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10기, 사용후핵연료 포화율 90% 이상…연내 꽉 찰 전망
“임시저장시설은 원전 지역을 핵폐기장으로 만드는 것”
광역별 인구수 비례해 임시저장시설 분산·설치 제안

24일 원전 소재 지역 주민 대책위와 탈핵 운동 단체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에 ‘임시’로 고준위폐기장을 짓겠다는 것은 핵발전소 지역을 핵무덤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사진=녹색연합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24일 원전 소재 지역 주민 대책위와 탈핵 운동 단체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에 ‘임시’로 고준위폐기장을 짓겠다는 것은 핵발전소 지역을 핵무덤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사진=녹색연합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정부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확정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용후핵연료가 원자력발전소 내 임시저장 시설에 쌓이고 있다. 현재 운행 중인 24기 원전 중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90% 이상인 원전은 10기에 이른다. 이에 원전 지역 주민들은 “임시저장시설은 원전 지역을 핵폐기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원전 소재 지역 외에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소비하는 다른 지자체들도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책임을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원전 10기, 사용후핵연료 포화율 90% 이상…연내 꽉 찰 전망

국내에는 고리(부산), 한빛(영광), 한울(울진), 새울(울진), 월성(경주), 신월성(경주) 등 6개 원자력 발전단지에서 원자력발전소 24기가 가동 중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총 51만2461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했으나 이를 원전 외부에 저장하거나 영구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발생량 전부를 원전 부지 내에 저장 중인 상황이다.

원전을 운영해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은 중저준위와 고준위로 구분된다. 방사선 오염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저준위 방폐물은 반감기(방사성물질의 방사능이 반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가 평균 300~400년이다. 반면 열과 방사능의 준위가 높은 고준위 방폐물 반감기는 평균 10만년이다. 이 기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경우 고준위 방폐물은 원전의 사용후핵연료가 대부분이다.

현재 각 원전은 사용후핵연료를 원자로에서 인출한 후 원전 내부의 습식저장시설(수조)에 투입해 냉각시키고 있으며 월성 원전의 경우 사용후핵연료의 포화상태를 방지하기 위해 별도의 건식저장시설(맥스터)을 원전 부지 내에 설치해 사용후핵연료 일부를 저장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방법은 중간저장 시설, 재처리, 직접 처분, 최종처분 시설 설치 등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 중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확정하지 못하면서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에 쌓이고 있다. 현재 운행 중인 24기 원전 중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90% 이상인 원전은 10기에 이른다.

한수원에 따르면 지난 7월 25일 기준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90% 이상인 원전은 △고리2호기(93.6%) △고리3호기(95.7%) △고리4호기(93.6%) △한울1호기(96.8%) △한울2호기(97.3%) △한울4호기(90.5%) △한울6호기(93.1%) △월성2호기(95.4%) △월성3호기(98.6%) △월성4호기(99.8%)다. 월성 원전의 경우 연내에 저장시설 포화가 예상되고 다른 원전 역시 2031년부터 저장 공간이 꽉 차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임시저장시설은 원전 지역을 핵폐기장으로 만드는 것”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수립된 ‘제2차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에는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을 한시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기존 원전 부지 내에 고준위방폐물이 반영구적으로 저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실제로 지난 9월 한수원은 고리원전 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보관할 건식저장시설을 2029년까지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해당 원전 부지가 사실상 방폐물 저장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원전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24일 원전 소재 지역 주민 대책위와 탈핵 운동 단체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에 ‘임시’로 고준위폐기장을 짓겠다는 것은 핵발전소 지역을 핵무덤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핵발전과 핵폐기물의 책임에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전기를 많이 쓰는 대도시가 답해야 한다”며 전기 소비 1위인 경기도와 3위인 서울시에도 방폐물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박상현 탈핵부산시민연대 활동가는 “서울의 전력자립률이 11%인데, 나머지 89%는 위험한 원전 근처에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며 “정의롭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원전 인근 지역 주민은 계속해서 불안을 갖고 살아간다”고 호소했다.

용석록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대외협력국장은 “울산은 반경 30km 내에 14개의 고리원전과 월성원전까지 위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핵발전소를 많이 끼고 있는 도시”라며 “핵발전소 가동만으로도 위협을 받고 있는데,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은 곧 그 지역을 핵폐기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광역별 인구수 비례해 임시저장시설 분산·설치 제안

이들은 지난 6월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일부개정안’에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광역시도의 인구수에 비례해 사용후핵연료를 나눠 보관하는 제안에 주목하면서 서울시와 경기도에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책임을 촉구했다.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에서는 원자력시설에서 방사선비상 또는 방사능재난이 발생할 경우 비상대책을 집중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전 소재지인 부산시와 울산시, 경상남도, 경상북도, 강원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있는 대전시 등 8개 광역지자체에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설정됐다. 

개정안은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설정돼있지 않은 광역지자체인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 등 9개 광역지자체에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을 분산해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상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를 통해 “개정안은 특정 지역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해야 하는 부담을 온전히 떠안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사용후핵연료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여러 지역에 이동·보관할 경우 국민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개정안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설치 의무를 가지게 되는 9개 광역지자체의 반대가 예상되므로 이와 관련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이날 원전 소재 지역 대책위와 전국 탈핵 운동 단체들은 인구수에 비례해 사용후핵연료 다발을 나눠 보관하는 것에 대한 서울시와 경기도의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또한 이들은 향후 2주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게 온라인 행동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smkwon@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