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현의 世事 斷想] '워싱턴 vs.테헤란', 그 얽히고 설킨 실타래
[양승현의 世事 斷想] '워싱턴 vs.테헤란', 그 얽히고 설킨 실타래
  • 양승현 편집위원
  • 승인 2020.01.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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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표지석 모습)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표지석 모습)

 

O...1974년 9월 1일부터 16일까지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 게임은 이란이라는 나라와 국민이 한국과 한국인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행사로 기자는 기억한다.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로 페르시아어가 국어였고 시아파 이슬람의 사실상 교조로 풍부한 석유를 내세우며 중동의 맹주를 자처했음에도 지리적,문화적으로 우리와는 너무 멀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231명의 임원 및 선수단을 파견, 수영 자유형의 조오련과 육상 투포환의 백옥자가 금메달을 따는 등 선전을 펼쳐 종합 4위의 성적표를 받게 된다.

이란은 주최국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 본디 한 개이던 역도의 체급별 금메달을 인상,용상, 종합 등 3개로 늘리는 강수를 동원하고 레슬링에서 잘 싸워 종합 2위에 오른다.

일본이 7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가운데 미국과의 2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제무대로 복귀한 중국이 종합 3위 성적으로 국제 스포츠무대에 데뷔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중동 여러 나라의 반대속에서도 이스라엘이 참가,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으나 다행히 1972년 뮌헨 올림픽때의 '검은 9월단'사태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육상의 꽃'으로 불리는 마라톤이 열리지 못한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었다.

거의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페르시아의 10만대군이 아테네의 1만 병력에 마라톤 평원에서 패전, 기원이 됐다는 마라톤을 경기 종목으로 인정하는 것을 이란의 자존심이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테헤란 아시안 게임 3년후인 1977년 6월 서울 강남을 동서로 관통하는 삼릉로에 '테헤란로'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진다.

서울과 테헤란이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상대도시 주요 도로에 서로간의 이름을 넣은 도로를 지정하기로 약속한 데 따른 것으로 당연히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43년이 흐른 지금 1000만 서울 시민중에 이란이나 테헤란을 모르는 사람은 있겠지만 테헤란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제껏 말한 두 가지 일은 철저한 친미(親美)주의를 표방한 국왕 팔레비 2세가 이란을 통치할 때 일어났고 한국은 유신정권하였다.

미국과 이란간의 밀월 관계는 꽤나 오래 지속될 것으로 그 때는 누구나 생각했다.

 

(1979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억류됐더니 인질들)
(1979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억류됐던 인질들)

 

 

O...지금은 마치 불구대천지 원수같이 보이지만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본디부터 나쁜 것은 아니었다.

1921년 쿠데타로 집권한 레자 칸이 팔레비왕조를 창건했던 1925년부터 두 나라는 '우방'이었기 때문이다.

팔레비 왕조는 미국의 도움으로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했고 미국은 이란을 통해 소련을 견제하는 한편 중동 석유 확보의 교두보로 삼았다.

이란에 있던 미국의 공군 기지가 두 나라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상징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과 잦은 마찰을 빚으면서 국정 철학을 공유하지 못한 팔레비 2세는 비밀경찰까지 동원하는 학정과 경제난으로 국민의 배척을 받기에 이른다.

결국 팔레비 2세가 지병 치료를 핑계로 해외로 망명하게 되자 1979년 2월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양국의 악연은 시작된다.

혁명에 성공한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부패한 친미정권으로 공격했고 반미 노선을 국시(國是)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1979년 11월 4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객사한 팔레비 2세 시신 송환을 요구하며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이란 대학생들이 점거해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인질로 잡은 사건은 두 나라가 완전히 등을 지는 결정적 기폭제가 됐다.

결국 1980년 4월 미국은 이란과 단교를 선언하게 되고 그해 9월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하게 되면서 양국은 공식적 적대 관계로 발전한다.

미국은 이란의 군함을 공격했고 이라크에는 무기를 지원, 8년간에 걸친 이 전쟁이 후일 이라크의 사실상 승리로 끝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최정예 델타포스를 동원, 테헤란 인질을 구하려던 작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대원 8명을 잃는 정치적 재앙을 겪게 되고 우여곡절을 거쳐 미국 인질들은 1981년 1월 레이건 대통령 취임에 맞춰 444일만에 미국으로 '추방' 되기에 이른다.

