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이승리 기자]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려야 했던’ 그 시절 ‘돈’은 월급날이 되면 고스란히 ‘주머니’ 속에 들어왔다. 봄이나 가을은 차치하더라도 여름에 첫 월급을 받아도 내복을 샀을지 궁금하기도 한 그때 그 ‘돈’을 헤아리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는 그 과정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계수한 돈은 그 돈으로 빠듯하게 한달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 건네졌다.

돈이 오고가려면 적어도 두 사람은 만나야 했다. 또 봉투 안을 훅, 불고는 남은 건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까지 마치고 나서야 계좌이체 마무리가 됐다.

그러다 계좌번호가 오고가면서 그가 나에게 계좌로 송금하면, 나는 그로부터 돈을 받는 계좌를 매개로 한 이동이 시작됐다. 그것은 이내 창구와 창구를 오가더니 곧 한 사람과 기계, 나머지 한 사람과 기계가 만나면 상대방이 보낸 돈을 건네받을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다. 은행 직원을 사이에 두고 행해졌던 면대면의 계좌이체 마저 필요없어진 것이다.

ATM기를 이용해 오후 4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도 계좌이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점심시간 초초하게 번호표를 들고 남은 시간을 가늠하지 않아도 되는 혁신 그 자체였다. 이후 컴퓨터를 매개로 한 '인터넷뱅킹'은 수수료까지 책임지며 안락한 계좌송금 환경을 구축해줬다.

그리고, 이제는 그마저도 구식이 됐다. 얼굴을 맞대는 것은 고사하고, 발품도 팔지 않아도 서로의 손가락을 타고 돈이 오고가는 '간편송금'이라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손품팔기'만으로도 돈이 움직인다. 더불어 '핀테크'를 앞세운 토스, 카카오페이 등의 간편송금 서비스 등장은 계좌번호 대신 '연락처'를 기억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굳이 길고 어려운 계좌 대신 휴대전화 번호면 나의 돈이 당신에게 닿았다. 이 간단한 오고감의 확장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중 전자지급 서비스 이용현환'을 보면 2019년 한해동안 일평균 249만 건의 간편송금이 이뤄졌다고 한다. 그 금액만도 2,346억원이다. 지난 2018년과 비교하면 건수로는 76.7%, 금액으로는 124.4% 증가한 수치다. 

이렇게 많은 돈이 '편리' 속에 오고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웬일인지 주머니는 그때 그 '월급봉투'를 받아들었던 시절과 별다를 게 없이 가볍기만 하다. 여전히 ‘먹고 사는 것’은 오늘의 존재를 고민하게 하게 만든다. 숨이 끊어지지 않도록 유지시켜 줄 무언가를 먹고, 또 저절로 가는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산해진미가 많아져 뭘 먹을까 고민해야 하고, 다양한 주거 형태가 갖춰져 어디에 살아야 하나 망설이는 시절을 살아서 그럴까 생각해보지만 그건 또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먹거리 종류가 적었던 그 시절도 그랬다는 그때의 말을 꽤 여러 번 들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 역시,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다는 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늦은 저녁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나처럼 먼 거리를 오가는 듯 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그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휴대전화 너머 상대방에게 애써 밝은 척하며 '3개월간 급여 10%가 삭감된다'는 말을 털어놨다.

너무도 쉽게 돈이 오고가는 간편한 매개체인 '휴대전화'를 가지고도, 힘겹게 돈이 오고가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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