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 가격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탄소세 등과 같은 에너지세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대표적인 탄소 가격 제도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사용하거나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할 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만큼의 비용을 가격에 부과하자는 것이다. 공짜이거나 아주 저렴하게 책정돼 있던 탄소 가격을 올려서 온실가스를 배출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최근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국제공조 및 다자간 협력을 강화하면서 탄소 가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탄소 가격과 관련한 궁금증을 Q&A로 정리해 앞으로 5차례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주]

유럽의회 환경위원회는 CBAM 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법안의 발효 시기를 기존 2026년에서 2025년으로 1년 앞당기는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보고관 법안을 추진 중이다.(flickr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유럽의회 환경위원회는 CBAM 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법안의 발효 시기를 기존 2026년에서 2025년으로 1년 앞당기는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보고관 법안을 추진 중이다.(flickr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승문 기자] 유럽연합과 미국 등 해외 주요 시장에서 탄소국경세 관련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새로운 제도가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급격한 전환으로 소외되는 산업과 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 기후 대응 법안 ‘피트 포 55(Fit for 55)’를 발표하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2026년부터 시행할 것을 예고했다. CBAM은 목적지 시장의 환경정책이나 온실가스 배출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해당 시장 교역상품의 가격에 반영해 조정하는 조치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 규제가 약한 국가로 이전하는 ‘탄소누출’을 방지하고 자국의 산업 경쟁력 약화 대응, 글로벌 기후 합의 사항에 대한 타국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 유럽연합, CBAM 대상 확대하고 적용 시기 앞당길 듯

7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유럽의회 환경위원회는 CBAM 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법안의 발효 시기를 기존 2026년에서 2025년으로 1년 앞당기는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보고관 법안을 추진 중이다. 환경위원회는 올해 2월에 특별보고관 법안과 각 정당이 제출한 개정안을 함께 협의해 4월에 법안을 표결할 예정이며, 이후 본회의 표결로 유럽의회 법안이 최종 확정된다.

기존 EU 집행위원회 법안은 CBAM 적용 대상 품목을 철,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기로 한정했다. 그런데 특별보고관 법안은 생산과정에 막대한 화석연료가 사용되는 유기화학물, 수소, 플라스틱과 생산 공정에 사용된 전기 등 이른바 간접배출(indirect emissions)까지 CBAM 적용 대상 품목에 추가한다.

특별보고관 법안은 CBAM 발효 시기도 앞당긴다. 기존 법안은 CBAM을 2023~2025년까지 3년의 전환 기간을 거친 후 2026년부터 정식 발효하고 부담금 부과를 개시하기로 했다면, 특별보고관 법안은 2023년~2024년까지 2년 동안의 전환 기간 후인 2025년부터 개시한다. 

특별보고관 법안은 향후 확정될 CBAM 규정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한 어떤 국가도 CBAM 사전 면제를 불허한다. 국가별 면제가 불허됨에 따라 CBAM 부담금 감면을 위해서는 수출국에서 납부한 탄소비용 증명을 통한 감면제도를 이용해야 한다.

◇ 미국도 탄소국경세 검토 중

미국도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EU의 CBAM과 유사한 국경탄소조정(BCA: Border Carbon Adjustment) 제도 도입을 위한 논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미국 의회에 제출한 ‘2021 통상정책의제 및 2020 연례보고서’에서 BCA를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지난해 7월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과 스콧 피터스 하원의원 주도로 BCA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2024년부터 화석연료,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등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방침이 담겨있다. 법안이 도입되면 전체 수입품의 약 12% 정도가 규제받게 되고, 연간 50~160억 달러(5.8~18.4조 원) 규모의 추가 세입이 발생할 전망이다.

EU와 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은 온실가스 배출거래제 및 온실가스 저감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 혜택을 제공하면서 강력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뿐만 아니라 자국 산업 보호의 성격도 있어 향후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될 우려도 있다. 

인도와 러시아 등은 탄소국경세를 보호무역주의로 해석하며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하지만 EU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탄소국경세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입장으로 바뀌면서 통상정책을 활용한 대외적인 압박이 현실화하고 있다.

◇ 탄소국경세, 국내 산업에 상당한 영향 미칠 듯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탄소국경세가 도입될 경우 국내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과 논의가 주요 정부 부처와 연구기관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내 주요 업종의 수출기업들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 비중이 약 40%로 중국과 일본(약 18%)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EU가 온실가스 배출량 톤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수출은 연간 0.5%(약 32억 달러)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같은 수준의 탄소국경세를 추진하면 수출이 0.6%(약 39억 달러) 더 위축돼 전체 수출 감소율은 1.1%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은 EU 탄소국경세 부과시 0.13%, 미국 부과시 0.15%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은 다만 국내에서도 탄소중립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향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다소 축소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0월에 EU 배출권거래제 및 미국 캘리포니아의 배출권 가격과 한국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의 배출권 가격 차이(2021년 8월 31일 기준 각각 63,027원, 6,431원)를 근거로 국내 주요 산업의 탄소국경세 부담 금액을 추정했다. 

2017~2019년 평균 수출 물량을 기준으로 1차 철강 제조업, 1차 비철금속 제조업(알루미늄), 비금속 광물제품 제조업(시멘트) 부문에 배출권 가격 차이를 적용하면 EU에 2,846.7억 원, 미국에 338.2억 원 등 총 3,184.9억 원의 탄소국경세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린피스도 지난해 1월 ‘기후변화 규제가 한국수출에 미치는 영향분석’ 보고서를 통해 탄소국경세 시행 원년으로 예상되는 2023년 즈음에 한국 주요 수출 업종에서 3개국(EU, 미국,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추가 금액이 6,1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오는 2030년에는 그 금액이 훌쩍 뛰어 1조 8,700억 원을 추가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소외된 산업과 국내 중소기업을 위한 대책 필요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31일 ‘탄소국경조정에 대한 주요국 입장과 국내 무역 경쟁력 변화’ 보고서에서 지난 1년간 EU와 한국의 배출권거래제 가격 차이의 중위값인 33.1달러로 계산하면 알루미늄 산업은 13.1%, 철강산업은 12.3%, 시멘트·비료는 각각 1.8%의 EU 수출 감소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동일한 조치가 미국에서 도입되면 알루미늄 6.9%, 철강 8.6%로 수출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연구원은 “탄소중립을 향한 NDC 상향, 이에 따른 탄소국경조정 발효 및 배출권거래제 강화 등 국내외 기후변화 대응 요구 증대에 부합하기 위한 급격한 전환으로 소외되는 산업과 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EU의 CBAM 대상 품목에 해당하는 국내 중소기업의 EU 수출 규모를 2019년 기준 전체 EU 수출 대비 1.3% 수준인 6억 1,000만 달러(약 7,320억 원)로 추산했다. 하지만 수출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영향까지 고려하면 CBAM이 국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향후 CBAM이 복합재와 공급망으로까지 확대될 경우, 국내 중소기업들도 CBAM의 직접적인 규제 대상에 포함되며, 수출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CBAM 대응 비용과 의무를 하청업체에 전가하거나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중소기업의 CBAM 대응 및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초점을 맞춘 지원정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smkwon@greenpost.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