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라·남소영 '레몽탁랩' 공동대표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사람들은 왜 텀블러를 쌓아만 두고 사용하지 않을까.’

접는 텀블러 개발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집 안에 쌓여 있는 텀블러만 스무 개가 넘었다. 선물, 판촉물 등 집 곳곳에 쌓인 텀블러를 꺼내니 일어난 일이었다. 그 가운데 들고 다니는 텀블러는 없었다. 무겁고, 부피가 큰 텀블러는 가방에 담기는 순위에서 늘 탈락했다. 들고 다니기 편리한 접는 텀블러 ‘푹(puc)’이 탄생한 배경이다.

서울 종로구 한 건물의 위워크 사무실에서 접는 텀블러를 만든 '레몽탁랩'의 공동대표 임하라(본명 임승섭·35)·남소영(29)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24시간 365일 음악과 조명이 안 꺼지는 사무실 환경이 일만 하게 만든다"며 웃었다. 지난해 6월 창업해 6개월 남짓 쉴 틈 없이 달려온 사람들의 자부심이 미소에 서렸다. 2달 뒤 제품 출시 계획인 그들에게 휴식은 아직인 듯 보였다.

레몽탁랩 공동대표인 임하라(왼쪽)씨와 남소영씨. 책상에는 그 동안 변경돼 온 텀블러들이 놓여 있다. (레몽탁랩 제공) 2019.1.25/그린포스트코리아
레몽탁랩 공동대표인 임하라(왼쪽)씨와 남소영씨. 책상에는 그 동안 변경돼 온 텀블러들이 놓여 있다. (레몽탁랩 제공) 2019.1.25/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해 5월 환경부가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잖아요. 2020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40% 가량 줄이는 게 목표라고 하면서 텀블러 사용을 장려했죠. 300원 할인 등 제도가 나왔고요. 그때 평소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커졌어요. 일회용컵에 익숙한 생활 습관을 바꾸려면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죠.”

레몽탁랩은 접는 텀블러 ‘푹’으로 지난해 12월 환경부가 주관한 제1회 환경창업대전 아이디어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제품은 당시보다 더 발전했다. 기자가 손에 쥔 ‘푹’을 접었다 펴는 과정에 아래쪽 고리를 뜯어버리자 남 대표는 민망해하며 “고리를 더 크게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불편한 점을 보완하는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푹’의 첫 번째 장점은 가벼움이다. 실리콘(SI)과 플라스틱(PP)만으로 조립하는 형식이라 일반 스테인리스 텀블러보다 2.5배가량 가볍다. 음료를 마신 뒤에는 컵을 접어 부피를 줄일 수 있다. 레몽탁랩은 ‘푹’의 캐치프라이즈를 ‘푹 잇 파킷’으로 정할 예정이다. 접으면 주머니에 쏙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부피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푹(puc)’은 순서를 바꿔 적으면 ‘컵(cup)’이 된다.

“제품이 담을 수 있는 음료 용량은 14.6온즈에요. 스타벅스 톨 사이즈인 12온즈와 그란데 사이즈인 16온즈 사이죠. 중간쯤이라는 의미로 저희는 톨란데라고도 불러요. 버전업은 꾸준히 할 거예요. 현재는 다양한 색깔을 추가하고 있어요. 직접 색깔을 골라 자기만의 텀블러를 제조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크기도 다양하게 만들 생각이고요.”

임하라 레몽탁랩 대표가 지난달 19일 환경창업대전 시상식을 찾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에게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9.1.25/그린포스트코리아
임하라 레몽탁랩 대표가 지난달 19일 환경창업대전 시상식을 찾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에게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레몽탁랩 제공) 2019.1.25/그린포스트코리아

푹은 실리콘 2개로 음료를 담을 수 있는 형태를 만들고 가운데서 플라스틱이 형태를 잡아주는 원리로 만들어진다. 음료는 실리콘에만 담긴다. 해체가 쉬워 막대 수세미를 사용하지 않아도 세척할 수 있다. 한두 달 내로 최종 버전이 완성되면 크라우드 펀딩이나 편집매장(셀렉숍), 홈페이지 등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임 대표는 푹에 사용되는 실리콘은 푸드 그레이드로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임 대표는 어쩌다 창업에 뛰어들었을까. 그는 스스로를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기획 회사, 스포츠 의류브랜드, 동대문 등 다양한 곳에서 경험한 뒤 내린 결론이다. 첫 번째 도전은 의류사업이었다. 어렵게 한 두 해를 버티고 결국 실패했다. 서툴렀고, 시야가 좁았다. 세상을 다양하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조업은 스타트업에서는 크기가 작은 분야다. IT쪽과 정부 지원 규모나 도전하는 사람 수가 더 적다. 정보 공유와 팀 매칭을 위해 제조업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하드웨어 스타트업 캠프’에 임 대표가 참여한 이유다.

“회사에서는 많이 팔릴 수 있는 물건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그것만 잘 팔면 된다는 논리로 디자인 작업을 시켰어요. 잘 되는 브랜드 베끼는 것도 서슴지 않았죠. 브랜드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어떤 감성을 느끼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작업이 좋은 저에게 로고만 바꿔 그럴싸하게 하는 일 같은 건 견디기 힘들었어요.”

두 사람은 ‘하드웨어 스타트업 캠프’에서 만났다. 남 대표도 2년 반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이전에는 디자인회사에서 편집·마케팅 일을 했다. 진로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임 대표를 만났다. 둘은 평소 리사이클링과 조립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임 대표의 기획력, 남 대표의 마케팅 아이디어 등 서로 다른 능력에서 오는 시너지 효과도 컸다. 창업을 결심한 이유다. 겁도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레몽탁랩 사무실 모습. (레몽탁랩 제공) 2019.1.28/그린포스트코리아
레몽탁랩 사무실 모습. (레몽탁랩 제공) 2019.1.28/그린포스트코리아

“가치를 어디 두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하고 싶은 걸 해서 세상에 알리고, 그 반응을 보는 게 좋은 사람들인 거죠. 주위에서 연봉이 4000~5000만원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불안할 때도 있죠. 왜 없겠어요. 근데 처음 시작하는 단계라 힘든 건 당연하잖아요. 꾸준히 하면 세상이 알아줄 날이 오지 않을까요.”

현실이 쉽지는 않았다. 이런 형태의 제품이 없는 만큼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문의하면 돌아오는 건 차가운 반응이 먼저였다. 괜히 도면만 노출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스타트업을 처음하는 입장이라 더 예민했다. 한 공장을 만나 5개 버전을 만들 때까지 함께 했다. 고무로 시작한 첫 번째 제품부터 현재까지 5개 제품은 레몽탁랩의 소중한 역사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고 싶지만,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는 임 대표. 일상과 사업의 구분 없이 하루 대부분 시간을 아이디어를 짜고 제품을 개선하는 데 보낸다. 생활은 힘들 수밖에 없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지원사업에서 나오는 활동비와 모아둔 돈 등으로 아껴서 생활한다. 환경창업대전에서 받은 상금도 큰 도움이 됐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푹’의 브랜드화다. 텀블러 하나로도 인정받는 기업이 되는 게 꿈이다. ‘푹’하면 접히는 이미지가 떠올리게 하고 싶다.

“환경을 위해서 사주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구호보다는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기업이 되고 싶어요. 일부 텀블러 제조사들은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사달라고 하는데 피부로 와닿지 않잖아요. 얼마나 제품이 실용적이고 뛰어난지, 그 점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제품을 만들려고 해요. 브랜드 가치를 키우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seotiv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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