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 위에 또 포장...선물 둘러싼 환경 논의들
친환경·노플라스틱...2021 설 선물세트의 변신
명설 선물의 의미와 환경 영향, 소비자 의견은?

환경의 사전적(표준국어대사전) 의미는 ‘생물에게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또는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로 나의 환경이라는 의미겠지요.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는 자신의 저서 <면역에 관하여>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의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꼭 그 구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등에서 출간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 도서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의 환경인가요?

주변의 모든 것과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환경이라면, 인류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 역시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24시간 우리 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며 환경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생활 속 제품들을 소개합니다. 다섯 번째는 해마다 이맘때면 누구나 몇개쯤 사거나 받는 ‘선물세트’입니다. 1년 내내 사용하는 제품은 아니지만, 설이나 추석과는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니 한번 짚고 넘어갑니다. [편집자 주]

CJ제일제당이 지난 추석에 이어 올해 설 선물로 선보인 플라스틱 뚜껑을 없앤 스팸 선물세트. (CJ제일제당)/그린포스트코리아
명절 선물세트의 포장 방법을 둘러싸고 환경적인 논의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올해는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을까? 사진은 CJ제일제당이 출시한 (노란 뚜껑 없는) 스팸 선물세트. 지난 추석에 이어 올 설에도 나왔다. (CJ제일제당 제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어린 시절, 기자는 ‘건강식’에 익숙했다. 부모님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햄이나 소세지보다는 고기나 두부를, 과자나 아이스크림보다는 집에서 구운 팬케이크나 셔벗을 주로 먹었다. 기자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군것질거리를 통털어 ‘불량식품’이라고 부르곤 했다.

갖지 못한 것의 열망 때문일까. 동네 아저씨나 아줌마들이 ‘과자 선물세트’를 들고 가는 걸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빨이 썩는다’는 경고도, ‘불량식품 먹으면 배가 아프다’는 경고도 그 시절 기자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커다란 상자에 온갖 과자가 담긴 선물세트가 어머니가 집에서 직접 굽고 만든 간식보다 훨씬 더 좋아보였다. 1980년대를 어린이로 살아본 사람이면 그런 ‘선물세트’가 익숙할 터다.

사실 선물세트가 어린이들만의 것은 아니다. 특히 이맘때면 더욱 그렇다. 기자의 집에도,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집에도 어디선가 받아온 선물세트가 한두개쯤은 쌓여있겠다. 20년 전, 처음 직장을 얻고 추석때 선물세트를 받아 집에 오는데 왠지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도 난다. 명절 선물세트가 요즘 말로 ‘힙’한 제품은 아니지만, 적당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받기에 이만큼 편리한 것도 드물다.

◇ 포장 위에 또 포장...선물세트 둘러싼 환경 논의들

선물세트는 여전히 인기다. ‘비대면이 효도’라는 문구가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요즘이라 더욱 그렇다. 국내 주요 유통사들은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선물세트 사전예약을 진행하고 판매 물량을 늘리는 등 수요 확대에 나섰다. 이마트는 작년 추석부터 전화로 주문하면 담당자가 상담과 결제를 처리해주는 서비스를 출시하고 최근 확대에 나서기도 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온라인 몰에서도 선물세트 관련 혜택을 늘렸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선물세트를 둘러싸고 꾸준히 이어진 논의가 있다. 환경적인 관점에서의 논의다. 예전에는 세트에 뭐가 들었는지, 그게 내 입맛과 취향에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얘기만 오갔으나 요즘은 선물세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이뤄져왔다.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과대포장’이라는 지적이다. 사용할 제품이야 뻔한데, 그걸 흔들리거나 빠지지 않게 고정하고 큼직한 상자에 담아 예쁘게 포장해서 판매하는 과정이 환경적이지 못하다는 게 지적의 요지다. 소위 말하는 ‘있어보이는’ 포장이 비닐이나 포장재, 또는 천 등 소재 낭비로 이어지고 쓰레기도 늘어난다는 얘기다.

