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조정제도 규제 수준 강화
CBAM 적용 품목 확대하고 도입 시기 앞당길 예정
EU, 간접배출도 포함...한국, 전력 생산 단위당 배출량 높아
한국 제품의 저탄소화가 궁극적 대안
국제기구 등과 기후변화 협력 논의 적극 참여해야

유럽연합(EU)이 도입 예정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초안보다 더 강화된 형태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유럽연합(EU)이 도입 예정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초안보다 더 강화된 형태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초안보다 더 강화해 추진할 것으로 예고하면서 한국 정부와 산업계가 대비책 마련에 분주하다. CBAM 적용 품목이 확대되고 도입 시기도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관련 산업과 업종의 비용 부담도 더욱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제품의 저탄소화로 탄소경쟁력을 강화하고 국제적인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EU, 탄소국경조정제도 규제 수준 강화

EU가 도입 예정인 CBAM이 초안보다 더 강화된 형태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EU의회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수정안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EU 의회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CBAM 수정안은 초안보다 규제 수준이 강화됐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제품에 포함된 온실가스 배출량에 EU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등과 연동된 탄소가격을 부과해 징수하는 조치다. EU로 수출하는 기업에는 일종의 추가 관세로 작용해 ‘탄소국경세’라 불린다.

EU집행위원회는 2019년 말 ‘유럽 그린딜’을 통해 CBAM의 도입을 선언하고 2021년 7월에 입법안을 발표했다. EU의회의 수정안은 EU집행위 초안에서 벗어난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CBAM이 새로운 단계에 돌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CBAM 적용 품목 확대하고 도입 시기 앞당길 예정

의회 수정안은 CBAM이 적용되는 품목을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력 외에 유기화학품, 플라스틱 등 4개 품목을 추가하고 있다. 또한 제도 시행 일정을 1년 앞당겨 시범 기간은 2024년 12월까지로 하고 2025년부터 제도를 본격 도입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정안은 EU 내 탄소누출 위험 업종으로 분류되는 사업장에 무상으로 할당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을 더 빠르게 철폐하는 시나리오를 명시하고 있다. 탄소누출은 특정 지역 내 온실가스 배출 관련 규제에 따라 규제가 없는 국가로 생산시설 등이 옮겨가 그 지역의 배출량이 늘어나는 문제를 말한다. 

또한 제도의 적용 배출범위를 직접배출에서 전기 생산에 따른 간접배출까지 확대하는 방안과 역외국의 탄소가격제 인정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탄소가격제는 집행 주체가 정부인지 기업인지에 따라 정책적 탄소가격제와 내부 탄소가격제로 나뉘며, 정책적 탄소가격제는 탄소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는지에 따라 명시적 가격제와 묵시적 가격제로 분류된다.

배출권거래제, 탄소세와 같이 탄소가격을 객관적인 수치로 설정하는 명시적 가격제와 달리 묵시적 탄소가격제는 재생에너지 보조금, 화석연료세, 배출효율등급제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를 포괄한다. 수정안은 명시적 탄소가격제만이 면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 “탄소배출량과 연계된 해당 업종 비용 부담 커질 것”

신규섭 연구원은 “수정안은 잠정적이지만 의회의 공식 입장으로서 한국 업계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며 “적용 품목이 유기화학품, 플라스틱 등으로 확대될 경우 동 품목의 대EU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이 받는 영향이 더욱 커질 수 있고, 특히 해당 업종은 한국의 대표적인 탄소다배출 산업으로서 탄소배출량과 연계된 업계의 비용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원 분석 결과, 2019~2021년 동안 우리나라가 EU로 수출한 연평균 금액은 초안에 포함된 5개 품목의 경우 30억 달러(약 3조 8,000억원) 규모로 EU에 대한 총수출액의 5.4%를 차지했다. 수정안에 포함된 4개 품목의 경우 같은 기간 연평균 수출 규모는 55.1억 달러(약 7조원)로 EU 수출액의 9.9%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배출범위가 간접배출까지 확대되는 것도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전력 생산 구조를 가진 한국에 불리할 것으로 분석된다. 신규섭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에너지원 구조를 보이며, 이에 따라 전기의 단위 생산에 따른 탄소 배출량이 높은 편이다”라고 지적했다. 

◇ EU, 간접배출도 포함...한국, 전력 생산 단위당 배출량 높아

한국은 2020년 기준 전체 전력소비량 세계 8위이자 1인당 전력소비량은 세계 7위에 해당하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다. 2018년 산업 부문 전력소비량은 전체 소비의 57%를 차지하며, 이중 제조업 부문이 53.3%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조업 부문 중에서는 기계·장비 업종이 전체 전력 소비의 21%를 차지하고, CBAM 적용 가능성이 높은 1차 금속, 석유·화학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9%, 12.5%로 나타났다.

전력소비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발전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다른 선진국보다 많은 편으로 분석된다. 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기준 전력 1kWh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72.4g으로 EU(215.7g), 캐나다(123.5g) 등 선진국 대비 2∼4배가량 많다. 이는 한국이 전력을 생산하는 데에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EU의 CBAM이 현실화하면서 한국 정부와 산업계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글로벌 탄소 무역장벽 현황과 과제’ 세미나를 개최해 산업계의 영향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 한국 제품의 저탄소화가 궁극적 대안

산업부에 따르면,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의 구체적인 시행안이 공개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그 영향을 계량화하기 쉽지 않으나 단기적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유럽연합이 일정대로 무상할당을 축소해나가면 점차 국내 업계의 부담이 증가할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 한국 제품의 저탄소화를 통해 탄소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생산기술연구원은 글로벌 탄소무역 장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관이 협력하여 국제적 기준에 맞는 탄소 배출량 산정 및 검증에 대한 기반시설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특히 국가간 서로 통용될 수 있는 글로벌 탄소배출량 방법론 개발이 시급하다고 진단하며, 이를 위해 다른 국가들과도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산업부는 글로벌 탄소무역조치 도입 현황을 파악하고 민·관 합동으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1월 ‘탄소통상 자문단’을 발족하고 정기적으로 자문단 회의를 열고 있다. 지난 13일 회의에서는 EU가 도입 예정인 탄소국경조정제도뿐만 아니라 독일이 주도하고 있는 기후클럽 등의 탄소무역조치 논의 동향과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 국제기구 등과 기후변화 협력 논의 적극 참여해야

기후클럽은 기후위기 대응에 비슷한 지향점을 갖는 국가 간 협의체를 결성해 참여국 간에는 공동의 구속력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참여하지 않는 국가에는 보복관세 등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올해 주요 7개국(G7) 의장국인 독일은 G7 소속 국가들을 중심으로 기후클럽을 만들어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글로벌 탄소무역조치에 대응하기 위해서 유사 입장국들과 공조해나가야 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기후변화 협력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가 기후클럽, 글로벌 철강·알루미늄 협정 등과 연계되어 국제적 논의로 확대·발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윤창현 산업부 통상법무정책관은 이날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탄소무역조치를 일부 국가가 개별적으로 도입하게 될 경우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제적 논의를 거쳐 공감대가 우선 형성될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 탄소무역조치 논의 동향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우리 업계와 함께 적극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smkwo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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