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고처리 비용 최고 800조원 추정...독일·스위스 등 "탈원전"
국내 중대사고 안전대책 총체적 부실...안전담보 예산 나눠먹기 '횡횡'
월성원전 임시저장수조 2년뒤 포화...고준위방폐장 마련은 아직 '깜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8주기 311 나비퍼레이드.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개인, 단체로 구성된 ‘311준비위원회’와 ‘후쿠시마 8주기 행사위원회’가 준비한 311 나비퍼레이드는 15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국회에서부터 광화문까지 총 8.1km 행진을 했다. (녹색당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8주기 311 나비퍼레이드.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개인, 단체로 구성된 ‘311준비위원회’와 ‘후쿠시마 8주기 행사위원회’가 준비한 311 나비퍼레이드는 15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국회에서부터 광화문까지 총 8.1km 행진을 했다. (녹색당 제공)/2019.03.10/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지난 여름 유례없는 폭염으로 에어컨 가동률이 늘자 정부는 한시적으로 전기세 인하 방안을 내놨다. 기후변화로 진통을 앓는 가운데 탄소 배출을 늘리는 '에어컨 가동 장려 정책'에 의문이 들었지만 이해는 갔다. 국정 지지율이 왔다갔다 했으니 일단은 '사탕'부터 물린 것. 

이달 초 이른바 ‘미세먼지 재난’이 전국을 강타하자 이번에는 공기청정기 구매를 위해 추경까지 만지작거렸다. 눈에 보이는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비난이 쏟아지니 이번에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요즘 없어서 못 판다는 공기청정기 역시 '전기 먹는 하마'다. 

11일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8주기다. 이날 뜬금없이 폭염과 미세먼지 문제를 끄집어낸 건, 전기의 약 19%가 원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원전은 '지킬 앤 하이드'

원전은 안전할 때는 순한 양이지만, 중대사고 한 번에 감당할 수 없는 '괴물'로 변한다. 구 소련의 체르노빌,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사고는 원전 안전성에 대한 심각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가 됐다. 그 결과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전 폐쇄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세계적 쟁점이 되자 온실가스 배출 없는 원전의 효용성이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원전 증가 추세가 일어났다.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원전 가동이 필요하다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식' 주장은 사실 기후학자들에 의해 먼저 흘러 나왔다. 이를 두고 같은 당 김성환 의원은 "마주오는 차 피하자고 중앙선을 넘자는 주장"이라고 요약했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원전사고가 또 터졌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일본에서 발생한 사고였던 터라 세계는 덜컵 겁을 먹었다. 원전이 청정하면서도 경제적인 에너지원이라 믿었던 운영 국가들은 하나둘 탈원전을 선언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 스위스, 대만, 이탈리아다. 인류는 핵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 전기 이렇게 싸게 막 써도 괜찮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탈원전 정책으로 인상될 전기료는 어떻게 감당 할 것이냐"고 물었다. 화력, LNG, 원전 가운데 원전의 발전단가가 가장 싸다는 것이다. 원전이 순한 양으로만 존재한다면 김 위원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사고 후 일본 정부는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가 바다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 두꺼운 지하 얼음벽을 만들겠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땅을 수㎞ 두께로 얼려 냉각수를 원전 주변에 묶어두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얼음벽을 구축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35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원자로가 완전히 냉각돼 안전성이 보장되기까지 4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따라서 얼마만큼의 예산이 투입될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오염수 완전 통제는 아베 신조 총리의 사기극으로 끝났다. "오염수는 지금도 바다로 계속 누출되고 있다"는 폭로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도쿄전력 등을 통해 나왔다. 발표 기관에 따라 추정치는 다르지만, 200조원에서 800조원까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처리하는 데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훈 민주당 의원실 측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과 같은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한국의 처리 비용은 2492조원 정도다. 아직 처리시설조차 마련되지 않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은 추산도 못한 실정이다. 국내 1년 전체 예산이 470조원다.

◇ 사고만 안 나면 경제적이지 않나

"원전에서 중대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원전을 54기나 만든 것도 이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고 해도 맞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을 했던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말이다. 해임 후 그는 탈원전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13년 국내 원전비리 사건이 크게 터졌다. 부품 공급업체가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부품들을 수년 이상 한국수력원자력에 납품하다 적발된 것이다.

2016년 처음 드러난 한빛·고리 원전 등의 격납건물 철판부식 현상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아직도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원전사고 발생시 대응 가능한 국가 조직이 있을까. 지난해 라돈침대 처리 과정을 다같이 지켜보지 않았나. 

지진 역시 염두에 둬야 한다. 2016년 이후 4.0 규모 이상의 지진이 매해 발생하고 있다. 2016년 5.8 규모의 지진이 경주를 흔들었다. 국내 원전 내진 설계 기준은 최소 0.20g, 최고 0.30g이다. 통상 0.2g는 규모 6.5 수준의 지진을, 0.3g는 7.0 수준의 지진을 의미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지진 규모는 9.0이었다. 일본 정부는 조만 간 더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내놓은 국내 원전 안전대책도 부실하다는 평이 많다. 다수호기 확률론적안전성평가(PSA), 격납건물여과배기(CFVS) 전면 적용은 사실상 용역기관 먹여살리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자력계가 국민 안전을 담보로 연구과제 나눠 먹기에 혈안이 됐다는 말이다. 

◇ 화장실 없는 멘션에서 계속 살 것인가

0.01%의 확률일지라도,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한국 사회가 깨달은 것이 있다. 안전은 타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원전 중대사고따윈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그럼 안전할까?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방사성물질이 나온다. 이를 방사성폐기물이라고 한다. 원자력시설, 작업장과 더불어 핵분열생성물, 냉각수, 냉각가스 등의 누출수가 모두 방사성폐기물이다. 실험이나 작업에 사용된 공구, 헝겊, 종이, 세척수 모두 방사성폐기물이다. 

방사성폐기물은 방사능 준위에 따라 크게 고준위(사용후핵연료)와 중저준위로 구분된다. 방사능이 매우 강한 고준위폐기물이 현재 1만 4000톤이나 쌓여 있다. 원전을 중단하지 않으면 해마다 750톤 정도씩 추가된다.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발전소 내 임시 수조에 저장 중이다. 지난 40년간 처분장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한수원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월성원전(경북 경주)의 건식저장시설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은 90.3%다. 2년 뒤인 2021년 포화상태가 된다. 

다른 원전의 포화율도 다르지 않다. 한수원의 '원전 본부별 사용후핵연료 저장현황'에 따르면 △한울원전(경북 울진) 78.3% △고리원전(부산) 77.3% △한빛원전(전남 영광) 69.9% 등이다. 

◇ 미세먼지 재앙, 이전 세대의 선택이었다 

일주일간 지속된 미세먼지 대란은 이전 세대가 선택한 결과다. 경제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달려온 결과, 우리는 미세먼지 세대가 됐다. 

사용후 핵연료가 자연 소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만년이다. 사회적 합의로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더라도 처분장이 10만년간 버텨줄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원전을 물려주면 후손들은 '피폭 세대'로 기록될지 모른다. 미래세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라고? 너무 쉽게 쓰이는 핵,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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