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책읽기] "탈원전은 정치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선택"
[화목한 책읽기] "탈원전은 정치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선택"
  • 박소희 기자
  • 승인 2019.01.3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수습까지 총리의 기록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간 나오토 지음 | 김영춘, 고종환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03월 11일 출간 | 196쪽  | 사회문제 일반
간 나오토 지음 | 김영춘, 고종환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03월 11일 출간 | 196쪽 | 사회문제 일반

 

이 책의 한 단락: 원전에서 중대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전을 54기나 만든 것도 이 전제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도 제도도 정치도 경제도 그리고 문화조차 원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움직였다.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고 해도 맞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응할 수 없었다. 정치가도 전력회사도 감독관청도 '상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이다. 자책하며 단언한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3·4호기 건설재개' 범국민 서명운동이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전개 중이다. 원자력발전이 국가에너지 백년대계와 국가경제, 지역경제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다. 탈원전 반대는 한국당의 ‘정책저항운동 제1호’로 30일 기준 약 38만 7000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탈원전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공약으로 전 세계 흐름이기도 하다. OECD 국가 35개국 중 25개국은 원전이 없거나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스위스·벨기에·타이완 4개국은 아예 탈원전을 선언했다. 한국당 주장대로라면 백년대계 에너지를 왜 세계는 추방하고 있을까.

◇설마 일본에서 사고가 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현에 위치해 있던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이 누출됐다. 원전은 정지된 후에도 계속 냉각해야 하는데 쓰나미 습격과 함께 전원이 끊겼고 그로 인해 냉각 기능이 정지됐다. 

사고 발생 첫날 오후 8시쯤, 1호기에서는 이미 '멜트다운'이 일어났다. 멜트다운이란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되며 열 상승으로 노심부(원자로의 중심부)가 녹아버리는 현상이다. 

다음 날 오후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13일에는 3호기의 멜트다운, 15일 6시쯤 2호기에서 충격음이 발생했다는 보고와 동시에 4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당시 사고를 수습했던 일본 총리는 간 나오토다. 2010년 6월 8일부터 2011년 9월 2일까지 452일간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가장 큰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다. 퇴임 후 그가 가장 먼저 천착한 일은 원전사고를 경험하며 총리로서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결단했고, 어떤 마음으로 행동했는지 기록하는 일이었다. 

에코 리브르에서 발간한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부터 수습까지 담당했던 간 나오토 일본 전 총리의 기록이다. 최고 책임자인 총리로서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시간 순서에 따라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써 내려간다.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원전기술을 보유했고 기술자도 우수한 일본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체르노빌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간 나오토는 "자기가 믿었던 것은 ‘원자력 마피아’가 만든 ‘원자력 안전 신화’였다"며 “핵무기 개발은 쥐가 쥐덫을 만드는 것과 같은 자기모순”이라고 경고한다. 

◇설마 한국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 있나

간 나오토 총리는 사고가 일어난 직후 피해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최악의 경우를 기술적으로 예측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강제 이전 구역은 반경 170㎞ 이상, 희망자의 이전을 인정하는 구역은 도쿄도를 포함한 250㎞로, 약 5000만명의 대피가 불가피해 진다. 그뿐만 아니라 이 250㎞ 권역이 수십 년에 걸쳐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대기와 바다를 통해서 세계에 방사능을 뿌리는 것을 뜻한다. 

간 나오토 총리는 묻는다. “당신이 피난을 지시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한국은 원전밀집국가다. 2017년 11월 중순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3의 지진으로 한반도 지진안전 신화는 깨졌다.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한 번 상상해보자. 국내에서도 원전 중대사고가 일어났다. 당신은 어디로 피난을 갈 것인가.

