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는 ‘범고래’…공포·위험 회피가 연쇄 반응

범고래는 집단 사냥에 능하고 덩치도 커 바다 생태계에서 백상아리를 제치고 최고 포식자 자리를 차지한다. 로버트 피트먼,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 제공.
범고래는 집단 사냥에 능하고 덩치도 커 바다 생태계에서 백상아리를 제치고 최고 포식자 자리를 차지한다. 로버트 피트먼,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 제공.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범고래가 바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했다.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는 백상아리와 범고래 그리고 이 둘의 주 먹잇감인 코끼리물범을 수십 년 동안 관찰한 미국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최근 게재했다.

연구팀은 캘리포니아의 대패럴론스 국립해양보호구역에서 2006∼2013년 백상아리 165마리에 무선추적장치를 부착해 추적했다. 범고래와 물범은 약 27년 동안 관찰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범고래의 출현은 백상아리의 포식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연구를 이끈 살바도르 조르겐센 박사는 “백상아리는 범고래가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도 자신이 선호하는 사냥터를 떠나 최대 1년 동안 다시는 그곳에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실제 도피한 백상아리가 다른 바다의 코끼리물범 사냥터에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패럴론섬을 찾는 백상아리는 길이가 5.5m에 이르는 대형 상어다. 범고래는 길이가 6∼8m로 더 크고 지능이 높으며, 무리를 지어 소리로 소통하면서 사냥 전략을 편다. 조르겐센 박사는 “범고래가 백상아리를 먹이로 사냥하는지 아니면 경쟁자로서 겁을 주어 쫓아내는지는 불확실하다”면서도 “1997년 사례에서 보듯이 백상아리에 1톤이 넘는 영양덩어리인 간이 들어있다는 것을 범고래가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백상아리와 범고래가 서로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두 포식자의 조우를 관찰할 수 있는 시기는 가을 뿐이다. 백상아리는 매년 가을에 패럴론섬을 방문하고, 범고래는 매년 봄과 가을, 새끼를 낳는 코끼리물범을 사냥하러 섬을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런 드문 광경을 백상아리 전문가인 스콧 앤더슨이 처음 목격했다. 앤더슨은 “고래 관광선을 타고 있었는데 무선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다가가 보니 범고래가 백상아리를 죽여 간을 뜯어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범고래 두 마리가 먹이 사냥에 성공했을 때 내는 소리를 낸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후 연구팀은 3차례 더 이 같은 조우 장면을 관찰했다. 2009년 11월 범고래 무리가 물범을 사냥할 당시 바닷속엔 17마리의 무선추적장치를 단 백상아리가 있었으나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자취를 감췄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연구팀은 “무선추적장치를 단 백상아리가 모두 살아있었지만, 범고래가 다른 백상아리를 잡아먹었거나 공격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범고래의 출현으로 가장 크게 덕을 보는 동물은 백상아리의 주식인 코끼리물범이다. 앤더슨은 “백상아리는 남동 패럴론섬에서 한 번식철에 약 40마리의 물범을 잡아먹는데, 범고래가 모습을 드러낸 뒤로 백상아리에 의한 물범의 포식률이 4∼7배 떨어졌다”고 말했다.

포식자는 직접 잡아먹는 방식으로만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먹이사슬 하위권에 속한 동물은 잡아먹히지 않으려 활동 반경을 줄이고, 서식지를 바꾸는 등의 대응방식을 보이기 때문에 연쇄효과 역시 발생한다.

범고래에 놀란 백상아리는 100∼3000㎞ 떨어진 사냥터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장거리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해야 하는 만큼 백상아리에게는 부정적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조르겐센은 “그동안 대형 포식자의 사냥이 바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알아볼 때 공포와 위험 회피가 중요한 구실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백상아리 같은 대형 포식자가 안전한 사냥터로 방향을 트는 등 공포 효과의 강력한 영향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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