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숙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활동가

우리 엄마 아빠는 그야말로 환경계의 ‘하드코어’랄까. 가끔 어르신들의 의도치 않은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없이 살기) 내공을 목격할 때가 있다. 가령 휴지 없이 맨 손만으로 ‘킁’하고 딱 떨어지게 코를 푼다든가, 명태 대가리로 전을 부쳐 먹는다든가, 치실을 씻어서 여러 번 사용한다든가 하는 행동들 말이다. 우리 부모님은 이 세 가지 ‘내공’을 겸비했다. 나로서는 좀처럼 따라잡기 힘든 실천의 경지지만 솔직히 너무 ‘하드코어’ 아니냐고요. 세상의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을 파리채로 파리 잡듯 때려주고 싶지만 치실만큼은 예외다. 제발이지 한 번만 쓰고 버리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꿈꾸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만랩’은 치실에 대한 죄책감 없이 이빨을 깨끗이 관리하는 거다. 

그깟 얇디얇은 치실을 두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이유는 치실이 합성섬유(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치실은 가볍고 얇으면서도 쇠심줄처럼 끊어지지 않아야 하므로 주로 나일론을 사용한다. 가볍고 얇으면서도 질기고 튼튼한 것이 플라스틱의 최대 장점이니까. 가끔 낚시 줄처럼 가느다란 실이 다리를 파고들거나 그 결과 피가 통하지 않아 다리를 잃은 새를 볼 때면 치실이 떠올랐다. 종량제 봉투에 고이 버렸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다가도,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치실의 가벼움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랫동안 썩지 않는 문제에 더해 최근 일부 치실에서 유해물질이 나왔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일부 치실에서 검출된 PFAS(과불화화합물)는 햄버거나 감자 칩을 싼 종이 포장지, 들러붙지 않는 코팅 프라이팬, 고어텍스 소재의 스포츠웨어, 얼룩 방지 카펫 등에 사용된다. PFAS가 기름과 수분으로부터 제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PFAS 물질 중 대표적인 PFOA와 PFOS는 동물 실험에서 간과 신장, 생식체계와 면역체계, 갑상선 호르몬 등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PFAS가 몸속에 들어오거나 환경에 남을 경우 그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약 5년이 걸린다. 잔류성 유기 오염 물질(POPs)을 줄이고자 해당 물질의 제조 사용 수출입을 금지 및 제한하는 스톡홀름 협약에 일찌감치 PFOA가 포함된 까닭이다. 2018년 대구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돼 논란이 됐는데, 그 물질이 바로 PFAS였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한 시민단체도 강물에서 PFAS가 검출됐다며 당국에 관리 대책을 촉구한 바 있다. 

다시 치실로 돌아가자. 최근 PTFE(테플론) 재질의 치실을 사용한 여성들 혈액에서 해당 물질이 높게 나왔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세계 최초로 밝혀진 연구 결과다. 캘리포니아 공중보건기구 연구소와 미국 환경문제 연구기관인 ‘침묵의봄연구소’는 미국 여성 178명의 혈액에서 11종의 PFAS 농도를 측정했다. 또한 연구팀은 사람의 행동이 유해물질 노출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식습관, 생활 방식 등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치실에서 PFAS가 검출되었고 그 치실을 사용한 여성들의 혈액에서도 해당 물질이 높게 검출된 사실이 밝혀졌다. 치실에 든 PFAS가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인지를 밝히려면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PFAS가 들어있지 않은 치실을 구할 수 있으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치실을 선택할 때 재질 표시를 찾아보자. 그저 PTFE(테플론)이나 불소 첨가라고 써진 치실만 피하면 된다. 대다수의 브랜드에서 나일론 치실이 나오니 쉽게 택할 수 있다. 더 좋은 선택도 있다. 며칠 전 제로웨이스트 숍에 갔다 어르신들을 이길 궁극의 치실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세상에는 썩지 않은 합섬섬유 말고 실크나 대나무 섬유로 만든 생분해성 치실이 존재했다. 심지어 유리통에 담겨 있고 치실만 리필해서 쓸 수 있다. 물론 좀 비쌌다. 그래서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별로 비싸지 않은 실크 치실을 구입했다. 뭐, 리필해서 쓰면 되니까. 조만간 부모님 댁에도 실크 치실 하나 놔드려야겠다. 친환경 실천, ‘하드코어’ 대신 실크로 이빨 사이를 후비는 사치로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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