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폐열로 전기 생산”··· 삼성重, 친환경 기술주도권 잡는다

중저온 폐열까지 회수 가능··· 국내 첫 ORC 해상 실증 HMM·파나시아와 손잡고 연간 700t 이산화탄소 감축 검증 “에너지효율 최대 20% 개선··· EU 탄소국경조정제 대응 경쟁력 강화”

2025-11-18     신종모
선박 엔진에서 굴뚝으로 버려지는 열을 다시 전기로 만든다. 하루 24시간 쉼 없이 가동되는 거대한 선박 엔진은 막대한 열을 발생시키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은 배기가스와 냉각수를 통해 그냥 바다로 흘러간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선박 엔진에서 굴뚝으로 버려지는 열을 다시 전기로 만든다. 하루 24시간 쉼 없이 가동되는 거대한 선박 엔진은 막대한 열을 발생시키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은 배기가스와 냉각수를 통해 그냥 바다로 흘러간다. 이에 삼성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유기 랭킨 사이클(ORC) 기반 폐열 회수 발전 시스템이 국내 최초로 해상 실증에 돌입하며, 친환경 선박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HMM과 국내 친환경 설비 전문기업인 파나시아와 ‘ORC 폐열회수발전시스템 선박 실증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업무협약은 단순한 기술 검증을 넘어 2045 탄소중립을 향한 한국 해운산업의 구체적 행보를 보여준다.

중저온 폐열 활용, 기술적 차별화로 시장 공략

삼성중공업의 ORC 시스템은 기존 증기식 폐열회수 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핵심이다. 선박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 중 상당 부분은 배기가스와 냉각수를 통해 버려지는데, 기존 증기식 시스템은 300~600℃의 고온 폐열만 활용 가능했다. 특히 삼성중공업의 시스템은 물보다 끓는점이 낮은 유기 열매체를 사용해 70~300℃의 중저온 폐열까지 회수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경쟁사 대비 기술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지점이다. 덴마크 머스크(Maersk)가 2021년 도입한 150킬로와트(kW)급 시스템이 초기 목표를 초과 달성하자 추가로 6척에 250만유로(약 42억5000만원) 규모의 시스템을 탑재하기로 한 사례는 시장 수요를 입증한다. 삼성중공업은 육상 실증 완료에 이어 올해 5월 미국 선급 ABS로부터 기술 인증을 획득하며 상용화 기반을 다졌다.

2026년 하반기 시작될 해상 실증에서는 HMM의 1만6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컨테이너선에 250kW급 시스템을 탑재해 연간 230t의 연료와 700t의 이산화탄소(CO2) 절감 효과를 검증한다. 국제 사례상 ORC 시스템은 선박 에너지 효율을 6~9% 향상시키며, 미국 해군사관학교 실증에서는 최대 10% 연료 절감 가능성이 입증된 바 있다.

“냉매 혁신으로 진짜 친환경 시험대 도전”

폐열회수 시스템의 환경 효과를 평가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요소가 냉매다. 해양용 ORC 시스템에 대한 라이프사이클 평가 연구에 따르면, 냉매 손실이 지구온난화 영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연료 절감으로 탄소를 줄이더라도 고지구온난화지수(GWP) 냉매가 누출되면 환경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R245fa 같은 기존 냉매는 높은 GWP로 인해 유럽을 중심으로 퇴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R1234ze, R1233zd(E) 등 저GWP 냉매로 전환할 경우 탄소 발자국을 85% 감소시킬 수 있으며, 국제 연구는 2050년까지 연간 2억3700만t의 CO2 배출 감소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중공업이 어떤 냉매를 채택하고 향후 저GWP 냉매로의 전환 계획을 어떻게 수립하느냐가 기술의 진정한 친환경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특히 파나시아와의 협력은 주목할 만하다. 파나시아는 삼성중공업·HMM과 진행한 선상 탄소포집·저장(OCCS) 프로젝트에서 일일 1t의 CO2를 포집하고 99.9% 이상의 탄소 유효성을 달성한 실적이 있어, 종합 친환경 솔루션으로서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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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O 규제 강화 속 경제성·확장성 확보

삼성중공업의 ORC 기술은 강화되는 국제 해운 규제에 대응하는 필수 솔루션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IMO는 2023년부터 기존선에 에너지효율기존선지수(EEXI)를 적용하는데, ORC 시스템으로 최대 20% 감축이 가능하다. 신조선 기준인 에너지효율설계지수(EEDI)도 10~20% 개선할 수 있어 규제 대응력이 뛰어나다.

투자 회수 기간도 2~5년으로 경쟁력 있는 수준이다. 벙커 유가 상승과 2026년 본격 시행될 EU 탄소국경조정제(CBAM)를 고려하면 경제성은 더욱 높아진다. HMM이 추진 중인 메탄올·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선박과 결합할 경우 시너지는 극대화된다. 메탄올 이중연료선은 연료비가 20~30% 높은데, ORC의 5~10% 발전 기여도가 경제성 개선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1척 실증이 성공할 경우 10척 규모 확대 시 연간 2300t 연료 절감, 7000t 이상 탄소 감축으로 효과가 증폭된다. HMM은 IMO의 2050년 목표보다 5년 앞당긴 2045년 넷제로(Net-Zero)를 목표로 총 23조5000억원 중 14조4000억원(60% 이상)을 지속가능성에 배분했으며, 1조원을 친환경 기술에 할당했다.

이호기 삼성중공업 친환경연구센터장은 “이번 실증은 폐열회수 발전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한층 높일 기회”라며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기술 개발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업계 한 전문가는 “삼성중공업의 ORC 기술이 Maersk 등 글로벌 선도 사례를 따라잡고, 실제 운영 데이터를 산업 전체와 공유할 때, 한국 조선업은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