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꽉 채워도 입을 옷은 없다? 지갑 아닌 환경 문제
물 수천리터 들여 만든 옷, 한 철 만에 쓰레기가 된다
매 시즌 유행 맞춰 새 제품 생산...마케팅 전략 속 환경 고려 필요
친환경 트렌드에 눈 뜬 패션업계, 소비자 적극 참여 절실

요즘 재택근무를 권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기자도 개인 위생에 신경쓰기 위해 며칠간 집에서 근무하기로 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보니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던 ‘생활 속 환경 요소’들이 보입니다.

나와 가족들이 집에서 하루 종일 먹고 쓰고 입고 버리는 것들은 우리 환경에 어떤 영향들을 미칠까요. ‘쓰레기 없이 살기’가 버리는 것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기자들의 ‘미션 임파서블’한 노력이라면, 이 칼럼은 집에서 가족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게 뭔지,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제도적인 뒷받침과 아울러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숙제는 뭔지 한번 더 짚어보는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꼭 필요한 옷만 남겨둔 기자의 옷장. 저 옷 한벌을 만들기 위해 수천리터의 물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 매우 컸다. 고백하자면, 안방 옷장에는 저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옷이 있다 (이한 기자)2020.3.4/그린포스트코리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꼭 필요한 옷만 남겨둔 기자의 옷장. 저 옷 한벌을 만들기 위해 수천리터의 물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 매우 컸다. 고백하자면, 안방 옷장과 발코니 등에는 저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옷이 있다 (이한 기자)2020.3.4/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기자는 경제 관련 매체에서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주요 경력은 월간 매거진이다. 요즘은 국내 주요 기업 관계자들을 주로 만나고 다닌다. 옷차림은 보통 셔츠에 자켓을 매치한 ‘세미 정장’스타일이다. 오늘이야 재택근무 중이어서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고 있지만, 조만간 셔츠 단추 잠그고 자켓을 걸친 다음 밖으로 나가 이곳저곳 누빌 예정이다. 그날이 얼른 오길 바란다.

그런데 과거에는 기업인보다 연예인, 디자이너, 작가, 아티스트 등을 자주 더 만났다. 그래서일까 옷차림이 요즘과 달랐다. 지금의 기자에게는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는 게 예의지만, 그때는 소위 ‘트렌디’하게 입는 게 중요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동료가 어느 브랜드의 무슨 옷을 입었는지에도 관심이 많았다.

고백하자면, 기자 역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분위기에 휩쓸린게 아니라 근본적인 성향이 그랬다. 옷 사는 게 취미였고 힐링이었다. 백화점에 가면 6시간씩 돌아다녔다. ‘남자는 쇼핑 귀찮아하고 힘들어한다’ 같은 얘기를 들으면 코웃음을 쳤다. 커다란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손이 모자라 팔뚝에까지 쇼핑백을 걸고 백화점을 나올때면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다. 카드값을 버는 수고로움보다 손에 들린 쇼핑백이 주는 기쁨이 훨씬 컸다.

◇ 옷장 꽉 채워도 입을 옷이 없다? 지갑 아닌 환경 문제

예전에는 그랬다. 뉴욕에 가서는 아울렛에서 반나절만에 여행 예산 2/3를 써버렸고 도쿄 가면 시부야 109MEN에서 지갑을 열며 “왜 한국에는 남성 전용 백화점이 없는거야”라며 투덜거렸다. 내가 사 입은 옷을 그 다음 주에 연예인이 TV예능프로에 입고 나온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해외 여행에서 옷이랑 신발을 너무 많이 사서 그걸 담아 오려고 캐리어를 사야 했던 적도 있다. ‘이 맛에 돈 버는 거지’ 하면서 쇼핑백을 잔뜩 들고 귀가하는 아들의 등짝을 후려치실 어머니의 손길이 두려워 차 트렁크에 새 옷을 숨겨놓기도 했다.

