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사과‧예방’ 3가지 요소에 초점

2017년 11월 반올림 10주년 기자회견. (반올림 공식 카페 제공) 2018.07.25/그린포스트코리아
2017년 11월 반올림 10주년 기자회견. (반올림 공식 카페 제공) 2018.07.25/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홍민영 기자] 삼성전자와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10년 분쟁이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랐다. 양측은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 서명식’을 개최하고 최종 합의서에 서명했다. 서명서의 골자는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백혈병 논란’은 2007년 3월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하던 황유미(당시 22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황씨 죽음의 책임이 삼성전자에 있다고 판단한 아버지 황상기씨는 같은 해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후 반올림으로 바뀜)’를 만들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전자‧전기 계열 근무자 중 백혈병, 뇌종양, 유방암 등에 걸린 사람들의 신고를 받았다. 

반올림 공식 카페에 따르면 올해 5월 31일 기준 반올림에 신고를 해 온 피해자는 360여 명에 달하며 이중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제기한 피해자는 96명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그동안 “각종 질병과 반도체 제조공정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2010년에는 미국의 ‘인바이런’사를 통해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발암물질 노출 기준은 국제기준보다 낮고 노동자의 발암물질 노출과 백혈병 발병의 상관관계는 찾지 못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사건의 진실이 재차 도마에 올랐다. 당시 한 시사주간지에 삼성반도체 엔지니어에게 지급된 내부기밀용 ‘환경수첩’에 대한 전문가 분석 기사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에서는 트리클로로에틸렌, 시너, 감광액, 디메틸아세트아미드, 아르신(AsH₃), 황산(H₂SO₄) 등 6종의 발암성 물질이 사용됐다. 이중 특히 디메틸아세트아미드는 불임‧유산 등을 유발하는 발암물질로 고(故) 황유미씨가 세정 작업에서 자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물질들도 알레르기, 천식, 백혈병, 불면, 불면, 착란 등을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황상기 대표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011년 6월 승소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근무하는 동안 백혈병의 발암물질을 포함한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급성 골수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추단할 수 있다”며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그러나 다른 유족들은 인정 판결을 받지 못해 그 뒤로도 오랫동안 소송을 해야 했다.

2014년 5월 삼성전자는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산업재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2015년 조정위원회에 의한 1차 조정이 진행됐지만 합의는 실패했다. 조정위는 공익법인을 설립해 삼성전자에 피해자 보상과 재발방지책 총괄을 권고했으나 삼성전자는 이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보상을 진행했다.  

이번 2차 합의에서 초점이 맞춰진 것은 ‘보상·사과·예방’의 세 가지다.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질병 보상 방안 △반올림 피해자 보상 △삼성전자 측의 사과 △반올림 농성 해제 △재발 방지 및 사회공헌 등이 다뤄진다.

특히 ‘사과’ 부문에서는 1차 조정 당시 근로자 대상 범위, 보상할 질환의 종류, 퇴직 후 최대 잠복기 등에서 삼성전자와 조정위가 대립한 바 있다. 조정위는 이 부분에서 “큰 틀에서의 중재안의 방향을 잡았다”고 말해 1차 조정과는 다른 내용이 담길 것을 예고했다.  

또한 중재위는 그동안 반도체 관련 3사(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가 지원 및 보상했던 방안을 ‘일정한 사회적 합의’로 보고 있어 이번 중재안도 이 틀 안에서 잡힐 것으로 보인다.

‘사과’는 삼성전자가 과거보다 범위를 확대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1차 조정 당시 조정위의 ‘위험에 대한 충분한 관리가 이뤄지지 못했던 점을 인정하는' 사과를 삼성전자가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예방’은 2016년 삼성전자‧반올림‧가족대책위원회가 예방안에 합의한 바 있기에 조정위가 이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협력사들의 안전 관리에 역량을 투자‧지원하도록 권고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합의에는 지난 2월 초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여, 그런 예측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 부회장이 이번 합의로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중재위는 오는 8~9월에 중재안 내용을 발표하고 9월 말~10월 초에 최종 중재안을 발표한다. 삼성전자는 10월 안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hmy10@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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