사실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환경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보도·설명 관련 자료들을 보면 8년 전인 2013년 설에도 설 선물세트 과대포장을 집중 단속하겠다는 보도자료를 찾을 수 있다. 당시에도 환경부는 ‘포장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과대포장으로 인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과대포장 집중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당시 환경부가 소비자시민모임과 함께 대형 유통사 수도권 매장 들을 대상으로 ‘그린포장 실천협약’ 이행실터를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힌 자료도 찾을 수 있다 이 협약은 농·축·수산물 선물세트의 포장횟수를 2차 이내로 줄이고 포장공간에서 내용물이 차지하는 비율을 75% 이상으로 하며, 띠지나 리본 사용을 점진적으로 줄이자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해당 협약은 2011년 12월에 이뤄졌다. 이미 10년 전부터 이런 내용이 늘 이슈였다는 의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설 명절 고향 방문을 선물로 대신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 선물세트 판매율이 증가했다. (이마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명절 선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오히려 온라인쇼핑 등을 통해 그 수요가 더 늘어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브랜드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이마트 제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 친환경·노플라스틱...2021 설 선물세트의 변신

환경부도 이 문제를 꾸준히 언급해왔다.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추석에 과대포장 제품을 점검하겠다는 취지로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직접 방문했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해 9월 들어 합성수지 재질의 재포장 줄이기, 생산-유통-소비 전과정에서 폐기물 발생을 감축하기 위한 자원순환 정책 대전환, 분리배출을 쉽게 하도록 재질 중심에서 배출방법 중심으로 분리배출 표시 개선 등을 역점 추진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움직임 덕분일까. 최근에는 여러 변화가 관찰된다. 유통사들이 일제히 ‘친환경 선물세트’와 ‘노 플라스틱’ 선물세트를 출시하겠다며 팔을 걷었다. 동원 F&B는 플라스틱 트레이를 종이 재질로 바꾸고 부직포가 아닌 종이 가방에 담은 ‘노 플라스틱’ 선물세트 2종을 출시했다. 이들은 지난해 추석에도 플라스틱 트레이 무게를 평균 10% 줄여 약 42톤 규모의 플라스틱을 절감한 바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필환경 추세에 맞춰 올해도 환경을 고려한 선물세트를 준비했으며 지난해 설 대비 선물세트 플라스틱 절감량이 약 173t”이라고 밝혔다. 0.7g 빨대로 계산하면 약 2억 5000만 개를 줄인 규모다. 이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82t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CJ제일제당은 노란색 플라스틱 뚜껑을 없앤 스팸 선물세트를 지난 추석에 선보인 바 있다. 올 설에도 뚜껑 없는 스팸 세트 2종을 출시했다. 이와 더불어 재활용이 쉬운 제품으로만 구성한 백설 고급유 세트도 출시했다.

포장 관련 규정은 어떨까.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별표2)에 따르면 1차식품 가공식품, 음료, 주류 등 종합제품은 포장횟수 2차 이내, 포장공간비율 25%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제과류와 건강기능식품, 화장품류, 세제류, 신변잡화류 종합제품도 마찬가지다. 종합제품이 아닌 단위제품의 경우에는 가공식품은 15%이하, 제과류는 20%이하 등 종류에 따라 포장공간비율 규정이 다르다.

◇ 명설 선물의 의미와 환경 영향, 소비자 의견은?

선물세트의 환경 영향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견은 어떨까. 실용성 면에서는 의견이 갈렸으나 환경적인 관점에서는 비슷한 의견이 많았다. 10일 낮 서울 송파구의 한 마트에서 만난 소비자 유모씨(46)는 세트가 오히려 번거롭다고 했다. 유씨는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있있으면 되는데 개수가 너무 많고 케이스와 가방까지 생겨서 처치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고받는 순간에야 큼직해서 기분 내기 좋겠지만 실용성 면에서는 메신저로 주고받는 작은 선물들이 오히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 최모씨(44)는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최씨는 “가끔 쓰거나 먹지만 굳이 내 돈 내고 구매하지는 않는 제품이거나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제품이라면 명절을 핑계 삼아 선물로 주고받는 게 정겹고 기분 좋다”고 말했다. 포장 문제에 대해서는 “커다란 쓰레기가 나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기업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주면 괜찮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선물을 주고 받자는 취지는 살리되, 유통 방식을 바꾸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송파구에 사는 소비자 양모씨(40)는 ‘기프티콘 방식으로 선물을 주고 받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양씨는 “깡통햄 10개를 한꺼번에 포장해 선물로 주고받는 게 아니라, 결제 후 받는 사람에게 모바일 쿠폰을 지급한 다음 기간을 정해놓고 원하는 만큼씩 매장에서 받아가면 포장 없이 제품만 받을 수 있어 편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명절선물은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윤활유가 되고, 유통업체의 매출에도 큰 공헌을 하는 효자상품이다. 지금 세대가 더 나이 들어도, 어린 세대가 어른이 되어도 선물을 주고 받는 문화는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을 줄이려는 노력이 꼭 필요한 이유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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