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름은 ‘그린’, 내용엔 친환경 없는 KB자산운용 펀드··· "그린 워싱" 논란

이름은 친환경 펀드, 실제는 성장주 중심… 투자자 오인 우려 ‘그린’과 무관한 포트폴리오… 당국 규제 강화 시 정비 대상 가능성

2025-11-21     황혜빈 기자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을 내세운 KB자산운용의 ‘KB 그린성장포커스 펀드’가 실제로는 일반 성장주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인공지능생성 이미지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을 내세운 KB자산운용의 ‘KB 그린성장포커스 펀드’가 실제로는 일반 성장주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름과 내용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소비자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이 펀드는 문서 어디에도 친환경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 없다. 실제 투자 방식도 환경이나 탄소감축 같은 요소와 거리가 멀다. “그린워싱(친환경인 척하지만 실제는 아닌 행위)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펀드 구조는 일반 투자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핵심은 자금 대부분이 다른 펀드(그로스포커스)에 사실상 자동으로 들어가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걸 업계에서는 ‘모자형 펀드’라고 부른다. ‘부모 펀드(모펀드)’에 돈을 넣고, ‘자식 펀드(자펀드)’는 그 부모 펀드에 자산의 90% 이상을 다시 투자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이름은 다르지만 실제 운용은 모펀드가 거의 전부 맡는 구조다. 자펀드는 입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모펀드가 친환경 펀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서상 투자 목적은 ‘성장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환경 기준이나 탄소 감축 기준을 적용한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그린성장포커스’라는 이름과 실질 운용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교지수도 ESG와 무관하다. 이 펀드가 투자 성과를 비교할 때 기준으로 삼는 지표는 ‘KOSPI(코스피) 90% + 단기 금리(콜금리) 10%’다. 이 지표는 일반적인 주식형 펀드가 쓰는 기준과 같다. 친환경 기업 비중이 높은 지수도 아니고, 탄소배출을 평가하는 지표도 아니다. 친환경 투자 성과를 판단할 도구가 없는 셈이다.

실제 편입종목을 보면 ‘그린’과의 괴리는 더 크다. 이 펀드의 상위 보유 종목에는 삼성전자(16.7%), SK하이닉스(11.7%), 테크윙,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효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 카카오, 현대로템 등이 포함돼 있다. 반도체·조선·방산 등 탄소배출이 많거나 사회적 논란이 잦은 업종이 대거 들어 있는 셈이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은 방산 기업이며, 효성중공업·HD현대중공업은 탄소 규제와 산업안전 이슈가 반복돼 왔다. 이 종목들이 친환경 성격과 연결된다는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소비자는 ‘그린 성장’이라는 이름을 보고 자연스럽게 친환경적 기업에 투자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펀드 문서에는 친환경 투자 기준, 탄소 배출 평가, 환경 리스크 점검 절차가 없다.  ESG 스크리닝(환경·사회 요소를 걸러내는 절차)도 언급돼 있지 않다. 그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실제 내용은 전통적 성장주 투자에 가깝다. 이 때문에 금융업계에서는 “일반 펀드에 그린이라는 이름만 붙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히 환경과 관련 있는 단어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친환경 펀드가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 상품은 공모형으로 판매되는 만큼 명칭만 보고 가입하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

금융당국의 규제 방향과도 충돌할 여지가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제17·19·20조는 소비자를 오해하게 만드는 설명·광고·권유를 금지하고 있다. 환경·친환경·ESG 같은 단어를 사용할 경우, 실제로 그 목적과 전략이 존재하고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게 당국의 기본 입장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의 SFDR, 영국의 SDR 등 해외 규제에서도 ‘그린’ ‘ESG’ 명칭을 위한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규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 펀드가 명칭 변경이나 공시 개선 대상으로 거론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우려는 더 크다. 펀드명·전략·편입종목 간 정합성이 맞지 않으면, 투자자가 상품을 잘못 이해할 위험이 발생한다. 환경 투자라고 생각하고 가입했는데 실제로는 반도체·조선·방산 중심의 성장주 펀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아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이런 유형은 그린워싱 사례로 지적돼 왔다.

펀드 운용보고서에서도 친환경 관련 내용은 거의 찾기 어렵다. 탄소배출량 정보, 친환경 기업 비중, ESG 평가 방식, 온실가스 목표 등은 기재돼 있지 않다. 의결권 행사나 참여 활동에서도 환경 관련 기조를 확인하기 어렵다.

문서 어디에서도 ‘그린’이라는 이름의 이유를 설명할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이 펀드는 온라인 판매 채널을 중심으로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펀드명만 보고 ESG 상품으로 인식하는 투자자가 있다는 뜻이다. 상품명과 실제 운용 목적이 다를 경우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혁 계명대 경영대학 교수는 “ESG 펀드가 친환경과 연결되지 않는 종목을 담고 있거나 문서에 친환경 투자 기준, 탄소 배출 평가, 환경 리스크 점검 절차 등이 없는 경우 모두 그린워싱에 해당할 수 있다”며 “펀드 명칭과 실제 내용이 일치하지 않으면 모두 그린워싱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우리나라도 호주, 유럽, 미국처럼 그린 펀드명 사용 시 특정 비율 이상 친환경 종목을 담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우리나라는 시행령 수준이라 의미가 없으므로 관련 제도 입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