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플라스틱이 '도시 유전'으로… 열분해 기술, 석유화학 미래 연다
폐플라스틱 발생량 증가하면서 버려지는 플라스틱으로 재생유 생산 국내외 석화·정유업계 열분해 통해 순환경제 기대…시장 선점 경쟁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소비가 폭증하면서 폐기물 처리가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만 연간 873만t의 폐플라스틱이 쏟아진다. 이 중 생활 쓰레기가 40%, 사업장 배출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글로벌 폐플라스틱 발생량이 2060년 10억1000t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환경 재앙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 폐플라스틱을 '자원'으로 되살리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열분해 기술이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고온으로 녹여 기름으로 환원하는 이 기술은 온실가스 감축과 순환경제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시 유전'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정부와 산업계가 앞다퉈 육성에 나서고 있다.
◇ 재생 원료 사용 의무화…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
유럽연합(EU)은 순환경제 행동계획을 기반으로 플라스틱 제조 과정에서 재활용 원료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도 2023년 재생원료 사용 의무 제도를 도입하며 자동차·가전·식품 등 다양한 산업으로 적용 범위를 넓혔다. 다만 재활용 플라스틱은 회수 비용 탓에 일반 플라스틱보다 가격이 비싼 점이 시장 확대의 제약으로 꼽힌다.
현재 국내 폐플라스틱 처리 비중은 재활용, 소각, 매립 순이다. 하지만 재활용의 상당 부분이 '에너지 회수' 단계에 머물러 있어, 고품질 재활용을 위한 기술 혁신이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폐플라스틱 50% 감량과 재활용률 70%를 뿐만 아니라 폐플라스틱의 10%를 열분해 처리하겠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 열분해 시장 '선점 경쟁'
국내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SK지오센트릭 등은 물론 독일 바스프, 미국 이스트만·다우, 사우디 사빅 등 글로벌 석유화학사들도 화학적 재활용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바스프는 화학적 재활용의 상업화를 가장 먼저 이뤄낸 기업으로 꼽힌다. 2020년 6.6% 수준에 머물던 화학적 재활용 점유율은 2030년 20.7%로 확대될 전망이다.
화학적 재활용의 핵심은 열분해다. 열분해 기술은 폐플라스틱을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400~600도의 고온으로 가열해 분해함으로써 연료유, 재생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폐플라스틱을 고온에서 분해하면 '열분해유'가 생성되는데 이를 정제하면 재생 나프타로 다시 제조 가능하다. 이 나프타를 공정에 투입하면 에틸렌이 만들어지고,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탄생하며 순환경제가 가능해진다.
과거에는 염소·질소 등 불순물 때문에 열분해유가 보일러 연료 수준에 그쳤지만, 최근 기술 개발로 고순도 정제가 가능해지면서 산업적 활용 폭이 크게 넓어졌다. 여기에 환경 문제 및 기업 ESG 등으로 열분해 기술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화토탈에너지스,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LG화학 등이 열분해유 정제설비를 갖추고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으며, 중소업체에서도 관련 기업과 협력해 고도화된 열분해 기술을 통한 제품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도 폐플라스틱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연속식·저온 촉매 분해 등 고도화 기술에 대한 정책 지원과 R&D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300도 이상의 온도에서 소각할 경우 다이옥신·퓨란 등 유해 물질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300도 미만에도 분해가 가능한 저온 기술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 "범용 제품 가격 바닥… 친환경 전환이 살길"
업계에선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의 물량 공세로 범용 제품 가격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친환경 재활용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폐플라스틱이 '골칫거리'에서 '전략 자원'으로 탈바꿈하는 시대, 열분해 기술은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생존 전략이자 미래 성장 엔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과 차별화하고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폐플라스틱 재활용 같은 친환경 영역에 더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