농업, 어업, 목축업 종사자들은 사는 곳 뿐만 아니라 일자리까지 잃는다. 시내에 있는 공장은 그대로 도산할 것이다. 사고지역에 거래처가 있는 기업은 외상 대금 회수가 불가능해 질 것이다. 경제 혼란은 피할 수 없으며 땅값은 폭등할 것이다. 국가 붕괴와 함께 자본주의나 사유재산 개념도 부정될 것이다. 부유한 사람은 해외 이주도 방법이다. 문제는 이주 비용조차 마땅치 않은 이들이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서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2011년 쓰나미에 휩쓸려온 어선과 후쿠시마 원전배제구역 내 사당.(The Conversation)
2011년 쓰나미에 휩쓸려온 어선과 후쿠시마 원전배제구역 내 사당.(The Conversation)

◇나는 탈원전을 결심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초기대응 미숙으로 사태를 키웠다. 일본 사회가 '원전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를 토대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원전 안전 신화 위에 만들어진 법과 제도는 사고가 발생하자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원전 50기 이상 보유국이면서도 방사능 누출이 되고 나서야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문조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의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참사였다.

사고가 난 제1발전소에는 원전 6기와 사용후핵연료 풀(pool) 7개가 있다. 12㎞가량 떨어진 제2원자력발전소도 4기의 원전과 4개의 사용후핵연료 풀이 있다. 두 발전소의 핵연료와 폐기물 양은 사고가 난 체르노빌 제4호 원자로의 몇십 배다. 간 나오토 총리는 도쿄전력의 원전이 후쿠시마현에 이렇게 집중적으로 설치된 것이 새삼 놀라웠고, 만약 원전 제어가 불가능해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니 등골이 오싹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됐다. 

“발생 확률이 100년에 1회인 사고가 있다고 하자. 그것이 교통사로라면 차는 상당히 안전한 이동수단이다. 그러나 만약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지구가 붕괴하는 사고는 100년에 한 번이든 1000년에 한 번이든 누구라도 그러한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 (중략) 원전의 안전을 지키는 5중의 벽을 7중으로 하더라도, 쓰나미 대책으로 제방을 높이더라도 결국 인간의 과신을 포함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원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나는 어떻게든 탈원전만은 실현하고 싶다. 그것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총리로서 경험한 정치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책 요약 발췌)

◇ 원전문제는 철학이다

일본 철학자 우메하라 다케시는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문명재'로 규정했다. 잘못된 문명의 선택으로 야기된 재해라는 것이다. 

과학의 진보는 축적되지만 인간의 개별적 능력은 이에 비례해서 진화하지 않는다. 그 간격 탓에 과학기술 제어는 어려워진다. 간 나오토 총리는 사고를 수습하며 인간이 핵반응을 이용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핵 에너지는 인간의 존재를 위협한다는 것을 알았다. 탈원전을 선택한 이유다. 

그는 퇴진 후에도 탈원전을 주장하며 정치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의 역할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학기술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믿는 탓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8년이 지났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조사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방사성 오염은 다음 세기까지 지속될 정도로 심각하지만 아베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피난 지시를 해제했다. 국가 존망의 위기였지만 이를 잊은 듯 재계는 탈원전은 일본 경제에 마이너스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원전이 국가에너지 백년대계와 국가 경제, 지역경제를 위한 최선의 길일까. 일본이 추산한 원전사고 수습 비용은 200조원(2011~2021년)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수습을 담당했던 간 나오토 총리는 말한다. 탈원전은 경제 논리가 아닌, 철학의 문제로 정치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선택이라고. (간 나오토·에코리브레·1만3000원)

◆ 신간소개

오늘과 마주한 3·1운동 3·1운동을 꾸준히 연구한 역사학자이자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기획위원장인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가 '민주주의' 관점으로 설명한 3·1운동 개설서. 저자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3·1운동은 근대와 현대를 가를 만큼 획기적인 분기(分岐)였다"며 "1801년 공노비 해방으로 시작되는 민주주의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시대라는 도약기를 거쳐 1919년 민주공화정을 낳았다"고 강조한다.(책과함께·1만3000원)

 

 

우린 너무 몰랐다 도올 김용옥이 해방 정국과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을 다룬 책.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미군정 시기를 혹평한다. 미국은 한국을 모르는 상태에서 국익만 추구했고, 건국준비위원회와 각지 인민위원회를 부정해 친일파 중심 질서를 개편하지 못했다고도 비판한다. 그러면서 미군정에 이어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이 일어나 무수한 사람이 희생됐다고 안타까워한다. (통나무·1만8000원)

 

ya9ball@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