그 시절 3월의 기억은 이렇다. 비슷한 색깔 트렌치코트만 6벌, 하지만 봄은 짧다. 간절기는 눈 한번 깜빡 하는 사이 지나가고 철 지난 옷들은 구석에 봉인된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트렌디’한 옷은 이내 ‘구식’이 되어 버렸다. 옷을 아무리 사도 입을 게 없었고, 꽉 찬 옷장은 마치 밑 빠진 독 같았다. 소위 말하는 ‘기본템’을 잘 갖춰놓았으면 문제가 없는데 매 시즌 유행을 쫓다보니 옷장은 곧 의류수거함과 다름 없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철 없던 과거다

요즘은 옷과 가방을 많이 사지 않는다. 혹자들은 ‘나이 먹더니 철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 부모님은 ‘그렇게 옷값으로 월급 다 쓰면 늙어서 어떻게 할래’하셨다. 그때는 반발했으만 지금은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이렇게 옷을 많이 사면 나중에 큰일난다. 가진 돈을 옷값으로 다 써서 문제일까? 아니다. 그게 아니고, 패션 산업 역시 지구 환경 오염에 적잖은 지분을 가지고 있어서다.

◇ 물 수천리터 들여 만든 옷, 소비자에게 잠시 들렀다 곧 쓰레기가 된다

패션매거진 ‘엘르’ 2월호 컬럼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천억장의 옷이 생산된다. 조선일보 최근 보도에 의하면 매년 옷과 신발이 6천만톤 넘게 만들어지고 이 중 70%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곧바로 쓰레기매립장으로 간다.

국제학술지 출판사 스프링거 네이처가 발간하는 ‘환경위생저널’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800억벌의 의류가 소비된다. 그 과정에서 물 집약적인 면화의 증가, 처리되지 않은 염료의 지역 수원 방출 등 섬유 제조업과 관련한 환경적 사회적 비용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옷장에 걸린 옷들은 적잖은 에너지와 염료 등을 바탕으로 생산되면서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들기 위해 물 수천리터가 사용된다. 1만리터가 넘는다는 조사도 있다. 천을 짜고 염료를 빼면서 나온 물질 중 일부는 폐수가 되어 하수도로 흘러간다. 티셔츠의 주재료인 면화를 재배하는데도 전 세계 농약의 10%가 투입된다.

그렇게 지구를 더럽히며 만들어진 다음 소비자가 구입한 옷은 그래도 수년간 사용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옷은 땅에 묻히거나 불태워진다.

한편으로는 옷장에 들어간 옷이 효율적으로 사용된다는 보장도 없다. 2015년 그린피스 독일사무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가정에서 새로 산 옷의 40%는 거의 또는 전혀 입지 않았다.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는 불평은 기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만들어진 수많은 옷과 신발, 가방들이 옷장에 잠시 스쳤다가 이내 쓰레기가 되어간다.

유행에 맞춰 자주 사고 자주 버리는 ‘패스트패션’ 현상이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됐다.(퀸즐랜드 대학교 제공).2018.11.20/그린포스트코리아
유행에 맞춰 자주 사고 금방 버리는 경향이 환경오염의 주요 영향 중 하나로 지목되어 왔다. (퀸즐랜드 대학교 제공, 본사DB)/그린포스트코리아

◇ 매 시즌 유행 맞춰 새 제품 생산하는 패션 산업 

과거 기자에게 패션은 ‘지름신’ ‘트렌드’ ‘멋내기’ 같은 용어로 설명 가능했다. 패션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 자체도 그렇다. 하지만 패션은 엄연히 의·식·주 3분야 중 하나로 인류 생활과 매우 밀접하다. 사람들은 모두 ‘먹고 사는’ 문제에 매몰되어 있는데, 그 사람들 모두 무언가를 입고 생활한다.

생산량이 많을 수 밖에 없고, 규모가 크다보니 환경적인 영향 역시 크다.  패션업계 생산 과정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 가까이가 나오고, 이는 항공과 해운 산업 배출량을 합한 것보다도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패션이 단순한 ‘의’를 넘어 ‘멋내기’의 역할까지 겸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겼다. 사실 몸을 가리고 비바람과 추위를 막는 용도라면 지금 우리가 가진 옷의 품질은 대단히 훌륭하다.

예를 들어보자 기자의 부모님 집 창고에는 1989년에 구입한 ‘오리털 파카’가 하나 있다. 아버지가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러 가시거나 겨울 다용도실에서 뭔가 작업할 때 입는 옷인데 구매한지 31년이 되어 매우 낡았지만 찢어지거나 터진 곳은 없다. 손때와 목때가 진하게 배었고 볼륨이 죽었으며 충전재 기능도 떨어졌겠지만 그래도 입으면 춥지는 않다.