특히 1988년 7월 3일 호르무즈해협에서 미국 해군 함정 빈센트호가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이란항공 655편이 격추되자 이란인들의 미국에 대한 적대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군용기로 오인했다는 미군 발표로 희생된 290명이 돌아올 수는 없었다. 

이란에 이슬람 정권이 수립된 후 40년간  미국행정부는 정권을 민주당이 잡든, 공화당이 잡든 대(對)이란 적대시 정책을 지속하게 되는데 민주당이 그나마 온건노선을 펼친 편이라 할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주로 경제 제재에 주력한 반면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1년 9.11테러를 겪으면서 배후로 지목한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이른바 '악의 축(an axis of evil)'으로 규정, 제거되어야 할 집단으로 규정할 정도였다.

결국 아들 부시행정부는 오사바 빈 라덴과 탈레반 제거를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갔고,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내게 된다.

대화를 강조했던 오바마 행정부 들어와서는 한때 해빙무드도 형성됐다.

2015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이란과 핵합의를 맺으면서 경제 제재를 풀어 투자 분위기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결국은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라는 기본적 불신속에 서방의 우려를 뒤로 한 채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파기했고 경제 제재도 재개하게 된다.

살얼음판을 걷던 양국관계는 지난해말과 새해초 이라크 미군 기지에 대한 이란의 로켓포 공격-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에 대한 미군의 공습-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의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 공격이 이어지며 급속도로 위기감이 확산됐다.

그리고는 지난 3일 미국이 드론 공습을 통해 대미 항전 지휘관인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했고 '피의 복수'를 다짐한 이란은 8일 미사일 20여발로 보복 공격을 가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무인기 공습으로 폭사한 이란 쿠드루군 솔레이나미 사령관)
(미국의 무인기 공습으로 폭사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솔레이마니 사령관)

 

O...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대국민연설을 통해 "이란의 공격이 있었으나 아군 사상자는 없고 약간의 피해가 있을 뿐이다. 당장 군사력을 동원한 보복은 자제할 것이며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혀 유화 제스처를 분명히 했다.

서방 전문가들은 이란이 '명분쌓기'용으로 미사일 공격을 가했을 뿐, 애초 미군 피해를 겨냥한 공격이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았고 이에 미국이 '화답'한 형국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외려 이란의 미사일 공격후 테헤란 인근에처 추락, 176명이 사망한 우크라이나 국적기 사고 원인을 놓고 이란과 미국의 상호 비방전이 한때 거셌으나 이란군의 요격 미사일 발사가 확인되고 이란인 사망자가 희생자의 절반이 넘는 82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란 지도부는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도 미군 사상자가 없다는 점은 지금의 양국 관계에서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란의 당초 주장대로 8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를 가리킨다. 사전적으로는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다.

개인 대 개인이든, 어떤 집단 대 집단이든, 국가 대 국가든 화평은 지향해야 할 목표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도 소개했듯 두 나라 관계는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정권을 어떤 정파가 잡느냐에 따라 극에서 극으로 오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나라간 외교의 짧은 경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이란은 이란대로 분쟁 양상으로의 확대는 어쨌거나 피할 일이다.

대선을 10개월 앞둔 트럼프로서는 정치적 셈이 반드시 있을 것이나 전쟁을 벌인다고 이길 선거를 지지도 않을 것이고 질 선거를 이기지도 않을 것은 분명하다.

일부 해외 언론의 분석대로 '중동의 베트남화'를 미국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고 2003년 옆 나라 이라크가 어떻게 미국에 당하고 굴복하는지를 뻔히 아는 이란으로서 무조건 강경 카드를 고수하기에는 힘이 너무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털어 전쟁은 지도자들이 일으키지만 죽고 부상하고 피해보는 것은 결국 해당국 국민들이다.

또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 싸움은 미국과 이란이 하는데 모든 일은 이라크영토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두 나라는 이애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힘이 없으면 누구라도 그리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양승현 편집위원]  

yangsangsa@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