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키워드 속 환경 ②] '비거니즘'...소비 습관의 환경·윤리적 변화냐, 또 다른 과생산이냐
[트렌드 키워드 속 환경 ②] '비거니즘'...소비 습관의 환경·윤리적 변화냐, 또 다른 과생산이냐
  • 이한 기자
  • 승인 2020.04.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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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에게 미치는 인위적인 영향 줄이려는 노력
고기와 가죽 대신 얻는 또 다른 재료도 환경적일 수 있을까?
환경·윤리적인 생산과 소비에 대한 각자의 판단 기준 필요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뉴스란에 ‘환경’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기사가 1천만건 이상 쏟아집니다. 인기 K-POP그룹 BTS(방탄소년단) 이름으로 57만건, ‘대통령’ 키워드로 890만건의 기사가 검색(4월 13일 기준)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환경 문제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입을 모읍니다. 정부와 기업은 여러 대책을 내놓고, 환경운동가들은 ‘효과가 미흡하다’며 더 많은 대책을 요구합니다. 무엇을 덜 쓰고 무엇을 덜 버리자는 얘기도 여기저기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 습관과 패턴은 정말 환경적으로 바뀌었을까요?

‘그린포스트’에서는 매주 1회씩 마케팅 키워드와 경제 유행어 중심으로 환경 문제를 들여다봅니다. 소비 시장을 흔들고 SNS를 강타하는 최신 트렌드 이면의 친환경 또는 반환경 이슈를 발굴하고 재점검합니다. 소비 시장에서의 유행이 환경적으로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보는 컬럼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윤리적이고 환경적인 습관 중 하나로 꼽히는 ‘비거니즘’입니다. [편집자 주]

헬로네이처가 비건 전문 존(#VEGAN)을 8일 사이트 내에 오픈했다. (BGF리테일 제공) 2019.7.9/그린포스트코리아
비거니즘 열풍이 거세다. 동물로부터 영양소를 얻는것과 채소 또는 곡물로부터 영양소를 얻는 것 중 뭐가 더 환경적일까. 사진은 헬로네이처가 지난해 비건 전문 존을 오픈하던 당시의 홍보용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사진은 기사 속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BGF리테일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요즘 인류는 동물이 없으면 못 산다. 고기는 많은 이들의 ‘소울푸드’고 가죽과 털은 패션 아이템에서 선호되는 ‘고급진’ 소재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런 소비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최근 거세다. 고기와 가죽을 얻기 위해 열악한 공간에서 사육되고 도살당하는 동물들에 대한 윤리 문제, 대규모 축산업이 기후환경에 미치는 환경 악영향에 대한 문제 제기다. 그렇다면 동물을 덜 기르고 적게 소비하는 것은 지구 환경에 반드시 좋은 영향을 미칠까?

요즘 “비거니즘 열풍이 거세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많다. 실제로 그 바람이 매우 거센지, 아니면 절대적인 바람의 크기는 아직 작지만, 그래도 과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커진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포털사이트와 뉴스 게시판, 출판계 등에서 비거니즘은 분명 ‘핫이슈’다.

국내만의 이슈도 아니고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떠오른 유행도 아니다.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지난 2002년 출간한 저서 <육식의 종말>에서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인류의 식생활이라고 지적했다. 소들이 전 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고, 미국 기준으로 전체 곡물의 70%를 소가 먹는데 그 이면에는 세계 곳곳에 굶주리는 인간 수억명이 있다는 문제 제기다.

구운 소세지와 기름에 튀긴 족발이 유명한 독일에서도 이미 1990년대부터 비거니즘 운동이 활발했다. 현재 베를린은 ‘유럽의 비건 수도’로 꼽히며, 이곳에만 비건 또는 비건 프렌들리 식당 수가 약 8000여 곳에 이른다. 베를린 스타 셰프이자 파워 블로거 소피아 호프만은 지난해 <제로 웨이스트 퀴헤(Zero Waste Kuche):쓰레기 없는 주방>이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됐는데, 호프만은 ‘베를린 비건 퀸’이라는 닉네임으로도 불린다.

◇ 고기를 만드는 일과 곡식을 생산하는 일...뭐가 더 환경적일까?

고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종교적인 내용을 제외하면) 크게 3가지 갈래다. 인간이라는 종이 또 다른 종인 동물을 학대하고 고통받게 하면서 고기를 얻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으냐는 의문, 대규모 축산업 과정에서 식수와 농경용지가 줄어들고 사막화가 촉진된다는 환경적인 지적, 채소 위주의 식단이 건강에 더 좋다는 주장이다. 귀를 기울여야 할 얘기들이다. EBS 보도에 따르면, 식용으로 한 해 도축되는 소는 3억 마리, 닭은 665억 마리에 달하며 축산업을 통해 나오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14%에 이른다.

