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하지 않은 바이러스, 변한 것은 세균이 아니라 인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보는 여러 학자와 전문가들의 시선

중국 관광객이 줄고 국내 소비자들이 외식과 여행을 줄이면서 산업의 활력이 둔화되고 있다. 사진은 평소 관광객으로 늘 붐비던 동대문 디자인센터 일대가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한 모습 (이한 기자) 2020.2.7/그린포스트코리아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 사진은 평소 관광객으로 늘 붐비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근처가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한 모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천산갑을 거쳐 인류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박쥐가 문제였을까? 학자들은 ‘변한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간 사회이며, 문제도 인간에게서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삶의 패턴이 변했다. SF영화 속 얘기거나 남의 나라 일인줄 알았던 ‘재택근무’가 신기하지 않은 일이 됐고, 재채기나 기침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민폐인 세상이 됐다. 신뢰를 뜻하던 인사인 ‘악수’는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는 행위로 인식되면서 ‘팔꿈치 인사’로 대신하게 됐다. 볼에다 뽀뽀하는 유럽식 인사법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사스와 에볼라, 홍콩독감, 신종플루,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 이와 유사한 여러 사례가 있었으나 지금처럼 세계가 들썩인 적은 없었다. 이 바이러스에서 인류는 뭘 배워야 하는걸까. 여러 학자들이 최근 언론을 통해 밝힌 견해들을 모았다.

◇ 평등하지 않은 바이러스? 변한 건 세균이 아니라 인간 사회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들이 최일선에서 코로나19와 치열하게 싸우는 요즘, 여러 분야의 학자들도 이번 사태를 저마다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인류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인류의 빈부격차 등과 묘한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러스는 평등하지 않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가리진 않지만, 바이러스를 만나는 시간과 공간이 사람마다 차별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해당 인터뷰에서 “바이러스가 의도하지 않아도 재난 속에서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은 차별적”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에볼라 바이러스로 서아프리카 사람들 수천 명이 죽어 나갈 때도 세계는 긴장하지 않았다. 미국인 2명이 감염되고 나서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재난으로 선포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바이러스는 의미를 주기 위해 오지 않고 그냥 온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찾을 것인가는 우리 몫”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인간 집단은 괜찮은가? 이대로 생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졌다.

코로나19의 끈질긴 생명력 등에 대해 일각에서는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하지만 변한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간 사회라는 지적도 있다. KAIST 바이오뇌공학과 및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이광형 초빙석좌교수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컬럼을 통해 “변한 건 돌연변이의 빈도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밀집도다. 밀집도가 올라가면서 접촉자 숫자가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지구의 원래 주인은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 생명체와 바이러스 같은 것들”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식물과 동물은 단세포에 돌연변이가 거듭돼 만들어진 것으로서, 돌연변이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계속해 바이러스도 변하고 인간도 변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를 전쟁으로 볼 수도 있고 공생으로 볼 수도 있다. 지구상에서 인간과 바이러스가 서로 영역을 인정하며 공존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 “문제는 박쥐가 아니야” 인류가 낯선 바이러스와 마주하는 이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박쥐와 천산갑을 통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박쥐일까? 하지만 적잖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인류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동물이 인간을 공격한 게 아니라 인간이 동물을 들쑤셔서 생긴 일이라는 관점이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박쥐가 우리한테 일부러 바이러스를 배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박쥐를 잘못 건드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후변화와 그로 인해 사라질 생물다양성, 그 두 문제에 코로나19도 연결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례로 “거대 가구기업들이 세계 환경 파괴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하다”고 말하면서 “기업들이 아프리카 숲에 투자해 벌목해서 길을 내면 트럭이 들락거리고, 트럭 사이로 사냥꾼들이 들어간다. 동물들 잡는 게 쉬워지니까 산업이 돼버린다”고도 덧붙였다.

최 교수는 “바이러스든 세균이든 블루오션을 만났다”고 말하면서 “77억 인간을 공략하지 않으면 누구를 공략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구에서 가장 흔한 동물이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가축이다. 지구는 어느덧 이들이 다 차지하고 다른 동물들은 틈새에서 겨우 비비고 산다. 인간과 소, 돼지, 닭은 전부 한곳에 다닥다닥 모여 있으니, 야생동물발 전염병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한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외국의 학자들과 전문기관에서도 바이러스에 대해 다양한 경고를 내놓은 바 있다. 홍콩시립대 수의과대학 더크 파이퍼 석좌교수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인류가 불균형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파이퍼 교수는 “인류가 숲을 개발하고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에 접근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병원균과 만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평생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성 질환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라는 의미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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