◇ 낡은 옷 입을 수는 없지만...마케팅 전략 속 환경 고려 필요

물론 모든 옷을 30년씩 입을 수는 없다. 그 옷이 안 찢어지고 아직 따듯할지언정. 아버지도 그 ‘파카’를 입고 지인과 만나지는 않는다. 기자가 “이제 그 옷 좀 버리라”고 해도 안 버리실 뿐이다. 기자 역시 (지름신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너무 오래된 옷을 입는 것은 여전히 꺼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매년, 아니 매 시즌 유행에 맞춰 새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다. 사람들이 옷을 오래 입으면, 유행 없이 매년 같은 스타일만 팔리면 그들은 설 곳이 없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새 옷이 쏟아진다.

SPA브랜드 옷을 자주 산다는 한 방송기자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신경 써야 하다 보니 유행 맞는 제품을 주로 사서 한두 시즌 바짝 입고 버린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아깝다는 마음도 들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재고로 쌓인 옷을 다음 시즌에 다시 파는 것도 패션업계에서는 금하는 행동 중 하나다. 과거 한 명품브랜드 관계자는 기자에게 “아울렛으로 보내거나 이월상품 딱지를 붙여 싸게 팔면 브랜드 이미지가 하락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시즌이 지난 옷은 모두 폐기한다”고 말한 바 있다.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환경을 고려하면 매우 안타까운 얘기였다.

◇ 기업들이 달라졌다? 친환경 트렌드에 눈 뜬 패션업계

다행인 것은, 최근 이런 경향에 일부 변화가 관측된다는 점이다. 최근 1~2년 새 패션업계들이 지속 가능 '친환경' 트렌드에 눈을 돌린 경우가 많다. 환경오염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던 과거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지난달 25일 발표한 올해 패션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지속 가능 패션 트렌드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패션 플랫폼이 꾸준히 등장하고, 의류를 소유가 아닌 공유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기업과 소비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 근거다.

실제로 지난해 '맥킨지 뉴 에이지 컨슈머 미국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66%가 제품 구매 시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5%는 밀레니얼 세대로, 젊은 세대일수록 패션의 환경 요소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뒷받침하는 경향은 곳곳에서 관찰된다. H&M은 지난해 중고 의류 판매에 이어 의류 렌털 사업에 진출했다. 트럭 방수포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 프라이탁은 P2P 공유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을 서로 연결한다. 자라도 100% 지속가능한 패브릭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파타고니아와 K2, 노스페이스 등 주요 아웃도어 브랜드들도 리사이클과 폐페트병 추출 소재 등을 소재로 다양한 환경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중고 패션 플랫폼이자 패션 스타트업 더리얼리얼이 나스닥에 상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트럭 방수포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 프라이탁은 최근 소비자들로 하여금 'Give and Take'를 유도한다. (FREITAG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트럭 방수포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 프라이탁은 최근 소비자들로 하여금 'Give and Take'를 유도한다. (FREITAG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 환경 고려한 패션 소비 절실

정부도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1월 “섬유패션산업이 고부가가치·스마트·친환경산업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클린팩토리와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리사이클 섬유 생태계 구축을 위한 기술개발 및 컨설팅 등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클린팩토리는 제조 공정에서 환경오염 물질을 사전에 제거해 유해물질 배출량을 줄인 사업장을 뜻한다.

예전에도 소위 ‘구제’를 선호하는 패션피플들은 많았다. 당시에는 환경을 고려했다기보다는 남들과 다른 옷을 상대적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구제를 찾았다.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옷을 구입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환경적인 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자의 옷장을 다시 열어본다. 양복 스타일의 봄 자켓은 딱 2벌이다. 겨울 코트도 올해는 안 샀다. 하지만 비슷한 소재와 두께, 컬러를 가진 바지는 여전히 많다. 더 줄여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탄소배출의 25%를 섬유 생산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고의류를 구매하면 탄소 발자국이 82%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중고가 싫다면 환경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제품을 구입해 오래 입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 당신의 옷장을 열어보자. 꼭 필요한 옷만 효율적으로 걸려 있는가?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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