 같은해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비상경영회의를 주관하고 대대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마누리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메시지가 여기서 나왔다. 이른바 ‘신경영 선언’이다.

품질을 위해서라면 생산·서비스라인을 멈추라는 지시가 나왔고, 문제가 생기면 5번 이상 이유를 따지라는 ‘5WHY’사고론이 전파됐다. ‘디자인경영’과 ‘열린채용’같은 단어도 그 시절 삼성에서 시작한 혁신이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당시 “앞으로 세상에서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면서 “성능과 질 등 생산기술이 비슷해지므로 앞으로는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이 회장은 2005년 ‘제 2의 디자인 혁명’을 선언하면서 “짧은 순간에 고객을 사로잡지 못하면 경쟁기업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이건희식 혁신 “과거의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히 버려라”

이건희 회장은 혁신과 도전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1987년 12월 취임사 첫 마디가 “우리는 지금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시련과 도전이 몰려드는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삼성 제2 창업의 선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소임을 수행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삼성은 이미 개인이나 가족 차원을 넘어 국민적 기업이 됐다”면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첨단 기술산업 분야를 더욱 넓히고 해외사업 활성화로 그룹의 국제화를 가속시킬 것이며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다. 2020년 현재 돌아보면 대부분 이뤄진 약속들이다.

이 회장은 위기의식도 남달랐다. IMF 사태 직전 1997년 1월 신년사에서는 “외부환경의 위기, 내부혁신의 위기, 시간의 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다”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삼성은 물론 나라마저 2류, 3류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절방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1998년 신년사에서는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게 뜰 수 있다”며 용기와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의 공식 메시지 중 가장 최근은 2014년 신년사다. 당시 이 회장은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리자”면서 “남보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을 만듭시다”고 말했다. 이날 이 회장은 “핵심 사업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산업과 기술의 융합과 복합화에 눈을 돌려 신사업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 외신도 이건희 별세 소식 긴급 타전

이건희 회장이 국내외 재계에 미친 영향은 25일 별세 소식을 전한 해외 주요 언론의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5일 미국 뉴욕타임스와 AP·AFP·로이터·블룸버그·교도통신 등 주요 외신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소식을 일제히 긴급 뉴스로 전했다.

중앙일보가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뉴욕타임즈는 이날 “삼성전자를 스마트폰, TV, 컴퓨터칩 글로벌 거인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서울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 회장에 대해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을 세계 1등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AFP통신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테크 거인으로 변모시킨 이 회장은 2014년부터 심장마비로 투병했다”고 전했고 로이터는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가장 큰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며 “고인의 생애 동안, 삼성전자는 2등급 TV제조업체에서 매출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첨단기술 기업으로 발전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고인에 대해 “삼성전자를 모조품 생산업체에서 누구나 탐내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텔레비전·메모리 칩 기업으로 변모시켰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건희 회장은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자, 순자산 207억 달러를 보유한 한국 최고 부자”라고 설명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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