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2분 실랑이 벌인 김상교씨에게 20분 업무방해 적용해 체포상황 조작

김상교씨는 버닝썬에서 지구대로 향하는 순찰차 안과 지구대 앞에서도 경찰관들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김상교씨는 버닝썬에서 지구대로 향하는 순찰차 안과 지구대 앞에서도 경찰관들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채석원 기자] 경찰이 버닝썬 폭행 피해 신고자인 김상교(28)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체포상황을 조작하고 적법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김씨 어머니가 지난해 12월 제기한 진정에 따라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24일 친구 생일모임으로 버닝썬에 방문했다가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김씨는 직원에게 끌려가는 여성을 보호하려다가 클럽 관계자와 보안요원들에게 폭행당했으며, 이후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입건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관들은 김씨가 흥분해 클럽 직원들에게 위협적으로 달려들고 자신들에게도 시비를 걸어서 진정하라고 수차례 말했으며, 계속 행패를 부릴 경우 폭행 등의 혐의로 체포될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아 김씨를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112신고사건처리표, 현행범인체포서, 사건 현장과 지구대 CC(폐쇄회로)TV 영상, 경찰관들의 바디캠 영상 등을 분석해 경찰관들의 주장이 상당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인권위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김씨와 클럽 직원간의 실랑이를 보고도 곧바로 하차해 제지하지 않았던 점, △경찰관들이 김씨와 클럽 직원들을 분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씨의 신고내용을 청취하면서 2차 말다툼이 발생했던 점, △경찰관들이 김씨의 피해 진술을 충분히 청취하거나 이를 직접 확인하려는 적극적인 조치가 부족했던 점, △김씨의 항의에 대해 경찰관이 감정적으로 대응해 신속한 현장 조치와 2차 사고위험 예방이라는 초동조치가 적절하지 않았던 점을 지적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김씨는 약 2분간 클럽 앞에서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클럽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였으며, 경찰관에게 한 차례 욕설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경찰관이 작성한 현행범인 체포서에는 ‘20여 분간 클럽 보안업무를 방해하였고, 경찰관에게 수많은 욕설을 하였다. 김씨가 폭행 가해자(장○○)를 폭행하였다’고 기재돼 있었다. 현행범인 체포서가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르게 작성됐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경찰이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김씨는 112에 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신고한 뒤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동한 경찰관들은 현장에서 클럽 직원의 진술에 따라 김씨를 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김씨에게 진정하라고 몇 차례 말한 사실이 있으나,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전에 김씨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거나 체포될 수 있음을 사전에 경고하는 과정이 없었다. 경찰관들은 김씨가 한 차례 욕설을 하며 약 20초간 경찰관에게 항의하자 갑자기 김씨를 바닥에 넘어뜨려 현장 도착 후 3분 만에 체포했다.

김씨가 경찰관의 목덜미를 잡은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경찰관에 의해 걸려 넘어지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경찰의 목을 잡았다고 인권위는 밝혔다.

인권위는 “김씨가 클럽 앞에서 쓰레기 등을 어지럽히고 클럽 직원들과 실랑이가 있었던 상황, 김씨가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하며 항의한 사정, 나아가 현장 상황에 대한 경찰관의 재량을 상당부분 인정하더라도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당시 상황에 비춰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공권력 행사의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경찰이 김씨를 체포하는 과정도 적법하지 않다고 봤다. 인권위는 “경찰관이 김씨를 넘어뜨려서 수갑을 채운 후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말하는 내용은 확인되나, 김씨가 폭력으로 대항하는 등 사전에 미란다원칙을 고지하지 못할 정도의 급박한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체포 이후에 미란다원칙을 고지한 행위는 적법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인권위는 경찰이 김씨에 대한 의료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경찰은 김씨자가 병원 치료를 원한다고 하자 지구대에서 119에 신고했으나 김씨가 후송을 거부했고, 김씨 어머니가 지구대를 방문해 119에 다시 신고했으나 119 구급대원들이 응급을 요하는 상황이 아니란 이유로 돌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김씨가 아프다고 계속 소리를 지르자 일단 석방하고 나중에 조사하기 위해 수갑을 풀어주고 119에 신고했으나 김씨가 서류에 침을 뱉어 던지는 바람에 다시 수갑을 채워 병원에 후송하지 못했다고 경찰은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인권위는 경찰이 조사가 진행 중이고 응급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김씨의 병원 후송을 거부했던 사실을 밝혔다. 인권위는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는 김씨에게 상당한 부상이 있음을 경찰관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던 점, 김씨가 통증을 호소하고 김씨의 보호자가 지구대에 방문해 김씨의 치료를 계속 요청한 점,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119 구급대원의 의견이 있었음에도 경찰이 김씨에게 뒤로 수갑을 채워 의자에 결박한 상태로 적절한 의료조치 없이 지구대에 2시간 30분가량 대기하게 했다가 경찰서로 인계한 점에 미뤄 경찰관이 김씨의 건강권을 침해했다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장주의의 적용을 받지 않는 현행범 체포가 특별한 제약 없이 현장에서 오용되거나 남용된다면 영장주의 원칙이 퇴색하는 등 사법적 통제가 공동화(空洞化)될 수 있으므로 체포 현장에서 체포의 필요성을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현장 상황을 해결하는 만능 수단이 아니라 최후의 보충적 수단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요구되고 이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한 인권위는 “체포된 사람에게 부상이나 질병이 있어 치료가 필요할 때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 등으로 수사절차 상 신병 확보가 반드시 요구되지 않는다면 신속히 석방해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조치해야 하고, 수사 편의에 따라 장시간 지구대에 인치함으로써 부당한 인신의 제한이 계속되지 않도록 업무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jdtimes@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