물론 ‘육식은 비환경적이고 채식만 환경에 이롭다’며 이분법적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극단적인 예로, 70억 넘는 인구가 지금까지 고기에서 얻어왔던 열량이나 단백질만큼의 영양소를 모두 곡식과 채소, 열매 등에서만 얻어야 한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환경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일주일에 하루씩 채식 식단을 유지한다는 한 소비자는 “단백질 섭취를 위해 두부나 콩고기 등을 먹는다고 가정하면 그 콩을 재배하기 위해 필요한 경작지나 농업용수도 만만치 않을텐데, 이런 것들을 모두 감안하면 결국 뭐가 더 환경적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육식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이런 반론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고기 섭취를 줄이는 것이 환경에 이롭고 식재료의 효율적인 재분배도 가능하게 한다’고 반론한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전 세계 곡물량의 45%를 가축이 먹고 인류 경작지의 80%를 축산업에 사용한다”고 전제하면서 “(채식에 대해) 동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식물도 중요하다는 반론이 많이 제기되는데, 역설적으로 채식 위주 식단이 곡물이나 채소 소비량을 더 줄인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고기 소비가 늘어나면서 식량자원 배분의 왜곡이 심해졌고 그 이면에 환경문제, 그리고 기아나 굶주림 등의 문제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원복 대표는 “쇠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16Kg의 곡물이 필요하고,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열대우림의 2/3가 파괴됐는데 축산업이 그런 경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서나 가축이 먹을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열대우림을 파헤친 부분도 많다”면서 “육식을 줄이고 채식 위주로 식단을 전환하면 동물을 키우는데 투입되던 곡물 소비량이 인류에게 돌아가면서 전체적으로 효율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페스티벌은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변화 위기에서 지구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 평화 속에 공존하자는 주제를 전할 예정이다. (사진 서울시 제공)
지난해 열렸던 비건 페스티벌의 모습. '비건이 당신의 미래다' 라는 구호를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서울시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동물로부터 얻는 재료 바꾸려는 움직임...소비 판단 기준 필요

따져봐야 할 부분은 여전히 있다. 동물로부터 얻어지는 재료를 식물성 재료로 대신하자는 주장이 패션 등 다른 산업으로 넘어가면서 환경상의 손익분기(?)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 역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인류가 가죽이나 털 등을 모두 없애고 자연 소재로만 옷을 만들어 입는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70억이 넘는 인구에게 필요한 목화 등을 재배하느라 매우 많은 양의 물과 비료. 살충제 등이 필요할 수 있다.

인조모피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아크릴이나 폴리에스테르 등이 필요하고 이런 소재로 만들어진 옷을 세탁하는 과정 등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나올 수 있다. 하수도와 강물을 통해 바다로 흘러간 미세플라스틱이 해양 동물의 먹이가 되어 생태계와 식재료의 악순환을 불러온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환경적인 요소와 윤리적인 이유를 고려해 대안을 마련했는데 그 대안에서도 또 다른 환경적인 문제나 윤리적인 이슈가 제기되는 모양새다. 인류가 앞으로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다.

해당 논의과 별개로 분명히 관찰되는 경향이 이다. 동물에게 미치는 인위적인 영향을 줄이려는 세계적인 움직임이다. 실제로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과 규모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꾸준히 커지고 있다. 패션과 뷰티 등 여러 분야에서 관련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바로 식탁문화다.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1일부터 전국 모든 공립 유치원과 학교에서 주 1회 채식을 의무화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채식 기반 급식을 강화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미국 뉴욕 공립학교에서는 지난해 가을부터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전라북도교육청이 ‘채식의 날 시범학교’를 운영한 바 있다. 울산시교육청은 올해 시범학교를 선정해 주 1회 채식의 날을 운영하고, 시범학교를 제외한 전체 학교는 월 1회 채식 식단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할 방침이다. 군대 등에서도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의 선택권을 늘려달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된다. 녹색당을 포함한 시민단체들은 채식 선택권을 위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생충>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은 앞서 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해서 먹는 공장식 축산의 윤리적 문제를 다룬 영화 <옥자>를 연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17년 인터뷰에서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현재 상태를 폭로하거나 간명하게 드러내는 정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육식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채식을 강요할수도, 채식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육식을 강요할 수도 없다. 다만 습관적으로 먹고 소비하던 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에게 오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환경적이고 무엇이 덜 환경적인지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나름의 판단 기준을 세워야 할 시대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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