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니즈로 사라지는 플라스틱들

남양유업이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빨대 없는 ‘맛있는우유GT 테트라팩’을 출시했다. (남양유업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남양유업이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빨대 없는 ‘맛있는우유GT 테트라팩’을 출시했다. (남양유업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곽은영 기자] 지난해 팬데믹에 이어 찾아온 쓰레기 대란 앞에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각심도 커졌다. 한 번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500년 이상 썩지 않고 잔류한다. 이 변하지 않는 사실 앞에서 자원 재순환과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편하기만 한 제품은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한다. ‘더욱 편리해진’이라는 수식을 위해 기업은 소용량 포장, 낱개 포장, 부자재 부착 등 플라스틱 사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에 소비자가 오히려 ‘이게 꼭 필요한 것이냐’고 되묻고 있다. 필환경 시대 소비자는 정부도 기업도 못한 일을 해내고 있는데 그 힘은 바로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나온다.

일명 그린 팬슈머의 활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팬슈머는 상품이나 브랜드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소비지를 뜻한다. 자신들의 영향력으로 상품이나 브랜드를 소비하는 한편 비판과 간섭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린 팬슈머는 이 비판의 기준을 ‘그린‘에 두고 있는 소비자들이다. 제로 웨이스트, 레스 플라스틱 등 개인 차원의 움직임이 기업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친환경 정책, 기업의 ESG 경영 기조와 함께 가치소비를 향한 그린 팬슈머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한 몫하고 있다.

◇ 소비자들이 떼어낸 빨대

‘소비자의 편지 한 통이 없앤 빨대’는 유통업계에서 소비자의 목소리를 즉각적으로 반영한 사례로 유명하다. 

지난해 2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빨대 반납 운동’이 일어났다. 음료병에 사용하지도 않을 빨대가 붙어있는 것이 환경적으로 불편하다며 이를 모아 제조업체에 반납하는 움직임이었다. 매일유업이 소비자들로부터 편지와 빨대를 받았다. 매일유업은 ‘엔요100’ 제품에 국내 최초로 전용 빨대를 부착해 판매하고 있었다. 엔요100은 요구르트 제품 가운데 유일하게 빨대를 부착하며 시장 1위에 오른 제품이었다.

매일유업 임원은 이 같은 소비자들의 움직임에 자필 편지로 “빨대 없이도 마시기 편리한 구조의 포장재를 연구 중”이라고 화답했다. 실제로 매일유업은 이후 대형마트에 들어가는 엔요 일부 제품에서 빨대를 없앤 데 이어 7월 엔요 전 제품에서 빨대를 제거했다. 

해당 제품에서 빨대가 제거됨으로써 연간 저감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44톤. 이는 30년산 소나무를 약 9700그루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매일유업은 액상발효유에서 빨대를 떼어낸 데 이어 올해 초 우유 제품에서도 빨대를 없앴다. 환경을 중시하는 고객 목소리를 반영해 상하목장 유기농 멸균우유 190ml 제품에서 빨대를 없애 출시한 것. 매일유업 관계자는 “상하목장이 자연에게 좋은 것이 사람에게도 좋다는 것을 모토로 성장해온 브랜드인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남양유업이 빨대 없는 ‘맛있는우유GT 테트라팩’을 런칭했다. 이 역시 소비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탄생한 것이다. 

남양유업은 일반적으로 테트라팩에 담긴 제품은 음용할 때의 편의성을 위해 플라스틱 빨대가 부착돼 있는데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문제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빨대 없는 맛있는우유GT 테트라팩을 출시했다고 26일 밝혔다. 

특히 해당 제품은 남양유업이 소비자 모임 ‘지구지킴이 쓰담쓰담’과 ‘서울새활용플라자’와 함께 플라스틱 저감 및 환경 문제 개선을 위해 지난해부터 꾸준히 펼쳐온 친환경 캠페인 ‘Save the earth’ 활동으로 탄생한 것이라 의미가 더 깊다는 입장이다. 

남양유업은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남양유업 앞으로 플라스틱 빨대 및 뚜껑 등을 보내주는 소비자 선착순 20명에게 이번 신제품을 1박스씩 전달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소비자에게 전달받은 플라스틱은 새활용 재료로 사용할 계획이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남양유업은 지난해 6월 소비자들을 초청해 환경에 관한 간담회를 진행하며 플라스틱 저감 및 친환경 활동 등을 약속했다”며 “민관 협업을 통해 플라스틱 빨대 및 뚜껑 등을 수거하는 ‘Save the earth’ 활동을 펼쳐왔다”고 설명했다. 

◇ 사라지는 불필요한 플라스틱

소비자가 바꾼 제품에는 명절 선물세트의 인기제품인 CJ제일제당의 스팸도 있다. 지난해 스팸은 처음으로 추석 선물세트에서 시그니처와도 같았던 노란 플라스틱 뚜껑을 없앴다. 

배경에는 역시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해 소비자 운동단체 ‘쓰담쓰담’은 CJ제일제당 스팸 반납 운동을 진행했다. 이미 밀봉된 스팸 캔을 덮은 노란 뚜껑이 사실상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것이 골자였다. 

보통 소비자들은 스팸의 노란 뚜껑을 남는 스팸을 보관할 때 사용하는 용도로 생각하는데 사실 노란 뚜껑은 보관용이 아닌 충격 완화 용도다. 오히려 캡을 닫아도 밀봉 효과가 떨어지므로 따로 보관하라는 것이 제조사의 조언이다. 이에 소비자들은 황당함을 표하며 노란 뚜껑의 필요성에 물음표를 던졌다. 

이에 스팸 뚜껑 반납 운동이 일어났고 CJ제일제당은 추석 선물세트에서 플라스틱 뚜껑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CJ제일제당은 최근 오는 설 명절에도 지난 추석처럼 뚜껑 없는 스팸 2종 세트를 함께 선보이는 한편, 올해 추석까지는 모든 선물세트에서 스팸 뚜껑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스팸 노란 뚜껑으로 시작된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은 다른 추석 상품으로도 이어져 다른 기업에서도 포장재를 줄이거나 종이 완충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플라스틱 저감에 동참하는 효과를 이끌어냈다. 

소비자들은 이 같은 기업의 변화에 ‘환경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기업이 앞장서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빨대나 스팸 뚜껑이 불필요하고 아깝다는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소비자 움직임을 통해 개선되니 좋은 결정 같다’, ‘다른 기업에서도 좋은 본보기와 결을 함께 하길 바란다’, ‘편지를 쓴 소비자도 이에 화답한 기업도 멋진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은 안전성과 직결되는 품목이라 포장 기술 경쟁이 치열하고 포장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환경만 생각해서 무작정 포장재를 줄일 수는 없지만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소비자 의견을 반영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key@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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